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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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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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4-03-05 ㅣ No.170316

 

2024년 3월 5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어느 자매님께서 젊었을 때,

남동생이 사고로 하늘 나라에 가버려서

어린 조카들을 맡아 키웠다고 합니다.

남의 자식을 함부로 대한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고, 또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동생이기에 조카에게

자기 자식들보다도 더 먼저 챙겨주는 등

신경을 써서 키웠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녀들이

“우리가 의붓자식이야?”라며 어릴 적에

불만을 많이 표시했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그래도 하나뿐인

남동생의 아들을 잘 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조카가 성인이 되어 의사가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친척 결혼식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오랜만에 만난 고모인 자기에게 인사는커녕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 자녀보다 더 신경 써서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봅니다.

아무튼 이 자매님은

너무나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에게

이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만약 다시 남동생 죽었을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조카를 받을 것 같아?”

라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은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조카가 커서 나를 섭섭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맡을 거야.”

이 모습이 가치 있는 삶입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그냥 ‘사람’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진짜로 가치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베드로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시지요.

가치 있는 삶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한 없이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을 따르는

우리 역시 한계를 두지 않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묵상해야 합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사랑을 주시는 모습을

우리는 복음에서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직접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에 구원의 길에서

제외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큰 빚을 탕감받고도

동료의 작은 빚을 참지 못하는

못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모습으로,

절대 가치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가치 있는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떨까요?

♡오늘의 명언♡

위대한 행위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위대한 사랑으로 하는

작은 행동이 있을 뿐입니다.

(성 마더 데레사)

사진설명: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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