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유게시판

무너진 천륜과 밟혀진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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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경 [agnes21] 쪽지 캡슐

2000-07-28 ㅣ No.12494

며칠 만에 게시판에 들어왔다가 낯뜨거운 기사를 읽게되었습니다.

 

파출소장인 엄마를 전국적으로 고발하는 딸의 글이더군요.

그것도 세 분이 똑같은 내용의 퍼온 글을 하루, 이틀 간격으로 올리신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는 김지선 님의 말대로 남의 글은 전혀 열어보지 않는 네티즌들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신경이 저도 씁쓸하더군요.

그러나 정작 우울하고 두려운 생각마저도 등줄기를 타고 지나가는 건 정말 이 땅에 인륜과 도덕이 이토록 무너지고 밟히었나 하는 점입니다.

제가 섬뜩하게 소름끼치었던 점은 맏며느리며 가정 주부요, 파출소장인 한 여인의 간통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정작 무너지고 망가진 건, 가족 전체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전혀 감출 줄 모르는 다 큰 딸의 마비된 심성입니다.

물론 그 딸이 그토록 잔인할 정도의 분노를 머금게 된 건 모두 엄마 탓이지요.

오죽 피가 거꾸로 솟으면 그렇게 독기를 뿜어대며 자신의 엄마를 반인륜범의 죄수로 고발하겠습니까?

그 딸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어찌 천만분의 일인들 헤아리겠습니까?

그러나 부모 자식간은 천륜지간입니다.

아무리 추하고 혐오스러워도 내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내 어머니 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가톨릭 네티즌 분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와 세 아들 이야기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창세기 9장) 벌건 대낮에 술에 취해 치부를 드러내고 잠들어 있던 노아를 보고, 세 아들은 각기 다른 행동과 태도를 취하지요. 처음 아버지를 발견한 둘째 아들 함은 벌거벗은 아버지를 다른 형제들에게 소문 냅니다. 그 말을 들은 큰 아들과 세째는 아버지의 벗은 몸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드립니다.

 

’그들은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다.’(23절)

 

이 사건으로 세 아들과 그 자손들은 인생 길이 달라집니다.

아버지의 치부를 가려줄 줄 몰랐던 둘째는 형과 아우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고 큰아들과 세째는 축복의 예언을 받습니다.

이 이야기는 부모 자식관계에 대한 중요한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부모는 없습니다. 완전한 자식도 없구요.

온갖 상처와 아픔, 부족함을 지닌 사람들이 부부로 만나 상처를 주기도, 덮어주고 싸매주기도 하며 함께 어우러져 사는 공간이 가정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돌로 쳐죽일 죄를 저질러도 서로 덮어주고 감싸안아야 하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일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내 자식의 일이기 때문에 잘못을 대신 뒤짚어쓰거나 감춰주려고 하는 부모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만약 자기 자식이 간통을 저질렀다면 그 부모가 내 자식 이렇다고 이렇게 소상하게 글을 올려가며 동네방네 소리소리 질렀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내 자식의 수치를 가리고 덮어주려는 심정이 모성일 것이며, 내 자식의 수치는 곧 나와 가족 전체의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군중들에게 너희 중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딸의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런 글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렇게 외쳐대는 딸에 대해 저는 개인적으로 정말 서글픈 심정입니다. 그러나 더욱 씁쓸하고 유감스러운 건 그 글에 ’용기’ 어쩌구 하며 박수를 보내며 함께 거들어 준 네티즌들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크리스챤입니까?

 세상에 누가요, 이랬대요, 하며 그 글을 퍼다 실을 만큼 우리는 모두 깨끗합니까?

그리고 정말 딸로서 자신의 엄마를 그토록 패대기치는 일이 용기있는 일이며 격려해주어야 마땅할까요?

만일 그렇다면 그 글을 퍼올려 게시판에 쏟아부어준 분들은 간음한 여인을 가운데 두고 돌멩이를 집어든 군중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내 부모도 잘못하면 냅다 고발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일에 박수를 쳐댈만큼 인간성이 말살되지 않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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