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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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우리의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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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경 [kreuz] 쪽지 캡슐

2000-12-24 ㅣ No.16113

 

저는 명동성당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직장에 다니고 있는 회사원, 즉 노동자입니다.

저는 비정규직은 아니고, 정규직이지만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회사가 아니라서 안정적이거나 그렇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엔 노조도 없습니다.

 

저는 한국통신의 민영화나 기타 현 경제체제 안의 돌아가는 모습들에 대해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거의 언제나 정부와 기업인들이 노동자들보다 우위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한,

당장 먹고 살 방편 때문에만 단체행동권을 사용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조건을 위해서도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고 봅니다.

 

노조가 정치적인 것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민영화라든가 기타의 부분은 분명 일하는 사람들과 관련이 되어 있는 부분이므로

그 부분에 대해 투쟁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동조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모든 것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 것인지 읽는 분들은 아시리라 믿습니다.

 

명동성당은

노동자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노조를 가지고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는 덩치의 회사 직원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좌판에서 장사하시던 분들,

저처럼 그저 별볼일없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

혹은 학생들,

혹은 정치인들이나 경제계의 거물들,

혹은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들이

그곳에 와서

잃어버린 삶의 희망의 끈을 잡고 다시 살아날 힘을 얻어가는 곳입니다.

이것이

노동자들의 파업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에

성당이 함께 해줄 수는 있습니다.

명동성당은 특히 일반시민들에게조차 ’민주화의 성지’로 받들어져서

공권력조차 미쳐 돌아가지 않는 한

함부로 들어오지 않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성당이 ’성당’으로 존재하고 있을 때에야 가능한 일입니다.

노조원들이나 시위대들이

아무 빌딩 앞이나 국회의사당 앞에서가 아니라

명동성당에서 시위를 하고,

종로에서 집회를 하고도 가두행진 후 명동성당에서 해산하는 것은

이곳이 바로

한국 가톨릭의 상징이며,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장소로서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 아닙니까?

 

명동성당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데에는

단지 유적지이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성당의 가장 중요한 역할,

가난하고 헐벗은 이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미사’가 계속되었고,

그 미사에 참례해서 주님을 기억하는 신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한통노조의 시위에서는

그 두가지가 다 부인되었습니다.

한통노조는 단순히 명동성당을

경찰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는 고지 같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명동성당은 앞으로도 성당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숫자로 밀고 들어와 성당 점령하고 큰소리치는 사람들보다 훨씬 약한,

 

이름 없는 회사의 조그만 노조들이나,

혹은 외국인 노동자들,

혹은 지금도 한국인들에게 끊임없이 사기를 당하는 제3세계 사람들,

혹은 어디에도 호소할 길 없이 당해버린 약한 소시민들이

 

조그맣게나마 호소할 수 있는 한 자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동성당은 성당이어야 하며 또한 앞으로도 ’성지’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통신의 노조분들도 언젠가

공권력이 삶을 위협할 때

국민들의 외면을 받지 않고 성당에 피신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어떤 노조들이더라도, 어떤 시위대들이더라도

성당 안에 있다가 공권력에 끌려나간다 하더라도

시민들은 당연한 일로 받아들일 것이며

성지 침탈에 항의하는 가톨릭신자들에게 ’불법을 감싸지 말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톨릭은 더이상 힘없는 사람들을 감싸안지 못하게 됩니다.

 

 

시위대들이 성당 앞에 모이는 것은

가톨릭신자들에게는 한편 자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만큼은 아직까지

어떤 공권력에도 맞서서 힘없는 자들을 지켜주려한다는 믿음을 주고 있다는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명동성당에 무언가 호소하러 오실 분들도

신자들의 그런 자부심에 상처를 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신자들도 인간이기에,

감싸안고 싶지만

자신의 가장 귀한 부분을 더럽히고 모욕당하면 화내고 분개하게 됩니다.

 

명동성당이

성지로 계속 남아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와서 호소하시는 분들에게도 달려 있습니다.

 

저는 명동성당에 계속 ’민주화의 성지’이자

’약한 자들의 최후의 보루’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당으로서 말이죠.

 

한 작은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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