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수녀님을 위해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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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미 [sukmaria] 쪽지 캡슐

2000-06-30 ㅣ No.1356

포항 가는 기차표를 끊어 놓고...

 

 

백혈병으로 목숨이 다해 가는 김비비안나 수녀님 베러 저 내일 포항 갑니다.

 

식구들이랑, 토마랑 함께 7월9일쯤 일요일쯤 포항 갈려고 했는데 수녀원에서 오늘 전화가 왔어요.

 

시간이 별로 없다고....

 

제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나 싶어요. 한 달은 살아 계셔 줄거라 믿은 제가 잘못이다 싶어요.

 

방금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약했습니다. 무궁화 호는 장애인 할인이 되는데 포항 가는 무궁화 호가 없네요.

 

서울에서 포항 가는 아침 7시 30분 새마을호. 창가로 표 한 장을 끊었습니다.  휴~~ 오늘은 일찍 자야겠어요.

 

내일 새벽 6시에는 집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오늘 벤처 기업 자료 입력하는 일 갖다 주고 공공 근로 신청한다고 과천 시청, 동사무소를 이러 저리 왔다 갔다 했어요. 벤처꺼는 너무 임금이 짜서.... 그래도 정부에서 하는 게 돈을 더 주겠죠? 내일은 정면 사진도 찍고, 이력서도 적어 빨리 공공 근로 신청해야지 생각했는데... ...

 

수녀님 목숨이, 수녀님이 절 너무 오래 기다릴 수 없다네요. 내일 포항 가는 기차에서 뭘 준비할까요? 마음 준비 말이에요. 음,,, 이별은 언제나 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아마도 눈물 많은 제가 많이 울겠지요.

 

전에 여의도 성모 병원 중환자 실에서 백혈병으로 돌아가시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지요. 보호자들이야 한번씩 면회 할 수 있고, 간호사들은 교대하지만 환자인 저는 하루 내내 환자를 지켜볼 수 있죠. 죽어 가는 모습을 정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죠. 주검이 영안실로 가는 순간까지 저는 쭉 지켜보게 되요. 바로 제 옆 침대에서 일어나는 죽음을 함께 느끼는 거지요. ’죽음이 참 가까이 있구나’하구요

 

내 아픈 것은 생각도 않고 저도 따라 엉엉 울 때가 있어요. 죽어 가는 청년이 너무 안 돼서, 죽어 가는 아이 엄마가 너무 안 돼서, 남은 애인이 너무 안쓰러워, 남은 남편이 너무 불쌍해 마르지 않는 눈물을 흘리곤 했지요.

 

이번에, 제가 죽어 가는 수녀님을 어떻게 대할까 좀 궁금해져요. 어떤 마음, 어떤 모습으로 수녀님 곁에 서 있게될지.... 사건은 일어 날만 하고, 일어 날 수 있고, 일어 날 수밖에 없어 일어난다지요. 제 영혼이 진화하는 좋은 기회가 될거라 여겨집니다.

 

이 화창한 한여름에, 목숨이 다해 가는 김 비비안나 수녀님을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래요.

 

마음으로 함께 울어 주고, 함께 천국 문을 열어 주시길 청해 봅니다. 내일 이 시간쯤이면 포항 성모 병원  417호 호스피스 방에 김 비비안나 수녀님과 함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남지 않은 짧은 시간, 너무 귀하고 귀한 시간 한 순간도 잃지 않고 다 제 가슴에 담아 올꺼에요. 돌아올 때는 눈물 다 닦고 기차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을 바라보며 ’참 곱다. 정말 싱그러운 세상이야’하고 삶과 자연을 노래할 수 있길 바래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인연을 맺은 것으로, 서로 사랑을 나눈 것으로, 죽음을 넘어 영원히 서로를 그리워하게 될거라는 것에 감사 드리며 돌아오고 싶어요. 수녀님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에 감사 드리고 싶어요.

 

수녀님이 다음 세상을 향해 여는 문을 저도 잘 보고 올 생각입니다. 저도 그렇게 옆에서 죽음을 배워 가야 하니깐요. 연습하고, 준비하고, 보고 듣고, 느껴야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니깐요.  

 

                                                         2000년 6월 30일 금요일 저녁에

                                                         과천에서 석영미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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