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딸 율리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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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형 [largo7a] 쪽지 캡슐

2001-06-13 ㅣ No.3739

 

우리 딸 율리아나

 

 어릴 때부터 모든 일에 열성적이고, 남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딸, "율리아나".

 

오늘은 따뜻한 이야기 가족 여러분에게 딸에 관한 이야기들려드리니 딸 자랑이라 생각하지마시고,딸을 향한 아비의 사랑으로 이해해주세요.

우리 딸 율리아나는 유학을 간 것이 아니라,이 아비가 주재원으로 임지인 뉴욕으로 갔을 때, 동행 하였어요.

영어는 읽지도,이해하지도,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는 영어에 관한한 눈 멀고, 귀머거리이며 벙어리였어요.

매일 학교에 울면서 가고,눈물에 젖어 돌아왔어요.

이러한 딸 애의 고통과 눈물을 여섯달 동안을 매일 보았던 아비로서는 딸 애의 기적과도 같은,아니 피눈물나는 노력과 그 결과를  누구에게나 이야기하고  들려드리고 싶은 것이니 아비의 심정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은 딸 아이에게 그림도 잘 그리는 재능을 주셨습니다.어릴 때 미술학원 한 번 다니지 않았습니다.

 

율리아나는 대학에서 경제학 및 스튜디오 아트를 복수전공하였어요. 대학 4년 전과정을 장학금으로 마쳤고,재학중에 경제과 도제를 위하여 강의도 하였습니다.

 

웨슬리언 대학 개교이래 두 학과(더블 메이죠)에서 최고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율리아나에게 경제학과는 파이 베이터 캐퍼(Phi Beta Kappa), 미술학과는 우등상을 수여하였습니다.대학당국은 미술과 졸업생 중 율리아나에게 개인 전시회를 개최하는 영광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아내와 나는 누적된 마일리지의 고객에게 주는 사은 비행기 표로  딸아이의 졸업식에 참석하

 

였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후, 모든 사람들이 딸아이를 축하하는 기쁜 날, 기숙사에서 짐을 꾸리던 아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아이가 신고있는 구두와 신발장에 있는  운동화나 구두의 밑창 모두가 닳아서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살기에 어려워 그동안 딸아이에게 한푼도 송금을 해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슬프고 미안하였습

 

다. 우리 내외가 귀국한 이후 홀로 외롭게 미국에 남은 딸애가 기숙사에서 끼니나 제대로 찾아 먹었는 지, 그 순간 만감이 교차했고요.

 

딸아이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전화를 할 때마다

학교에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으니,제 걱정하지 말라고 아빠를 안심시켰던 율리아나

 

 

지금도 졸업식 날 딸아이의 다 닳아 발가락이 비집고 나오던 신발을 잊지못하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평소 경제학보다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대학원에서 그림 그리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딸아이는 아빠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딸아이는 그 꿈을 접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엔 대표부  "유엔문서 분석관"으로 근무하며, 3년 동안 대학원에 진학할 학비를

 

모았습니다. 여자에게 필요한 화장품 하나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돈을 아꼈어요.

 

다행히  장학금과 유엔 대표부에서 저축한 돈으로 유펜(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대학

 

원  경제학 과정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도이치 뱅크 증권에서 세계경제동향을 조사하는 조사역 및 컨설턴트로 미국과 홍콩

 

을 오가며 근무하였습니다,

 

첫해의 연봉은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거액이었습니다.  수년동안 딸아이는 경제적으로 우리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딸아이는 홍콩에서 국제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아빠! 나 대학원 가요. 미국의 "뉴욕 아카데미 오브 아트" 대학원으로부터 "풀 스칼라십"을 받아

 

요."

 

딸아이는 정말 기뻐하고 있었어요.

 

딸애는 어릴 때 응석을 부리던 그 시절의 목소리를 되찾고 있음을 나는 그 아이의 음성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다시는 얻기 어려운 직장과 거액의 연봉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아내와 나도 딸아이의 직장에 대한 미련을 잠시 동안 가졌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돈보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의 길을 택한 율리안나, 끝없는 노력과 재능 그리고 독창성을 요구하는 어려운 길을 주저함 없이 택한 율리아나를 격려해 주어야 하였는 데도 말입니다.

 

그토록 원했던 그림을 그리며 율리아나가 행복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딸애가 다시 대학원에 입학한 후, 한 달이 경과할 무렵 딸 애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동안 직장에서 저축해 놓은 돈으로 엄마, 아빠의 명의로 된 노후 적금을 통하여 향후 10년 동안 매년 년말에 돈이 송금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은행 구좌를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아내와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직도 어려 보이고,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많을 또래의  율리안나가 엄마와 아빠의 노후를 걱정하고 준비하다니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우리 딸 "율리아나"에게 부모를 사랑하는 갸륵한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며칠 전 딸로부터 이-메일과 함께 딸애의 자화상이 이미지 파일로 내 컴퓨터에 도착했어요.

 

나는 컴퓨터 바탕화면에 딸의 자화상 이미지 파일을 저장해 놓고,  딸애가 보고 싶을 때마

 

다 꺼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딸애의 음성, 전화로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에 차고 명랑한 딸애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우리 내외의 큰 기쁨입니다.     

율리아나의 오늘이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이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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