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4일 (금)
(녹) 연중 제7주간 금요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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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 // 성바오로딸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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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여진 [apearl] 쪽지 캡슐

2014-10-27 ㅣ No.209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기획 의도 +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섰던 메조 소프라노 김청자 씨. 성악가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삶, 인간적 사랑에 몰두하고 새로운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면서 삶의 에너지를 발산했던 여인, 그녀는 우리 삶의 우여곡절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을 드러내시고 당신을 전하도록 초대하심을 깨닫게 해준다.
 
 
+ 상세 내용 +

그녀는 왜 아프리카로 갔을까?

간호조무사로 간 독일에서 꿈을 이루다!
1970년 한국인 최초로 유럽 오페라 무대에 올랐던 메조소프라노.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 오페라 단원을 비롯해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16년간 이름을 날렸던 성악가. 독일 뒤셀도르프 오페라단의 프리마돈나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뉴욕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독창회까지 가질 정도로 잘나가던 그, 김청자를 일컫는 수식어다.

1963년 외국 신부의 도움으로 독일에 간호조무사로 가게 된 그는 늘상 ‘내 꿈은 음악 공부’라고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을 기회가 찾아왔다. 그가 돌보던 환자들을 통해 음악계의 은인을 만났고 독일에 온 지 5개월 만에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성악을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라위 아이들과 제2의 인생을 시작하다!
김청자가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예순의 나이를 맞았던 2005년경이다. 안식년을 맞아 은퇴 후 삶을 준비하며 한 해 동안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던 그는 특별히 아프리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인들의 삶, 그 안에서 발견되는 춤추며 노래하는 아름다운 삶’은 ‘그곳이 내 영혼의 고향이 될 것이라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했다’고 고백했다.
2010년 2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은퇴하자마자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9월, 보따리를 싸서 혈혈단신 아프리카 말라위로 날아갔다.

“난 평생 성악가로서 차고 넘치도록 누렸다. 명성과 인기도 얻었고 과분한 사랑도 받았다. 많은 분으로부터 너무 받기만 했다. 그 감사함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2004년 12월 28일 내 나이 예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밤새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이듬해 남아공과 잠비아를 여행하면서 비로소 해답을 얻었다. 잠비아에서 뼈만 남은 아이들이 나한테 찰싹 매미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순간, 아∼마지막 ‘내 영혼의 고향’은 이곳이구나 깨달았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 위에서 그 사랑을 만났습니다!
40여 년 화려한 음악 인생을 뒤로 하고 현지 아이들에게 ‘마미’, ‘마마’ 라고 불리며 제2의 여생을 보내고 있는 그는 왜 아프리카를 택한 것일까.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40도의 불볕더위와 온갖 불편함을 참아내며 말라위에 살 수 있는 것은 절대적인 하느님 은총이 함께하시기 때문이죠. 저를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으로 이곳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바라볼 때의 ‘행복 체험’이 이곳에 머물게 합니다. 정말 놀라운 체험입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위해 음악학원을 세우고, 배우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한국 유학의 길을 열어주고자 혼신의 힘을 쏟으며 행복해 하는 그는 이제 여생을 메조소프라노 가수의 무대가 아니라 사랑과 화해와 감사의 삶으로 무대를 펼치고 있다.
말라위 추장이 그에게 지어준 이름 ‘루세케로’(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인이란 뜻의 말라위 이름)처럼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많이 나누어야 하는 소명감으로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는 김청자의 진솔한 삶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온 길 위에서 저는 그 사랑을 만났습니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완전하고도 영원한 사랑을 말입니다. 이 책은 그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  상 : 삶의 변화를 희망하는 이.  봉사하는 삶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이.  성악가 김청자를 아는 이. 젊은이와 일반인.
 
 
•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 후원회

공연 & 출판 기념회 소개

루수빌로 밴드 내한 공연 ‘희망을 노래하라’
김청자의 70년 음악 인생을 정리하는 음악적 향연!
아프리카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감동 어린 제자들의 공연!
음악(Classic, Jazz, Pop)과 춤이 같이하는 공연으로 관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 예술 공연!
 
• 11월 15일(토)에는 성바오로딸수도회 알베리오네센터에서 북 콘서트 예정

 

 

+ 목차 +

홀로 서다

1. 소설 자루/ 2. 물에 만 밥과 장아찌/ 3. 어른이 된 이유/ 4. 아버지의 식도락 외 10편
화해의 시간
1. 첫 번째 내려놓음/ 2. 그리운 고국으로/ 3. 두 번째 내려놓음/ 4. 첫 번째 결혼, 첼리스트 볼프강/
5. 두 번째 결혼, 엔지니어 미하엘 외 11편
저를 보내십시오
1. 저를 보내십시오/ 2. 아프리카에서 맞은 성탄절/ 3. 저희 어머니가 이렇게 싸들고 오시겠습니까/
4. 가장 비싼 점심/ 5. 거룩한 치통 외 11편
카롱가의 아이들
1. 루수빌로 고아원/ 2.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자/ 3. 아베 마리아/ 4. 준비됐는가/
5. 루수빌로 음악부 외 22편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곳
1.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나라/ 2.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3. 아프리카에서는 무얼 먹을까/ 4. 지금, 바로 이 순간/ 5. 느긋한 우기, 단순한 삶 외 13편
 
+ 저자소개 +
김청자
1944년           강원 춘천 출생
1963년           진명여고 졸업
1968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레오폴트 모차르트 음악원 졸업(피아노 성악 전공)
1970년           한국인 최초 유럽 오페라 무대 데뷔, 스위스 베른오페라단과 전속 계약
1971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졸업
1973-1978년   중앙대, 연세대 음대 성악과 교수 재직
1978-1994년   독일 카를스루에 오페라단, 뒤셀도르프 오페라단 전속 단원으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와 베르디의 ‘아이다’ 등에 출연
                    뉴욕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독창회
1994-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교수 재직
음반 
1991년 헬무트 도이치 반주 독일 가곡집과 한국 가곡 김청자 애창곡집
1998년 성가모음집 <더 높은 곳을 향하여>
2000년 <감사의 노래> / 2003년 <사랑의 신비>
그 외 1978년 독일 가곡 181곡, 슈베르트 가곡 200곡 번역

 

+ 미디어 리뷰 +
이토록 행복한 미소
2014-10-24 14:59:41 | 김한수 기자 | 조선일보

고희(古稀), 일흔 할머니의 미소에서 여성으로서 매력이 느껴진다. 최근 생애 첫 책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바오로딸)을 펴낸 성악가 김청자(70)씨다. 젊을 때, 화려한 무대에 섰을 때보다는 전기조차 없는 동(東)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고아들을 돌보는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사진 속 얼굴의 행복감은 찬란하게 빛난다.

 

"저는 스스로 생각해도 참 진취적이라고 생각해요. 넌 시집가면 남편이 돈 많이 들겠다. 얼굴이 넓어서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얼굴 크고, 미간(眉間) 넓은 것이 어릴 때 엄청난 콤플렉스였어요. 그래도 웃으며 여기까지 왔어요. 하느님이 주신 DNA일까요?"

 

김씨는 입지전적 삶의 대명사다. 성악가를 지망했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간호사로 취업해 독일로 갔다. 거기서 신부와 수녀의 도움으로 음대에 진학, 장학생으로 성악을 공부해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문을 열 때 귀국해 65세까지 후학을 가르치고는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동생들 공부시키고 어머니 모시느라 유일하게 남은 경기도 양지 전원주택도 처분했다. 집 판 돈 5억원 중 2억원은 말라위 청소년 돕기 후원회에 내놓고 아예 삶의 근거를 아프리카로 옮겨버렸다.

 

그는 열한 살 때 성당에서 만난 하느님과 피아노(음악)란 선물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정년퇴직 후 찾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는 상수(常數), 최근의 에볼라 바이러스는 변수(變數)이다. 역경을 만날 때마다 극복 혹은 포기 양자택일로 돌파해온 그다. 이번에도 그의 선택은 극복이다. 수년 전 결성한 후원회 이름을 김청자의 아프리카 사랑으로 지은 것도 조금이라도 알려진 내 이름을 팔기 위해서다.

 

김씨는 말라위 청소년 11명을 데려와 22~24일 국립극장에서 공연한다. 악보 볼 줄은 몰라도, 듣기만 하면 그대로 따라 하는 독특한 천재들이다. 그는 "내 무덤은 아프리카"라고 했다. "평생 예술가로 살아왔는데 마지막도 멋진 퍼포먼스로 끝내야죠."

 책과 공연 티켓 판매 수익은 모두 아프리카 말라위 청소년을 위해 쓰인다.

 

더 알아보기 : http://www.pauline.or.kr/bookview?gubun=A02&gcode=bo100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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