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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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참 심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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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4-02-23 ㅣ No.170032

 

오늘 복음묵상글 제목을 제가 '오늘 복음은 참 심오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날 복음은 심오하지 않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다른 날 복음도 심오할 것입니다. 그런 모순 같은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이 말의 틈새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모든 복음은 다 심오하지만 그 복음 중에서 오늘 복음은 오늘 복음에서만 국한해서 본다면 그속에 문자적인 의미를 넘어서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그 포인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측면에서 심오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언어는 글과 말로 구성이 돼 있습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당신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봤는가" 할 때 이 말의 의미를 실제 눈물이 젖은 빵이라고 이해를 한다면 이 말을 한 사람의 의중을 이해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김소월 시인의 대표적인 시인 '진달래 꽃'에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같은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시인은 정말 억장이 무너질 것입니다.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역설은 강조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새벽에 복음을 묵상한 것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느낌을 다 표현하자면 엄청난 분량을 해도 충족이 되지 않겠지만 그 일부만을 한번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천국은 누구나에게 문호는 개방돼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오늘 복음을 진지하게 묵상하면 그런 면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대전제를 다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 말씀대로라면 천국 가는 조건이 보통 까다로운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해봅시다. 

 

지금 만약 나의 영혼의 상태로 천국을 가는지 가부를 결정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의로움으로 무장돼 있는지 말입니다. 이게 천국을 갈 수 있는 척도가 된다면 과연 우리 중에 몇명이 천국에 입성할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여긴 또다른 역설적인 의미가 숨어 있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의로움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의로움이라는 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뜻보다도 더 중요한 뜻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실례를 하나 들어 설명해 주십니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는 말과 대조적인 의미로 역접 조사 '그러나'를 사용해서 표현하셨는데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그러나 역접 조사를 사용하셔서 표현하신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면 오늘 복음의 심오한 의미를 다 이해했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정리하자면 살인을 했을 때 재판에 넘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것만 사람을 살인한 게 아니고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즉, 살인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접 조사를 사용해 또 하나 언급하십니다. 결과는 지옥이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실제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바보는 그 의미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의미와 같지는 않는데 이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끔찍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또 이걸 단순하게 생각해서 지옥에 갈 만큼 중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의미는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의 의미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표면적인 의미는 성당에 다니는 것입니다. 단순한 출석의 의미가 아니고 미사와 같은 전례에 참석하며 생활하는 것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예물은 예물도 예물이지만 이건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인 미사를 상징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전체를 정리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미사가 아주 생명처럼 여기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무리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형제와 갈등과 반목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런 제사를 드려본들 의미가 없다는 말씀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또 달리 표현하면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미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형제간의 우애라는 것입니다. 우애도 하지 못하면서 나를 경배한다고 하는 그런 제사는 부질없는 제사라고 하시는 말씀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신 것이라고 해석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내용을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을 한다면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하느님을 경배하기 이전에 또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기 이전에 공동체라든지 형제들 간에 인간 세상에서도 서로 지키고 해야 하는 예의범절이라든지 그런 가장 기본적인 것도 하지 못하면서 하느님을 따른다는 것은 제대로 하느님을 믿고 따른다고 볼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를 해야 할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해를 해야만 오늘 복음 첫 부분의 말씀이 이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것도 되지 않는다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만큼의 의로움에 결코 이를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정도 의로움을 능가하려면 이건 그냥 기본의 기본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은 그냥 단순히 쉽게 누구에게나 문호가 개방됐지만 아무나 갈 수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세상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깊이 있는 심도 있는 학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단순히 천국이라는 환상에 매료돼 실제 그보다 더 중요한 본질을 놓치게 된다면 엉뚱한 노선의 버스를 타고 지금 자기는 목적지를 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세상에서는 이렇다면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가면 되지만 우리의 신앙여정은 이런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내가 천국가는 영혼의 버스를 잘 타고 가는지 한번 냉정하게 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버스를 탔다면 과감히 버스에서 내려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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