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가시나무와 포도나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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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mic2885] 쪽지 캡슐

2011-09-24 ㅣ No.65020

가시나무와 포도나무의 관계

 

본문 마7:16절

마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그러므로 말씀을“레마”로 보고 먹은 자는 회개를 하게 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열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인데 이 열매는 심령이라는 마음에서 말이

 창조되어 입으로 나오게 될 때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십자가의 도를 따

라 사랑이 나오게 되는 영(말)이 열매인 것이다.

 

그래서 가시나무와 포도의 비유가 나오고 엉겅퀴에서 무화과 비유가 나오

는데 이것을 영적인“레마”로 보게 되면 왜 주님이 비유적으로 또는 수

건이라는 덮어 놓은 상태로 말씀을 하시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시나무와 포도나무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면“가시나무”의 영적원리를

우리 사람을 창세기를 비롯하여 계시록까지 성경의 곳곳에서 사람을 나무

로 비유로 하고 있다는 것은 아실 것이고 그렇다면“가시나무”

영적 이것이 중요한데

이는 우리 인간이 나무로서 가시 돋친 나무가 되기 때문에

이는 우리의 심령에 죄를 지음으로

죄의 가시가 돋은 심령을 가시나무라고 하는 것이다.

 

아2:2 여자들 중에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이처럼 여자들이란 예수님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율법적인 사람을 여자라 하고 예수님을 맞아들인

 준비가 다 된 사람은 신부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비유적인 말씀이기 때문에

“여자들 가운데 내 사랑은”이라는 말씀은

율법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죄를 깨닫지를 못하고

회개하지 못한 심령 상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가시나무라고 하기 때문에

주님이 이러한 사람을 안아주고 구원을 시켜 주어야 하기 때문에

흠과 티가 없이 맑고 아름다우신 백화인

주님이 율법적인 심령의 원망과 불평과 정죄하면서

 회개하지 못한 가시나무를 가슴으로 품어주려니까

주님이 십자가에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도록 살이 찢어지고

머리에 가시에 찔리고 손에 못이 찔리고 발에 못에 찔리고

 옆구리는 창에 찔리는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바로 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말하기 때문에

이렇게 회개하지 않은 가시나무에서는

포도 열매가 열릴 수 없는 것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주님은 또 다른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는 엉겅퀴라는 말씀은 우리의 심령 밭에

사단이 덧 뿌리고간 가라지와 같은 비유로서

우리의 심령에서 자라고 있는 사단의 속성인 참소와

율법의 속성인 정죄는 동질로서

 이러한 율법적인 심령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자에게서는

무화과의 열매를 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로 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영생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을 믿는 자라고 하면서

천국의 신령한 축복과 영생을 주는 말씀을

생명적으로 먹지 못하면 육신적인 생각과 믿음으로 살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생보다 눈에 보이는 육신이 요구하는 소망을 따라

 찾고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 말씀을 보더라도

율법적인 초등학문으로 보이게 되어 말씀을 눈으로 보지만

 생명적으로 먹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의 사 복음서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창세기를 비롯하여 계시록에 이르기 까지

진리의 말씀을 증거 하고 있는데

특히 공관복음에서는 천국복음을 말씀하시고 있고

요한복음에서는 영생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

네 개의 강으로서 이 사대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로 합쳐진 에덴에서 발원한 강이 나오는 것을

계시록에서는 하느님의 보좌로부터 생명수의 상이 흘러내려오는데

이 생수의 강물을 먹은 자는 달마다 실과를 맺게 되며

이 생수의 강물이 진리의 성령을 가리켜 말한다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요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처럼 성경은 모두 비유로 말씀하시지만

성경의 곳곳에 말씀을 짝을 맞추어 열어 놓은 것을

 연결고리로 가져오면 이것이 성전을 짓는 재료가(벽돌,보석이) 되어

 우리의 심령이 팔복의 심령으로 완성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말하고 있는 예수 안에 있다는 말은

바로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신령한 역사를 아는 것이며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느님의 말씀의 세계를

 이 땅에서 누리고 살지 못하거나

실제로 영적인 지각을 가지 못하는 자를

영적인 소경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심판적인 심령상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주님은 환난과 연단을 통해서 그 심령이

깨닫고 벗어나게 하기위하여 지금도 주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일하고 계신 것이다.

 

이렇게 환난과 연단을 주면서 깨닫도록

선지자나 복음전도자들을 통해서

끊임없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인치시며 두드리고 있지만

그 심령이 완악하여 듣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오직 여기가 좋사오니 하면서 초막집을 짓고 살려고 하는 것이

율법적인 믿음의 살고 있는 상태인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여 표적과 기사를 따라다니던 영적 유대인이 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되기 때문에 주님이 내치시는 것이다.

출처 :대전 목자교회   글쓴이 : 시온산 열매

        * 해석상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수정한 점 양해바랍니다.

 

 
“내 친구에게는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이 하나 있었네.
땅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어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네.
그 가운데에 탑을 세우고 포도 확도 만들었네.
그러고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들포도를 맺었다네. ……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이사 5,1-4)
『성경』에서 말하는 포도는 사랑의 상징입니다.
 이사야 예언서는 주님께서 당신 포도밭
이스라엘에 사랑의 열매를 맺을 포도나무를 심으셨지만
들포도가 맺히자 한탄하시는 모습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포도나무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고 제때에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서
 들포도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나무가 되어 탐스러운 포도송이 같은 사랑의 열매를 맺는 게 아니라
 들포도 같은 형편없는 열매를 맺을까 걱정하고 계십니다.
농부가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 정성을 다하면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우리 자신을 정성스럽게 가꾸는 농부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주님!” 하고 ‘입’으로만 부르는 ‘잎’만 무성한 나무가 되지 않도록,
불필요한 가지는 잘라 내고 제때에 영적인 양식을 제공해야 합니다.
주님 정원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 한 그루는
자신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011.9.24(토)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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