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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하느님의 뜻' 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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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임 [rmskfk] 쪽지 캡슐

2017-09-03 ㅣ No.9239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하느님의 뜻을 따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습

니다. 예수님의 뜻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

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라고 당신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제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십자가는 작은 의미에서

는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더 큰 틀에서는 타인이 나에게 지워

주는 고통들이라고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예수님의 잘못과 예수님의 죄 때문에 발생한 십자가

가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곧 하느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더더욱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의 욕심과 욕망

에 의한 십자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른 말로 표현할 수

는데 저는 '무저항 비폭력'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정당방위'라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죽이

려고 공격해 올 때 죽지 않기 위해서 방어하다가 상대방을 죽일 수도 있는데, 그러한

어떤 것을 우리는 '정당방위'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

도 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신 분

들이 바로 순교성인들이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순교성인들이 "나는 너희들에게 죽임을 당할 죄를 짓지 않았어!"라며 저항하고 자신

이 살기 위해서 애썼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 전쟁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

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

니까 '나 때문'이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뜻, 예수님의 뜻인데 그 뜻이 바로 '비폭력

무저항'이라는 것입니다. 그건 다른 말로 하느님의 뜻은 '전쟁'이 아니라는 것으로

저는 이해하였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나라는 '전쟁'위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고, 자신을 죽이는 원수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위에 세워지는 나라라는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

하셨고 그것을 '다 이루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

다."(루카 23,34)라고 그들을 용서하셨고 또한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사랑의 모습이 바로 하느님의 뜻인 사랑의 완성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예수님의 십자가상 사랑을 이해해 보려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약 내 아들이 나에 대해서 수많은 오해를 안고 나를 죽이려고 달려든다면 나는 살

기 위해서 정당방위를 할 것이고 그러는 가운데 내가 힘이 더 세다면 내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데, 나는 내가 살기 위해서 아무리 정당방위라고 해도 내 아들을 죽일 것

인가? 진실로 사랑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으심이 참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이 말씀에서 '나 때문에'를 '사랑'으로 바꾸어 묵

상해 보면서 예수님의 십가가상 죽으심이 사랑의 완성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

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길은 '비폭력 무저항' 곧 사랑의 완성의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고요.

 

추기경님의 글에서 "베드로는 왜 예수님께 반박을 하며 항의했을까요? 베드로의 인간

적 생각으로 메시아가 고난을 당하고 죽는 것을 도대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라는 글에서, 사실 베드로 사도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 마음 안에는 '비폭력 무저항'보다는 '전쟁'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많기 때문

입니다. 싸워서 이기고 싶은 그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저 자신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까 "정녕 내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

입니다. 결국 내 안에 예수님이 없고 그 말은 내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없는 채로 살아

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싸워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을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이라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제가 당신이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 곧 참

사랑의 길을 용감하게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사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마태 5,44-45) 예수님께서는 당

신께서 하신 말씀을 십자가의 길과 십자가상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바

로 하느님의 뜻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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