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일)
(녹) 연중 제27주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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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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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숙 [hedbig] 쪽지 캡슐

2009-04-02 ㅣ No.132569

어느 덧 마음 놓고 적당한 거짓부리를 해도 좋은 날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작년엔가는 제법 맘놓고 웃어도 좋은 글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제가 큰 맘 먹고 오늘 아침에 써올린 글은 저의 인간성이 워낙 신실한 탓인지 (ㅎㅎㅎ) 아니면 글이 워낙 애매모호하고 재주가 없는 탓인지 별로 거짓부렁이 대접을 받지 못한 듯해서 실망이 큽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봉고차에 대충 짐을 꾸려넣고 길을 떠나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리산에 관통도로가 생겼을 무렵에 차로 산을 넘어 깊은 밤에 어떤 절 앞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물소리를 쫓아 더듬어 가보니 절 문 앞에 샘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릎보다는 높고 허리보다는 낮은 곳에서 지름이 한 뼘은 넘을 듯한 물줄기가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대충 밥을 해먹고 잠이 들었나 싶더니 어디에선가 구성진 노래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도 상여소리지 싶은 남정네의 처염한 소리는 애간장을 녹이며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깊은 밤 한적한 절간 앞 소나무 숲속에 고단한 몸을 누였던 한 여행자의 마음안에 그 애절하고도 자즈러진 곡조는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숲은 뭉개지고 있는 중이었고 절은 몹시 쇠락해서 기와에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몹시 다정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천은사에는 가보질 못했습니다.
지나갈 뿐 들어가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같은 해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실컷 쏘댕기다가 앞도 안보이는 깊은 밤에 간신히 차 하나 댈만한 자리를 겨우 찾았습니다. 
저녁밥을 해먹는데 먹물을 들이부은 듯한 하늘에 별이 얼마나 빼꼭한지요.
별들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어 스스로 반짝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논 사이에 간신히 차하나 다닐만한 농로에 남아있던 둔덕이어서 부랴사랴 짐을 챙겨 차를 빼내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추억은 아마도 평생을 함께 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 별 사이에서 반짝거리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만우절 아침에 모전 자전인지 유머 감각이라곤 없는 아들이 한 마디 합니다.
' 나이들 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이 기억력이 나빠져서 그런 것일까?'
생각해 낼 것이 많지않아서 시간이 빨리 흐는다는 것입니다.
나이 어릴 수록 잊어버리는 일이 적으니 기억할 것이 많아서 시간이 더디간다고.
'어디서 본 얘기야'
'으응~~ '
아들놈은 심드렁하니 귀찮다는 듯 말을 줄입니다.
 
웃을 일도 감동 받을 일도 거의 찾아보기 힘든 나이가 되어가니 정말 세월은 살같이 흐르는군요.
젊어서도 남을 웃기는 일이 힘들었으니 이제와서야 더욱 그렇습니다.
만우절이 다 가도록 절 웃게 해주는 사람을 못만나 아쉬움이 큽니다.
그 아쉬운 마음을 글로 적어봅니다.
아, 그립다.
날 웃겨주는 사람.
 

                                                                                  배봉균님 사진 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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