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일)
(녹) 연중 제27주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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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을 기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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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msk1009] 쪽지 캡슐

2009-04-03 ㅣ No.132619

“안녕하세요? ○○○에요. 추기경님 조문을 하고 가는 길인데, 선생님도 다녀오셨죠? 이제 저도 성당에 다시 나가려고요.”

두 아이의 주일학교 등록비가 어려워 본의 아니게 아이를 냉담자로 만들었다고 울던 후배, 자신처럼 가난한 사람은 교회에 가도 상처만 입는다며 쉬고 있던 후배가 늦은 밤에 전화를 했다. 뜻밖의 전화는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까지 뭘……’하며 조문을 미루고 있던 나도 전화를 받고 다음날 새벽 긴 행렬에 끼여 3시간 넘게 추위에 떨다가 몇 초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미사에 참례했다.

장례기간 동안에 각 방송과 신문은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해 故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삶을 칭송했다.
윗자리에 계시면서도, 낮은 곳에서 하늘을 우러러 볼 힘조차 없이 땅만 치고 있던 이들을 껴안으셨던 분. 말조차 할 수 없어 피를 토하는 이들의 입이 되어, 귀를 막고 사는 이들에게 진실을 웅변하셨던 분.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약자들에 대해 눈을 감고 있던 이들에게 진실을 보도록 시선을 모아 주셨던 분.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던 분. 많이 사랑하라고 말하고도 더 많이 껴안아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하시던 분. 받은 것이 많아서 고마웠다고……, 용서를 청하며 사랑하라고 하셨던 분.

화려하고 육중한 권좌에 앉아,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며,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느라 기도만 하고 계셨더라면……, 말씀과 더불어 행함이 없었다면 방송과 언론은 과연 무어라고 김추기경을 추모했을까 싶다.

춥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시기에 김추기경의 행업은 빛이 되었다. 희망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돌파구가 된 가톨릭교회는 많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회로 새롭게 입교하고, 쉬던 교우들도 다시 되돌아오고 있다. 교회는 김추기경의 마지막 말씀을 내걸고 캠페인과 기념사업을 하여 새롭게 도약하는 발판으로 삼겠다고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김추기경의 뜻을 따르는 진정한 교회공동체의 모습이 삶으로 보여져야 하지 않겠는가.
추운 날씨에 높은 망루에서 기본적 생존권을 외치다 뜨거운 불길 속에 타버린 용산참사 희생자들은 이 시대의 난장이들이다. 그분들은 우리 이웃이며 김추기경이 함께하고자 하셨던 사람들이다.

사형이라는 제도를 통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이들을 치워버리려 해서도 안 된다. 동생을 죽인 카인도 무지한 살인으로부터 보호하신 하느님이시다. 김추기경께서도 사형을 반대하셨다.

나도 1600만원 이상의 빚이 있는데 굶주리고 있는 북한동포에게 퍼주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쓰레기 값이면 그들을 아사에서 구할 수 있다고 설득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김추기경을 기리는 추모 물결이 일시적인 쏠림의 현상이 아니라, 백성들의 목마름이며 갈망이라고 용기 있게 웅변해야 한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홈페이지 http://gaspi.org에서 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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