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일)
(녹) 연중 제27주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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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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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hee0530] 쪽지 캡슐

2009-03-31 ㅣ No.132489

울 아부지는 91세이십니다.
1919생이시고  1.4후퇴에 삼촌과 단 둘이서 월남하셔서
열심히 자식농사 지으며 사시다가 이제는 말년에 막내 딸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계십니다.
저녁식사 이후엔 반드시 청소를 하시는데...
빗질안하고 대걸래질하기
빗질 할때는 먼지를 쓸면서 발로 밟고 지나가기
그러다 보니..
먼지는 먼지대로 엉켜있고 걸레질 하나마나...ㅡ.ㅡ;;
그래도 유일하게 아부지가 저를 도와줄수 있는 일이다 싶어
지켜보는데 ...참...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숨쉴 때 마다 "프프~" 침을 삼키는 이상한 소리를 내십니다.
"프프" 소리를 내며 마루 청소를 하실 때 전 화살 기도를 쏩니다.
"하느님 제발 저 소리가 성가로 들리게 해주세요"
"저 소리까지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러나....쉽지 않은 일입니다.
 
치매 초기증상도  있는 듯 합니다.
아침 식사후 한숨 푸욱 주무시고 나서 ...."이제 밥먹어야지? " 하실 때도 있고
주로 낮에는 아파트 노인정에서 젊은?노인들과 시간을 보내시는데
점심 식사를 잘 하고 나가셔서, 한시간 쯤 지나서 헐레 벌떡 잰 걸음으로 들어 서시더니 한 말씀 하시는 겁니다
"날 왜 부른거야? 아까 점심 먹었잔아..."
"아부지 , 누가 불러요?"
"좀 전에 노인정에 와서 네가 그랬잖니...식사 하세요~!!
"전 노인정 간적 없는데요...."
"분명히 네가 왔었어..."
"아부지~!! 간적 음따니깐...~!!"
"이상하네....."
 
두달 전 쯤에는 점심을 드신 것이 체해서 구토를 하시다가 그만..
노인정 화장실 변기속에 틀니를 빠트리고 정신 없이 물을 내리고 와서..
얼마나 황망해 하시던지..
위 아래가 전부 틀니인데 아랫 틀니를 몽땅 빠트렸으니 씹을 수도 없고
자식들에게 틀니 해 달라는 말씀은 못하시고 몇일을 끙끙 앓아 누우 셨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못된 생각을 잠깐 했었습니다.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대충 죽이나 드시면 안될까..?"
그러나 틀니를 잃어 버리신 것을 한탄 비탄 통탄하며 자리보존 하시는  아부지를 몇일 지켜 보면서
그래..하루를 살더라도 편하게 살다 돌아가시는 것이 마땅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아부지께 말씀 드렸습니다.
"아부지 틀니 해 드릴테니 이제 그만 일어 나세요."위 아래 다 새로 해 드릴테니 이제 그만 일어 나세요"
우리 아부지 거짓말도 잘하십니다..
"하긴 뭘하니....얼마나 살겠다고.."
ㅋㅋㅋ
결국 새 틀니를 하시고는 의사에게  호탕하게 한말씀 하십디다..
"내가 이제 새 틀니 끼고 10년은 너끈하게 살것 같소~!!"
 
사실...연로한 부모님을 모신다는 것이 항상 편하고 기쁘지는 않습니다.
큰아들만 편애 하던 울엄마 생각하면 처음엔 내가 왜 모셔?
라는 생각에 울화통이 치민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곧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가톨릭 신앙의 첫 선물임을 깨닫게 되었지요.
" 그래요...주님 제가 메어 볼게요. 함께 해주세요"
 
사랑받지 못했던 것..가족간의 상처...오빠들에 대한 미움...
모두 주님께 봉헌 했습니다.
그래도 내 정신으로? 돌아오면 억울한 것도 많고 속상한 것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울 주님께서 생각 나게 하시는 것이 있는데요..
어릴 적 아부지 발등에 올라서서 아부지와 걷기도 하고 춤도 추었던 기억 입니다.
그렇게 깔깔대며 돌다가 울 아부지는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마구 내볼에 문지르며 장난을 치셨지요.
그 옛날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무슨 일일까요..
 
어제 어느 할아버지의 입관식에 참석하면서 ...
자녀들의 눈물과 비통한 흐느낌속에
베옷한벌 새로 입고 편안히 누우신 할아버지께 성수를 뿌려 드리면서
스스로를 다지게 되더군요
사시는 날까지 행복하게 해드리자..
우리의 이 날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느님의 은총은 그렇게 커져 가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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