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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천상병 시인 - 목동성당 수녀님 떠남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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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stefanlee] 쪽지 캡슐

2009-03-29 ㅣ No.132428

 

 

나는 행복(幸福)합니다

나는 아주 가난해도
그래도 행복(幸福)합니다.
아내가 돈을 버니까!

늙은이 오십세살이니
부지런한 게 싫어지고
그저 드러누워서
KBS 제1FM방송의
고전음악을 듣는 것이
최고(最高)의 즐거움이오. 그래서 행복(幸福).

텔레비젼의 희극(喜劇)을 보면
되려 화가 나니
무슨 지랑병(炳)이오?

세상은 그저
웃음이래야 하는데
나에겐 내일도 없고
걱정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찌 어기겠어요?

행복은 충족입니다.
나 이상의 충족이 있을까요?

 

 

제가 천상병 시인을 마지막 만난게 
어느 해 한여름 이었습니다
.

휴가를 거의 마치고

율성사란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시던 김우종이라는 지인을 뵙고

인사도 드리고 마무리 할 일들도 좀 있어서 점심약속을 겸해서

출판사가 있는 미아리행 뻐스를 탔습니다
.

뻐스를 타고 보니 뻐스 차장이 서있는 문 바로 뒷자리에

어린아이처럼 아주 얌전하게 천상병 시인께서 앉아계시는 겁니다
.
해서 반가움에 인사를 드렸지요, 크게..(이분이 귀가 좀 어두우셨습니다
)

(나) 아니, 아저씨,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크게
...)
(천시인) 나는 집으로 가는 길이지 (나보다 더 크게
...)
(나) 아니 이시간에 왜 집엘 가십니까
?
(천시인) 어제 오늘 마실 막걸리를 미리 마셔버려서 집엘 가고있지
...
(나) 요즘은 댁이 어디신데요
?
(천시인) 의정부라는 곳에 자그마한 곳을 얻어서 즐겁게 살고 있지
.

벌써 뻐스 안의 호기심어린 몇몇 눈길이 우리들의 대화를 (특히 시인의 톡특한 어휘법 때문에) 들으며 좀 모자란 사람 구경났다는 듯이 모아지고 있었습니다
.
내려야 할 곳이 다가오길래 더 길게 얘기를 못하겠어서

주머니를 뒤져서 만원권 한장을 드리면서 아저씨 맛난거 사 잡수세요 했더니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이걸로 막걸리를 대단히 많이 사마실 수 있게 되었구나
,
고맙다, 정말 고맙다... 를 뻐스에 탄 사람들이 다 듣도록 크게 떠드시는데

그 표정이 흡사 어린아이가 큰 선물을 받아줜 모습이었습니다
.

자그마한 체구,(제 어깨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키
.)
거의 찾아볼 수가 없는 머리칼
,
눈동자가 거의 안보이는 작은 눈
,
상대적으로 아주 큰, 늘 헤벌적 웃는 입
,

옷차림은 어디든 모인사람들 중에서 가장 남루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옷은 깨끗한데

옷을 입은 시인이 전혀 옷과는 어울리질 않는

아주 남루함을 풍기는 외모이지요
.

이 천시인은 부인이 인사동 입구 가판에서 도자기를 팔면서

단골다방에 하루에 꼭 커피두잔씩의 값과 신탄진 담배 한갑
,
단골 밥집에는 점심과 막걸리 한사발 값을

미리 맡겨놓고 그 이상은 절대 드리지 말고 드려도 계산은 못하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

아침이면 달랑 버스비를 받아쥐고는 의례 출근하는 관철동 한국기원 지하다방에서

그 날 부인으로 부터 배당된 커피 두잔중에 한잔을 호기있게 시키고

마담으로 부터 역시 그날 배당된 신탄진 담배 한갑을 공손히 받아들고

담배 한가치를 호기있게 뽑아서 쫙 핀 손바닥 엄지와 중지사이에 끼우고

이사람 저사람의 테이블을 돌며 얘기를 나누다가
...

점심 때가 되면

관철동 뒷골목의 밥집으로 가서 역시 부인으로 배당된 밥에 막걸리 한사발 마시고

오후에는 다시 기원 지하다방에 와서 나머지 그날의 배당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천상병 시인의 일일 소비는 끝이나지요
.

물론 많은 경우에 커피나 점심을 아는 지인에게 신세를 즐겁게 지기도 하시고

어쩌다가 한국문학이나 근처 문학사 같은 사무실을 가는 날이면

운이 좋으면 걸한 저녁에 푸짐한 막걸리를 많이 얻어 마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 운이 좋은 날 미처 사용하지 못한 부인으로 부터의 일일배당된

커피나 점심, 막걸리는 이 시인의 아주 큰 풍요의 즐거움이 됩니다
.

제가 천상병 시인과 만나던 시절에는

고문의 후유증인지 슬하에 자녀는 못두셨고 건망증이 대단히 심해서

부인이나 저를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온 몇몇 오랜지인들만 늘 기억할 뿐 이었습니다
.

부인을 포함한 허물없이 가까운 사람에게는

늘 (지랄한다, 지랄한다,험,험,)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버릇이 있었고

화가 날 때는 부인에게는 (문딩이 같은 년, 지랄한다,)는 표현을 잘해서

저를 포함한 가까운 사람들에게 주의를 들의면 그저 헤,헤, 히..하는 웃음으로 넘기곤 하셨습니다
.

이 시인의 내면은 뭐였을까?


시로 표현된 소박한 즐거움은
자신의 노력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시인 스스로가 이미 그리 되어있던 상태가 아니었을지
...

그러나 정말 그러나

천상병 시인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살수있게 만든 것은

노점상을 하면서도 시인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울타리를 만들기 위해
고생과 때론는 사람들의 멸시까지 담당한 천상병 시인의 부인
,
목순옥여사의 노고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

우리는 남루한 천상병 시인을 사랑했는가
?
많이들 그의 시를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혹은 그의 맑은 시어를 사랑한다고 말할런지도 모릅니다만

생전의 이 시인을 사람들은 별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

기피하고
,
때로는 비웃기도 하면서

살아생전에 사람들로 부터 환영받지 못했던 시인은

그런 사정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듯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철저하게 자기만의 기분, 자기의 표정과 어눌한 어법을 사용하는 표현을

아무 꺼리낌 없이 내어놓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


그 분이 시를 짓는 작업을 하는 것을 보셨는지요
?
아주 시골의 남루한 영감님이 서울에서 식모살이 사는 딸을 찾으러 올 때

주머니 속에 꼬기꼬기 넣어온 딸의 주소가 적힌 종이처럼

아주 형편없는 쪼각종이 위에다가 연필로 쓴겁니다
....

부유하지도 않고 아주 가난하지도 않게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주시기를 비는

이사야서의 어느 귀절이 떠오릅니다.

 

 

  
 

수녀님과는 말씀 한마디 나누질 못했습니다.

평일미사에 가서는 기둥 옆에 숨어 계시듯 앉으셔서 미사하시는 모습만 뵈었고

그리고 어제 곱게 인사하시는 수녀님을 보내면서

왜 가난한 천상병 시인이 남긴 행복한 詩語들이 생각났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수녀님,

어디에 계시던지 우리와 기도 중에 만나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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