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6일 (일)
(녹) 연중 제27주일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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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아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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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희 [lusi71] 쪽지 캡슐

2009-03-30 ㅣ No.132433

+ 샬롬...
 
이번에 나눔평화 아카데미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색이 너무 예쁘죠?)
10차에 걸친 강의중 첫 스타트를 김인국 신부님이 끊어 주셨죠.
우스개말로 "내가 첫타자인데 안타를 치고 나가야 이 경기가 잘 풀릴텐데 걱정입니다.  ^^ " 하시더군요.
 (아기같이 웃으십니다...^^)
정말 안타를 치셨습니다.
청강생으로 온 많은 이들이 계속 강의 듣기를 원했던 것 같으니까요. ^^
 
너무 좋은 말씀 많이 해 주셨는데
그 중에 한 귀절...
 
" 악을 이기는 것은 오로지 선을 더 많이 행하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23세-
 
때로 악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 분노가 더 많아지는 요즘의 시기에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말씀이셨습니다.
 
....
저도 한가지 경험 나눔을 합니다.
 
예전에 저는 옳고 그름에 대한 열정이 가득해서
해야할 말은 하고 사는 열혈녀였지요. (...그것을 옳다고 여긴거지요.)
 
한 성당 선배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열정을 버리지 못해 신학교에 들어갔지요.
 
오랫동안 어려서부터 본 그 선배가 저는 무언가 아쉬웠고,
사제가 되려는 마음조차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함께 하는 자리가 있을 때마다 '도대체 왜 사제가 되려 하느냐?' 며 따지고
'공부가 하고 싶다...' 라는 그의 대답에
'그것은 개인적 욕심이 아니냐? 사제란 타인을 위한 마음이 우선이다.' 라며 싸웠죠.
 
그래서 그가 부제품을 받은 날, 뒷풀이에 가서조차도
"오빠같은 이가 사제가 되는 것이 싫다..." 라는 말도 서슴없이 뱉었지요.
(사실 그런 버릇없음은 지금도 고치지 못하고 있는 제 결점입니다...-_-;;)
 
...
그런 그 선배를 얼마전 만났습니다. (...이젠 신부님이죠?)
쭈뻣거리며 길가던 길에 들른 저를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더군요.
 
그의 편안한 얼굴에...
여전히 뻔뻔히 웃으며 '나 오빠 싫어했는데 얼굴보니 좋아 보이네?' 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백했습니다.
'지금은 오빠를 부르신 것이 정말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해해...' 라구요.
 
네,
정말입니다. 진심입니다.
 
신자들을 위해서 죽어라 사목만 잘해야 하는 것만이,
정의를 위해서 길거리에 서서 외쳐야 하는 것만이,
하느님이 사제를 부르신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나이먹어 깨달았습니다.
 
'성소'라는 사제나 수도자들만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이 다 받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아버지앞에서 나서서 세례를 받고 자녀가 된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직접 우리를 부르신 '성소'의 응답이라는 것을요.
 
노래만 잘해도... 그 찬양으로 누군가 아버지를 담을 수 있다면,
그림을 잘그려... 그 작품안에서 누군가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글을 잘 써서... 그 문장 한 줄에 누군가 아버지를 향해 회개할 수 있다면,
말을 잘해서... 아버지에 대한 말씀을 뜨겁게 전할 수 있다면,
공부를 잘해서... 그분의 언어를 풀어 누군가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그분이 허락하신 은총입니다.
그래서 부르신 것이더라구요.
 
제가 사실 가장 좋아하는 신부님은 강론을 정말 못했습니다.
무슨 책읽듯,,, 어려운 말만 가득... -_-;;
그래도 하루도 빠짐없이 묵상글을 올리시고, 매일 평일미사에 강론을 준비하셨죠.
 
하지만 부지런히 너무 바쁘게 몸으로 뛰셨습니다.
본당의 중고컴퓨터를 모아 용산에 가서 고쳐서는 소년소녀가장에게 직접 배달하시고,
청년들의 활성화를 위해 부족한 예산을 마련하느라 여기저기 앵벌이강의를 뛰시고는
그 봉투 들고와 전해주는 것을 기쁨으로 아셨습니다.
...그 외에도 너무 많은 일을 하셨죠.
 
부족한 것을 몸으로 때운 케이스입니다. ^^*
지금도 벌린 일이 너무 많아서 항상 바쁘시다는 것을 알지요. (또 여전히 강론을 못하시는 것도 압니다..-_-)
 
모두는 그렇게 각자... 아버지를 위한 피조물의 역활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고, 내가 필요없다...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귀한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는지???
그것은 지금 이 순간 인간의 눈에는 드러나지 않아도,
언젠가 아버지의 나라에 가게 되면 어지러운 퍼즐이 맞춰지듯,
그가 아버지의 세상의 어떤 필요한 조각이었는지 우리는 알게 될 것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판단을 미뤄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절대로 우리가 쉽게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헤어지던 그 순간,,,
그 선배인 신부님이 제게 포옹을 원했습니다.
'안아보자... 내가 그게 요즘 모두에게 인사하는 법이야...' 하구요.
 
품에 안기던 순간, 사실 숨겼지만...
너무나 따뜻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에게 용서를 청하고,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며...
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고백했습니다.
 
순간이나마 모두를 나도 안아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의 포옹은 그렇게 모든 것을 녹였지요.
 
...
돌아오며 생각했습니다.
나도 되도록이면 나의 모든 이들을 안아주자...하구요.
내가 미워하는 이들이라면, 나를 미워하는 이들이라면 더욱 안아주자...하구요.
 
나그네의 옷깃을 풀었던 것은 쌩쌩 불어오며 옷깃을 열고자 애쓰던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햇빛이...
그 빛이...
그의 여몄던 옷깃을 열었습니다.
그의 굳었던 몸도 녹였습니다.
 
누군가의 굳었다 생각되는 마음도 녹일 수 있는 것은,
빛이요, 사랑의 온기입니다.
...사람의 온기입니다.
 
서로 안아 주시는,
온기 나누시는 한 주, 사순되시길 바랍니다...
 
" 악을 이기는 것은 오로지 선을 더 많이 행하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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