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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2일(일) 사순제4주 성니콜라오 오언, 성녀레아, 성바실리오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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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 [p33233323] 쪽지 캡슐

2009-03-21 ㅣ No.132120

 
  strong>니콜라오 오언(3.22)◀
 
성인명 니콜라오 오언(Nicholas Owen)
축일 3월 2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606년
같은이름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오웬

 

   영국 옥스퍼드(Oxford) 출신인 성 니콜라우스 오언(Nicolaus Owen, 또는 니콜라오)는 처음에 목수 일을 하다가 그 지방의 예수회 건축 일을 담당하던 중에 예수회의 평수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요한 제라르드(John Gerard) 신부와 함께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가톨릭의 조직을 누설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부유한 신자가 대속금을 지불함으로써 석방되자, 제라르드 신부를 런던탑에서 극적으로 탈출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재차 런던탑에 투옥되어 3월 2일에 순교하였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데오그라시아(3.22)
 
성인명 데오그라시아(Deogratias)
축일 3월 2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활동지역 카르타고(Carthago)
활동연도 +457년
같은이름 데오그라시아스, 데오그라씨아스, 데오그라티아스
 
   카르타고가 439년에 반달족에 의하여 점령당했을 때, 아리우스파(Arianism) 사람들은 궛불트데우스 주교를 추방함과 동시에 대부분의 성직자들을 물이 스며드는 폐선에 태워 떠나보냈는데, 이들이 다행스럽게도 나폴리(Napoli)에 도착하였다. 그때부터 14년 동안 카르타고에는 주요한 목자 없이 지냈는데, 발렌티니아누스의 요청으로 다른 주교 임명이 허용되었다. 그가 바로 데오그라티아(또는 데오그라시아)라는 이름을 가진 사제였다.

   성 데오그라티아는 자신의 신앙과 가르침을 통하여 백성들의 신앙을 일깨우기 시작하였고, 이방인은 물론 아리우스파 사람들조차 그를 존경할 정도로 그의 선교활동은 크게 성공하였다. 주교로 임명된 후 2년 남짓 하는 해에 반달족인 젠세릭이 로마(Roma)를 습격하였고, 또 많은 포로들을 아프리카로 돌려보냈다.
이 불행한 포로들은 반달족과 무어인 사이에서, 또 가족관계가 모두 끊어진 암담한 상태에 빠졌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다시 속량하기 위하여 데오그라티아는 성당에 있는 모든 귀금속을 팔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주교는 가장 큰 성당을 두 개나 적들에게 넘겨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주교는 운명하고 말았다. 카르타고인들은 그의 장례를 성대히 치렀고, 그들의 구원자로서 그를 공경해 왔다.
 
 
 
 
 ▶레아(3.22)
 
성인명 레아(Lea)
축일 3월 22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과부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384년
같은이름  
 
   로마의 부인인 성녀 레아는 과부가 된 후 성녀 마르첼라(Marcella)의 공동체에 들어가서 나중에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엄격한 생활과 극도의 고행으로 유명하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성녀 마르첼라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녀의 덕을 칭송하였다.
 
 
 
 
  ▶바실리오(3.22)
 
성인명 바실리오(Basil)
축일 3월 2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안키라(Ancyra)
활동연도 +362년
같은이름 바실리우스
 
   4세기 중엽 아리우스파(Arianism)와 반 아리우스파가 그들의 이단 교리를 전파하고 있을 때 성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안키라(오늘날 터키의 앙카라 Ankara)의 사제였다.
그는 거룩한 마르첼루스(Marcellus) 주교로부터 가톨릭의 정통 교리를 잘 배워 익혔던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마르첼루스 주교가 황제로부터 축출당한 후부터는 그 역시 주민들로 하여금 정통 교리를 준수하도록 가르칠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360년 극단적인 아리우스파들이 바실리우스의 사제직을 박탈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종교 집회를 금지시켜 버렸다.
그는 용감히 황제 앞으로 나가서 신앙을 옹호하고 싶었지만,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큰 박해가 시작되었다.
그가 신앙을 부인하지 않자 형리들은 그의 손목, 발목을 못 쓰게 만든 뒤에 투옥하였다가 사형에 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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