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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생존의 수수께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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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철 [skanenfl] 쪽지 캡슐

2009-03-17 ㅣ No.132007

12진법 · 12음계·십이지 / 수수께끼 같은 12 법칙

인류 구원사 속에서도  12지파·열 두 제자 뽑아

만약 아들 귀한 집 가장이 성경을 읽는다면,  맘 상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야곱이 아들을 ‘줄줄이’낳는 장면이다.

“이번에도 아들이에요”(창세 35,17).

아들, 아들, 아들, 또 아들이다. 야곱은 그렇게 아들을 무려 열둘이나 낳는다.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이 르우벤, 시메온(레위),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이고,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 요셉과 벤야민,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이 단과 납탈리,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낳은 아들이 가드와 아세르이다(창세 35,22-26 참조).

이들은 각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다.  한 민족을 열두 지파로 나누는 것은 기원전 2000~1600년경 당시 지중해 동부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12’였을까.

오늘날 유전학자들은 인류 생존의 수수께끼 속에는 ‘12의 법칙’이 숨어있다고 말한다.

인간 스스로도 모르게 그 몸속에 ‘12’라는 숫자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12의 법칙 균형이 깨지면 인류는 멸망한다. 유전학자들은 확률적으로 오늘날 왼손잡이는 전제 인구의 12분의 1(8.3%)이라고 말한다. 또 12명 중 한명은 색맹이고, 또한 대머리이다. 과거에 인간은 12명을 기본 단위로 사냥을 했으며, 그 중 대머리와 왼손잡이, 색맹이 포함된 그룹이 가장 사냥을 잘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손잡이 열한 명이 동물을 오른쪽으로 몰 때 한명은 왼쪽으로 몰아야 했으며, 관찰을 위해 동물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대머리였으며, 동물들의 보호색 위장을 판별해내는 색맹도 반드시 열두 명중 한명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실제로 대머리와 색맹, 왼손잡이 비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0.83%(1/12)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유독 12라는 숫자에 집착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것은 12진법(duodecimal, 十二進法)이었다. 우리는 이 12진법을 오늘날 시계를 통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오전과 오후 12시로 나눈다. 1년 또한 열두 달이다. 올림푸스의 주축이 되는 신도 열둘이었다.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원탁의 기사도 열두 명이다.

동양에서도 12는 무시하지 못할 수였다. 십이지(十二支)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말한다. 오늘날에도 음악에서 한 옥타브는 12개의 반음 간격이며, 컴퓨터 키보드에도 F1에서 F12까지 12개의 기능키가 있다. 물론 연필 한 다스도 12자루다.

구원사 속에서도 12는 위력을 발휘하는데, 예수는 제자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3).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도 열두 성문, 열두 초석으로 이뤄져 있다(묵시 21,12-14 참조).

아무튼 이스라엘(민족)은 이스라엘(야곱) 이후 그의 열두 아들을 머리로 하는 12부족동맹체제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민족은 훗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단결이 그리 쉽게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판관 5장 참조). 게다가 이들 부족들끼리의 영토에 대한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훗날 가나안 정복 후, 소위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은 납탈리, 이사카르, 아세르 등에게만 돌아갔을 뿐이었다.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이러한 반목을 아예 피하려 했던 기록도 있다. 열두 지파의 막내격인 가드와 르우벤 지파는 아예 약속의 땅을 거부하겠다고 모세에게 말했고(민수 32,1-20 참조), 시메온 지파도 이집트와 인접한 오늘날 가자 지구 남쪽 땅을 분배 받았다. 12지파 이야기는 뒤에 다시 나오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간다.

열두 아들, 즉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성경은 특히 요셉에 주목하고 있다. 성경이 주목한다는 것은 그에 의해 하느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의미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이스라엘)에 이은 4대손 요셉은 배다른 형제들의 질투로 인해 이집트로 가는 상인에게 종으로 팔리게 된다. 이후 요셉은 감옥에 갇히는 등 고난을 겪지만 타고난 지혜와 재능을 바탕으로 파라오의 눈에 들어 이례적으로 출세했고(이집트의 재상이 됐고),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형제들을 모두 이집트로 불러온다.

마치 먹고 살기 힘들어 미국으로 입양 보낸 아들이 미국 부통령이 되어 한국의 가족들을 초대하는 격이다. 아무튼 야곱 가족들은 조금은 얼굴이 두꺼운 편이었던 것 같다. 요셉에게 의지해 이집트로 건너간 가족(열두 지파의 조상 포함)이 하나 둘도 아니고 무려 70명에 이른다(창세 46,8-27 참조).

이때가 기원전 1600년경이었다. 이들은 이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자손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집트인들은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탈출 1,14).

그래서 람세스 2세 통치기간(기원전 1304~1237)에,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이집트를 탈출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애초에 요셉에 의해 이집트에 간 사람의 수는 70명이었다. 그런데 400여년 후, 이집트를 탈출하는 사람은 20세 이상 남자만 60만 3550명(탈출 38,26)이다. 아무리 자손을 많이 낳는다고 해도 불가능한 수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집트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집트 힉소스 왕조 · 이스라엘은 같은 혈통
기원전 1550년 이집트 18왕조 연  아모세 왕 - 제국주의 태도로 돌변 이스라엘 민족 학대
 
이집트 역사를 처음부터 찬찬히 훑어 나가다 보면, 성경과 관련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으로 이름을 날렸던, 그래서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가족들을 이집트로 이주시켰던 시기는 기원전 1600년 경이다.  하지만 당시 그곳에는 이집트가 없었다.

역사는  당시  이집트에 있었던  지배 세력을  ‘힉소스 왕조’라고 부른다.  이들은  이집트인들이  아니었다.  원래 메소포타미아 지역(현재의 이란, 이라크가 위치한 지역)에 거주했던 이들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무기인 2~4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로 무장하고  이집트를 침공,  기원전 1680년께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이집트를 식민통치 했다.

힉소스 왕조는  이집트에  있었던  왕조였지만,  실질적으로  이집트 직계 왕이  다스린 나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서  힉소스인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유대인들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 밝혔다.  힉소스 왕조와  이스라엘 민족은 혈통으로 볼 때  사촌뻘인 셈이다.

이제야  “요셉의 형제들이  왔다는 소식이  파라오의 궁궐에  전해지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이 좋아하였다” (창세 45,16)는 구절이 이해된다.  같은 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친족들을 불러들여  쉽게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탈출기 첫머리에  나오는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탈출 1,8)는 말도  힉소스 왕조를  염두에  둘 때만  이해할 수 있다.
 
새 임금이 힉소스 왕조를 잇는 왕이었다면,  선왕들이 존경했던 위대한 지도자 요셉을 모를리 없었다.  여기서 ‘새 임금’이란  바로 새로운 왕조가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힉소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이집트 왕조가 들어선 것이다. 그래야  엄청난 수의 인원이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유가  명확해 진다.

여기서 이집트 역사를 간단히 짚고 넘어가 보자.
고대 이집트 파라오 왕조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30개 왕조가  흥망을  거듭했는데(그래서 이집트 역사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복잡하다),  간단히  고왕조 시기(1~10왕조,  BC 3100-2040  약 1000년간),  중왕조 시기(11~17왕조, BC 2040-1567 약 500년간),  신왕조 시기(18~30왕조,  BC 1567-332 약 1200년간)로 구분한다.

힉소스의 침략으로  이집트 왕조가 남쪽으로 밀려나  힘을 쓰지 못하던 시기가  대략 중왕조 시기 후반이었다.

이때  이집트인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아마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아시아에서 온 침략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이주해온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톡톡히 앙갚음을 해 주고 말겠다.”

그들의 꿈은 현실로 이뤄진다.  기원전 1550년 경.  이집트 제18왕조(신왕조 시대의 첫 왕조) 시대를 연  아모세 왕은 마침내  힉소스 왕조를 무너트린다.

아시아인들의 침략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일까.  이전까지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주변국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갑자기 제국주의적 태도로 돌변한다. 도읍을 새로이 건설하고,  주변국들을 침략하기 시작했으며,  노예를 학대하고,  대규모 건축 사업을 일으킨다. 
이 상황은 탈출기 첫머리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 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탈출 1,11)

이스라엘인들은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가다가는  민족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시기는 정확히 언제일까.  많은 학자들은 대체로 그 연대를 그리스도 탄생 1200년전,  람세스 2세 통치기간(BC 1304~1237)인  기원전 122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참으로 아득히 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직 로마 민족이 지구상에 나타나지도 않았던 시기의 일이다.

아무튼  ‘아브라함→이사악→야곱→요셉  및  12형제’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족장시대’(Patriarchal Age)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그와 함께  구약성경 창세기도 끝난다.

이제부터  구약성경의 탈출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엄청난 한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쩌면 창조 사건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니는 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다.  설화는 더더욱 아니다. 
유대인들은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기원전 13세기. 이집트에서 한 유대인 아기가 태어난다.
 
- 가톨릭신문 - 유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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