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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의 졸(卒)? 장기는 누가 두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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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봉철 [skanenfl] 쪽지 캡슐

2009-03-14 ㅣ No.131933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도 한때 동지였다
 
“시오니즘은 식민주의 운동으로 변질”  영국자본에 맞선 연대경험 ‘공존모델’

〈팔레스타인 현대사-하나의 땅, 두 민족〉 일란 파페 지음 · 유강은 옮김/후마니타스·

 아슈케나지 유대인 역사학자가 쓴 팔레스타인 현대사. 일란 파페(Ilan Pappe)의 <팔레스타인 현대사>는 우선 그런 점만으로도 관심을 끌 만하다. 파페는 나치 독일의 억압을 피해 이스라엘로 이주한 독일계 유대인 후예다. 1954년 이스라엘 서북방의 지중해 연안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의 헤브루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1984년부터 2007년까지 하이파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런 그가 쓴 <팔레스타인 현대사>는 시오니즘에 입각한 이스라엘 주류 역사관을 매우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19세기 오스만제국 말기 팔레스타인 사정부터 다루는 이 책은 서장에서부터 “유럽이 마술처럼 톡 하고 건드리자 팔레스타인이 계몽과 진보의 빛에 노출되었다”는 식의 근대화 서사를 거부한다. 근대화는 유럽 식민주의자들과 팔레스타인 현지 소수 엘리트들만 살찌웠고 그 땅에 오래전부터 살아온 대다수 주민들은 소외되고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유럽의 기형적인 역사가 낳은, 박해받은 유대인들이 안식처를 찾아헤맨 민족운동 시오니즘도 “지도자들이 민족 부흥의 전망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실현하기로 결정하는 순간 식민주의 운동으로 바뀌었다.” 러시아를 견제하고 중동지역을 장악하려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계산에 편승한 유럽 시온주의자들의 이스라엘 건국신화들은 왜곡되고 과장됐다.

 예컨대 ‘다윗 이스라엘과 골리앗 아랍의 싸움’은 그 반대가 사실에 가깝다. 1948년 팔레스타인 통치권이 영국에서 유엔으로 넘어갈 때 이미 팔레스타인 주민 3분의 1이 살던 곳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시온주의자들은 영국의 비호 아래 착착 토지를 사들였으며, 동유럽 등에서 신형 무기들을 대량 구입했다. 영국은 영국제 무기로 무장하고 있던 아랍 저항군 쪽에 무기 금수 조처를 취했다. 팔레스타인으로 몰려든 유럽인들 중에는 그저 땅과 폭리를 노리는 투기꾼과 모리배들도 많았다. 유대인 내부에도 차별이 있었다. 아랍지역 유대인인 마즈라히는 철저히 차별받고 소외당했다.

 어쨌거나 그렇게 해서 100만명의 팔레스타인 토착민들이 나라 바깥 사방으로 내쫓겼고 그 땅에 수백년 이상 살아온 원주민들 다수는 요르단강 서안 일부와 가자지구라는 사실상의 수용소와 다름없는 곳에서 고압전류가 흐르는 높은 장벽에 갇힌 채 내부 식민지 주민으로 연명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현대사는 그래서 이들 시온주의자들과 이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 간의 대립과 갈등의 역사다.

 그러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시오니즘과 식민주의, 근대화 서사의 대안일 수 있을까. 그 또한 아니라는 게 파페의 생각이다. 유럽 식민주의 근대화 공세에 대응한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역시 서구식 개념·논리와 이상으로 무장한 서구화·근대화의 부산물이자 그 일부가 돼 있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오로지 피해자였던 것도 아니다. 유럽의 피해자였던 팔레스타인은 또다른 팔레스타인과 유대에 대한 가해자이기도 했으며, ‘명사’로 불린 도회지 중심의 아랍 엘리트들은 같은 아랍 민중을 착취했고 사익을 위해 유럽 식민주의자들과 공모하기도 했다.

 파페는 둘 다 아니면서 둘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그 핵심 개념은 ‘서발턴’이다. “탈근대화된 역사의 새로운 주요 행위자” 서발턴은 보통 ‘대중’(기층민중)으로 번역되는데, “엘리트주의 정책이나 결정에 순종하는 정도에 따라 판단되는 수동적 존재, 곧 장기로 치면 졸”이다. 그들은 “모국/조국이라는 실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민족적 정언명령 때문이 아니라 훨씬 더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이유에서 땅이나 자기 재산에 집착”한다. 파페는 이 분쟁의 최대 희생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운다. “여성, 아동, 농민, 노동자, 평범한 도시 거주자, 평화운동가, 인권활동가 등이 그들이다. 반면 ‘악당’은 오만한 장군, 탐욕스런 정치인, 냉소적인 외교관, 여성을 혐오하는 남성들이다. 희생자들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원주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날 두 번째 토박이 세대로 변하고 있는 (이주) 유대인들”도 희생자들로 파악한다. 서발턴 중심으로 역사를 다시 읽되 착취자와 피착취자, 침략자와 피침략자 이야기를 “결합”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영국 엑시터대학 교수로 가 있는 파페는 이스라엘에 있을 땐 협박에 시달리기도 한 모양이다.

 파페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같은 땅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을 해법으로 여긴다. 과거 역사도 충돌만으로 점철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920년대 아랍인과 유대인 노동자들이 영국인 고용주에 대항해 노동조합을 만들어 함께 싸운 일에 주목하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들이 수적 균형을 이루고 올리브 공동생산 조합과 공동학교를 운영하면서 두 언어를 공용하고 있는 갈릴리와 와디아라 지방 사례를 “공동의 삶을 위한 미래 모델”로 제시한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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