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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하나의 원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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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prana] 쪽지 캡슐

2009-03-12 ㅣ No.131901


photo by Hubert J Steed

 

일상에서 가장 흔히 보고, 듣고, 쓰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사랑'이라는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게다. 개인적으로는 보고 듣는 일은 다반사나 흔히 쓰지는 않지만 말이다. 더 정확하게는 흔하게 쓰지 않는다기보다 쓰기를 자제한다는 표현이 합당하다. 가족에게는 낯 간지러워 평상시에는 못해도 진정 사랑하기에 할 때는 한다. 그러나 가족 이외의 대상에게 표현할 때와 '사랑합시다'라는 식의 권유 혹은 동의를 구하는 경우, 그 낱말의 사용에 나는 몹시 조심스럽다.

조심하는 이유가 표현할 용기가 없어서는 아니다.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 환자여서는 더더욱 아닌 게, 봄밤에 바람을 타고 실려오는 아카시아 향내라도 맡을라치면 전신의 촉수를 세워 집중하고 어둠 가운데 서 있을 나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 그득히 들이마시고 아쉬운 듯 천천히 뱉으며 음미한다고 귀띔하면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임을 어느 정도 인정받으려나. 그런데도, '사랑'이라는 낱말의 사용을 자제하는 이유는 자체 검열을 통과해야만 쓰는 까탈스런 성격 탓이리라.

사람들은 사랑을 대상에 따라 분류하고 명명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이성과의 사랑 혹은 열망, 친구 사이의 사랑 혹은 우정, 동물이나 사물에의 사랑 혹은 애착, 신과 자연을 향한 사랑 혹은 경외심으로. 이런 식으로 분류된 다양한 사랑은 개인의 연령과 경험과 환경에 따라 다시 세분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경향이 있음을 자주 목격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아니며 내게 사랑은 하나다. 

내 머릿속 '사랑은 하나'라는 개념을 수학에서의 도형 원圓을 들어 풀이해도 좋겠지만, 인간이 도구를 빌리지 않고 그린 가장 완벽한 원이라는 '조토의 원'을 상상하면 더 흥미로울 게다.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화가다. 당시 교황은 로마 베드로 성당의 벽화를 그릴 화가를 물색하기 위해 전령들을 방방곡곡으로 보냈단다. 전령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조토는 옆구리에 팔꿈치를 붙이고 손을 돌려 동그란 원을 그려서 전령에게 주었단다. 대표작을 원했던 전령은 조토가 건네준 원만 그려진 종이가 장난 같아 보였지만 교황에게 전할 수밖에. 그림을 본 교황은 명인이 아니라면 컴퍼스의 도움 없이 그처럼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봤고 조토에게 성당 벽화를 맡겼다고 한다. 내가 지닌 사랑의 개념은 어떤 식으로 분류됐건 분류된 사랑들이 조토의 원, 사람이 손으로 그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원 상에서 각기 고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나 하나의 원으로 통합된 상태를 의미한다.


언제 사랑의 개념이 변이를 일으켰는지를 되짚어보면, 사람이 그 혹은 그녀를 두른 성별이나 나이나 직업 같은 외적인 수식이 벗겨진 '사람' 자체로 보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설마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 


모든 변화에는 계기가 있는 법.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 경험은 교리반에서 '그'를 만나면서였다. 애초에는 동네 성당의 교리반에 등록했었다. 그 당시에 몸이 아파서 병원치료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몸과 마음이 괴로운 상태였다. 나를 살릴 마지막 카드는 하느님뿐이라는 믿음은 구체적인 신심이라기보다 막연한 소망이었지만 절실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성당을 찾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두 주를 참석하며 앉아 있기도 어려워서 지도 신부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포기했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며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평화방송에서 명동성당의 교리반 홍보를 봤고 다시 시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새로 시작한 교리반에서 그를 만났다.


넓은 공간에 2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예비신자 50여 명은 빙 둘러 원을 그려 앉았다. 큰 원의 지름을 그은 저편으로 그가 눈에 들어왔다. 운동을 했음직한 다부진 체격과 대비되는 작은 얼굴은 동안이나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가 짐작되었다. 본 적도 없이 이미지만 입력된 중세시대 수도자를 연상케 하는 그의 깊은 눈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때였다. 그는 '남자'가 아닌 '사람'으로 내 눈에 비쳤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무색무취무형의 공空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던 기억이다. 인원 각자가 자기소개를 할 때, 그는 자신은 국선도를 지도하는 사람이고 성당을 찾은 이유가 신앙을 갖겠다는 의도보다 '앎'을 목적으로 한다며 세례를 받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6개월이 지났고, 의문은 확신으로 변했던지 그도 세례를 받았다. 세례식 때 만난 그가 몇 개월 후에 산으로 들어갈 거라고 했다. 우리는 "잘 지내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았고, 그 후 두세 번  미사시간에 스쳐 지난 게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한 낯선 경험 이후 내게 사람은 더는 남자와 여자 등으로 구분되지 않고 그저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겪으며 한편으로는 여러 사랑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던 듯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남녀의 사랑, 자연과 세상을 향한 사랑 등 여러 사랑이 하느님 사랑 안으로 녹아들어 하나의 사랑으로 재탄생되었다고 하겠는데, 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하나. 마치 형형색색의 꽃들이 제각각 빛나지만 한데 어울려 지극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꽃밭을 보는 것 같은. 수많은 거칠거나 섬세한 붓놀림이 조합하여 명과 암, 맑음과 탁함이 공존하며 완성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 높은 산 정상에서 털실 뭉치처럼 몽실몽실 무리진 나무들의 숲을 내려다보는 느낌과 같은. 그래, 그런 거, 일치감 또는 통일감 또는 조화로움. 이와 같은 변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에 대한 눈뜸에 기인한지 확신은 없지만 그런 연유일 거라고 유추한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인 변화 그리고 여러 유형의 사랑이 하나로 융합된 변화가 왜 유사한 시기에 일어났는지 나 자신 의아하고 해석은 막막하다. 굳이 추정해 본다면, 두 가지 통합된 개념들의 조우는 아닐까 하는 불투명한 생각뿐 현재로서 그에 대한 사색은 빈약한 상태이다. 어쩌면 우연히 일어난 나라는 개인의 의식의 흐름에 불과할지도. 


그때부터였다. 사고의 변화, 즉 개별적인 사랑들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통합되며 사랑이라는 낱말을 사용하기가 조심스러워졌다. 내가 표현하려는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만큼 완전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나 내 안에서 참으로 진실한지, 표현할 만큼 숙성했는지, 그에 따른 실제적 행위를 하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는 되었는지. 내게 사랑은 쉽게 말하기에는 벅찬 단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전에 진정의 여부를 나 자신에게 물어보는 과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과정을 '자체 검열'이라고 칭한 것이다. 


어디에서건 '사랑'이란 낱말을 대할 때마다 나는 생각에 잠긴다. '사랑'이란 표현을 한 그네의 마음속 사랑의 형태는 내 안의 원처럼 둥글까 다른 모양일까, 그네의 사랑은 내가 느끼는 사랑 곧 하느님일까 다른 무엇일까, 그 말은 그네의 마음 심연으로부터 솟은 것일까, 잠시 궁금해진다. 석연치 않게 바라보는 내 시선의 원인이 하느님 사랑에 맞갖지 않은 내 삶 때문은 아닌가 생각되며 씁쓸해지기도 하고. 


'사랑'이라는 말,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쓰는 '사랑'이란 낱말이 한낱 언어의 유희로 끝나지 않기를 감히 바래본다.

 

 

 

 

* 이 글은 2007년 4월 12일에 조 형제님의 홈피, 들판에 게시했던 글입니다. 아래 ‘사랑’에 대한 몇 분의 글을 보며 예전에 쓴 글이 떠올랐습니다. 공간은 다르다 해도 재탕은 재탕인데, 저 나름으로 지닌 '사랑'이란 개념을 전하고 싶어서랄까요. 읽으신 분께는 양해를 구하며 올립니다.

 

Ottorino Respighi

Antient Arias and Dances for lute suite No.3

1. Itali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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