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유게시판

값싼 분노와 거룩한 분노

스크랩 인쇄

박유진신부 [yjinp] 쪽지 캡슐

2001-11-23 ㅣ No.26707

(11월 23일,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 오늘 복음(루가 19,46)에서

 

 

 

 

몇 년 전이던가 피정에서  한 자매님이 하셨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만난 어느 꼬마에 대한 - 아니 정확히는 그 꼬마가

가지고 놀던 매미에 대한 이야기였죠.

 

여행 중에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꼬마가

살아있는 매미를 가지고 놀고 있는 데 신기한 건

그 매미를 어깨에도 올려보고, 수없이 위로 던져도 보는

꼬마의 장난에도 불구하고 매미는

날아 도망가지를 않더라는 겁니다.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왜 매미가 날아 도망가지 않느냐고 꼬마에게 물었을 때,

그 꼬마가 들려주었다는 말이 엽기적이었습니다.

꼬마의 대답인즉, 엄마가

가지고 놀기 좋도록 날개를 잘라주었다는 거죠.

 

아마도 그 자매님은 한 여름의 울음을 울기 위해

8년간의 땅속 벌레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준비해 온

귀한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무례함을 넘은

잔인함을 지적하고 싶었을 겁니다.

이렇듯 잘못된 사랑은 때로 엽기적이기조차 합니다.

 

이런 사랑 속에 자란 어린이가 성장해서

인격과 생명의 귀한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고 배려하기란 참 힘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쉽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처주고

날개를 꺾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얘기죠.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인 분노라는 것도

사랑의 한 결과적인 표현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숙치 못한 사랑이나

이기적인 사랑에서 오는 분노는 한결같이

값싼 저질의 분노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대체로 쉽게 자주 필요 이상의 분노를 표현하는 사람일수록

미성숙한 부류에 속한다고 하면, 그 또한

분노를 유발하는 표현이 될까요?

 

헌데 성숙한 사랑도 때로 분노합니다.

아니 부처님같이 자비로운 분들도 때로

분노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생명에 대해 무책임하거나

불의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에 대해서나

거룩함에 대해 경외심을 망각한 삶에 대해서는

자비롭고 성숙한 위인일수록

더없이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고 봅니다.

 

잘못하는 자식을 감싸주는 것도 사랑일 수 있겠지만

그 잘못에 대해 회초리를 드는 부모의 분노는

더 큰 사랑이라 믿습니다.

틀림없이 그 부모의 마음은 매 맞은 자녀의 아픔 보다

더없이 아플 것입니다마는.

 

분노에는 값싼 분노와 거룩한 분노가 있습니다.

 

내 삶에서 표출되는 분노들은 어떤 부류에 속할런지요?

 

적어도 내가 분노한 대상들에 대한 아픔 때문에

내 자신이 더 가슴 시리고 아파하지도 못하는

값싼 분노가 많았다는 솔직한 생각이

이 글을 쓰는 제 자신을 부끄럽게 합니다.

 

사랑과 관심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옹호하며 표현하는 일상의 분노들을,

혹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에 대입시켜 보고픈

무지나 유혹의 주인공이 된 적은 없는지 반성해 봅니다.

 

살면서 아주 가끔씩 분노하고 싶습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아야할 이타적 사랑에서 표출해야할

성숙한 분노를 말입니다.

 

"너희는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힘과 용맹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

당신께서 힘을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높아질 수 없나이다.

 

           - 오늘 화답송에서

 

 

 

삽입곡 '사명'

 

          글곡 신 상옥

 

오 사랑 너희는 알아들라 오 사랑 너희는 알아들라

주께서 가신 길과 주님을 사랑하여

세상의 평화 위한 신앙의 산 증인 되어라

 

저 골고타 십자가에 당신 모두 다 바쳐

돌아가신 주님 보며 우리 눈물 흘렸는가

하늘 아래 바라보니 빈부귀천 심한데

당신 마음 아프셔서 또 십자가 지고 가시네

정의가 쉬어갈 샘터를 가난이 노래할 터전을

불의가 춤추는 이 땅에 당신의 희망을 주소서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면 그 땅은 그 자체가 천국이리니

우리가 우리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당신처럼 살게 하소서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면 그 땅은 그 자체가 천국이리니

우리가 우리답게 살 수 있도록 우리가 당신처럼 살게 하소서  

 

 

 

첨부파일: 03-사명.ram(653K)

1,360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