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유게시판

두려운 여름.

스크랩 인쇄

조승연 [communion] 쪽지 캡슐

2002-07-28 ㅣ No.36649

얼마 전에 미사 때의 복장에 대한 글들이 올라왔었습니다.

새삼스럽게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는 것이 아니라..

오늘은 제 경험을 하나 말씀드려 볼까 합니다.

 

더운 여름..

쨍쨍 내리쬐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미사를 드리러 가다보면..

마치 순교라도 하는 양 마음이 비장해지곤 합니다.

아으.. 저 작열하는 태양을 봐라.. 정말 미치겠다..

 

그렇게 헥헥대며 올라가 성당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원하게 썡썡 나오는 에어컨 덕에 그야말로 쾌적한 미사 환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봉사하는 본당에서..

전례봉사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모를 애환이 따로 있답니다.

제대 아래쪽 신자석이야 시원한 별천지이지만..

제대 위는 그야말로 찜질방이 따로 없거든요.

 

’더운 공기를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공기를 아래로 깔린다.’

이 잔인한 자연 법칙이 성당 안에도 예외없이 적용됩니다.

제대 위에는 에어컨 바람이 미치지 않아서 냉방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거든요.

 

제대 위에서 그나마 더위를 달랠 수 있는 방법은 더운 바람만 휙휙 나오는 선풍기가 고작인데..

그것도 미리 작동시키는 것을 깜박하면 미사 내내 저희는 찜닭처럼 더위에 푹 절어야 한답니다.

미사 중에 선풍기를 돌린다며 법석을 떠는 건 어지간히 단단한 작정을 하지 않는 한 하기 힘든 행동이니까요.

 

게다가 전례봉사자는 따로 복장을 갖춰입습니다.

근데 이 의상(?)들이 저희를 꽤 고통스럽게 합니다.

치렁치렁 길기도 할 뿐 아니라 무척 두껍거든요.

 

그래서 어제는 저희 지도 신부님께 일종의 항의를 했습니다.

- 신부님. 저희 해설복 께끼로 하나 맞춰주세욧! 너무 더워서 미사 중에 분심 들어욧!

그러자 바로 신부님께서 답하시더군요.

- 덥다고?? 그럼 나랑 바꿔 입자! 너희가 ’개두포’와 ’장백의’의 고통을 아니??

 

에고.. 그야말로 본전도 못 찾았습니다.

저희는 달랑 한벌만 걸치면 되지만..

신부님께서는 이것 저것 겹쳐 입으시니까요.

오히려 혹 떼려다가 혹을 붙인 경우가 됐죠.

 

그리고 이야기는 자연히 더위에서 비롯되는 직업상(?)의 ’애환’으로 흘렀습니다.

신부님께서 처연한 표정으로 말씀하시더군요.

- 여름.. 정말 고통스럽지. 더위가 절정일 때는 미사 중간에 머리가 다 아프다니까.

그 말씀에 저희는 모두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내친 김에 투덜댔지요.

- 근데도.. 미사 중에 주보로 부채질 하는 신자분들 보면 좀 얄미워요.

- 맞아, 맞아.. 시원한 반바지에 얇은 반팔티 입고 냉방까지 되는데서 말이야.

- 우리는 눈치 보여서 선풍기도 제대로 못 켜는데..

 

그러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 아마 신자들은 제대 위가 그렇게 더울 거라는 생각들 못 하실 거다. 제대 위에서 선풍기 켜는 것 보면 이렇게 시원한데 선풍기까지 켜나하고 생각 하실지도 모르지. 같은 공간 안에 온도차가 그렇게 클 거라고 어디 짐작할 수 있겠니. 그리고.. 미사 중의 고생이야 우리가 기꺼이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

 

신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야..

저희는 더 이상 불평할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께서 느끼시는 더위의 공포(?)에 비하면 저희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니까요.

그야말로 엄살일 뿐인 말씀을 드린 거지요.

 

뭐.. 저희가 고생하니 다른 분들도 당연히 함께 그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주보로 부채질하시는 것만큼은 피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여러분께 드리고 싶군요.

여러분께서 부채질 하실 때마다 가슴이 찢어질만큼(?) 슬퍼하는 이들도 있답니다. *^^*

 

날이 더우면 많이 고생스럽지요.

맥이 풀리고 짜증마저 납니다.

하지만 그 짜증과 불편까지도 미사 중에 봉헌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 프리미엄까지 듬뿍 얹어서 은총을 주시지 않을까요?

그런 것들을 모른척 하실 우리 주님이 아니시니까요.

 

더운 여름..

여러분께 뜨거운 태양만큼 불타오르는 주님의 은총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살인적인 더위에도 우리 모두를 위해 미사를 집전해주시는 이 땅의(!) 모든 신부님께 외칩니다.

신부님~~~ 저희 모두 ’개두포’와 ’장백의’의 고통을 꼭 생각할께요~~~

 

 



1,070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