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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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 94/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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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7-24 ㅣ No.4195

              사제관 일기 94  

 

같은 동네에서 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우연히 인연이 닿아 오늘의 만남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연륜으로나 인품으로나 저를 훨씬 앞서시는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국에서도 줄곧 종교 모임에 참여해온 터라,

제게는 타종교 교직자와의 만남이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습니다.

목사님 스님 몇 분과는 친한 교분을 맺고 있어 지금도 가끔씩 연락이 닿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은 모두 격의와 외식이 없는 분들이십니다.

자신의 교의에만 맹신하지 않으며,

상대를 존중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신 겸허한 분들이십니다.  

.......

이분들과는 좋은 추억들도 참 많았습니다.

목사님 스님들을 모시고 수녀원도 방문하고,

오순절 평화의 마을에 들러 원생들과 춤을 추며 놀기도 했습니다.

목사님 집무실을 무작정 쳐들어가 어거지 대접도 받았고,

절에 들러 스님께서 손수 따셨다는 차 맛도 보았습니다.  

 

성당, 예배당, 절, 어디든 만남의 장이 이루어졌고,

가벼운 대화와 식사에 이어 꼭 이차로 주회(酒會)도 따랐습니다.  

술도 돌려 마시고, 담배도 나눠 피우고,

스님 몸보신 시켜드린다며 횟집이고 보신탕 집도 단골로 어울려 다녔습니다.

스님께서 손수 빚어셨다는 술맛은 아직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 데 어울려, 신부와 목사가 맞담배를 피우고, 스님이 개고기를 뜯는 모습....

상상조차 안되시겠지만, 실제로 그 모습의 추억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보는 사람마다 땡중, 땡목사, 땡신부처럼 여겼을지는 모르지만,

이 모습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종교인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편견을 없애고 격의와 허울만 벗는다면,

어느 종교와도 진솔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기 것이 최고라 여기는 독선만 버리고 나면,

바로 이들이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요, 형제 자매로 보이게 됩니다.  

...........

한 분의 하느님, 같은 성서, 대동소이한 교리를 지니고 있으면서

어느 종교보다도 더 불신의 골이 깊은 개신교와 천주교.....

오늘 이 두 종교의 목회자와 사목자가 한자리에서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내편이라 우겼던 과오를 인정하고,

서로가 하느님 편이라 여기며, 하느님 안에서의 일치를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는 목사님께 한 가지의 제안도 드렸습니다.

성당에 오셔서 뜨거운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달라고....

그리고, 제게도 예배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흔쾌한 웃음으로 서로 다짐을 받고,

다음 번엔 더 많은 목사님과의 만남도 약속하며 헤어졌습니다.

..............

저의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어느 종교든 인간적인 잣대로 편을 갈라 세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천주교를 믿든, 개신교를 믿든, 불교를 믿든, 서로 다른 편이 될 수 없습니다.

믿는 자들은 서로 각기 다른 편이라 우기고 있지만,

하느님과 부처님은 그래도 한편이십니다.

"하느님은 진리에 이르는 문을 여러 개 달아두셨다" 던 파스칼성인의 말씀처럼,

서로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서 있는 한 편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바가 곧 부처님의 가르침일 수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 또한 하느님의 원의가 될 수 있다 여깁니다.

하느님도 부처님도 서로간의 분열과 갈등을 원하지 않으실 텝니다.

내 편 네 편을 들어 서로 찢고 갈라싸운다면,

부처님이 우시고, 하느님이 우실 겁니다.

.......

얼마전 만났던 한 개신교 신자의 차가운 눈빛이 가슴에 남습니다.

신부라는 소개를 받고도,

마치 개쳐다보듯 냉담한 태도와, 경멸에 찬 눈초리를 보내던 그 섬뜩함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죄인처럼 여겨만 보던 그 차운 눈빛.........

왠지 그의 눈 속에서만은 하느님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못 찾는 하느님이라면,

그의 믿음 속 하나님은 자기만의 하나님일 뿐,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은 못 될 것 같습니다.....

 

                                   괌 한인성당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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