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1일 (화)
(홍)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제관일기113/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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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10-04 ㅣ No.4755

 

       사제관 일기 113  

 

 

예비신자 입교 환영식이 있었습니다.

고작 열 명 남짓한 분만이 자리를 메우지만,

이들과의 여섯 달을 설렘으로 받아들입니다.

.....

낯설고 어색한 모습으로 두런거리는 이들에게

수단자락을 펄럭이는 사제의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까를 생각하니

오늘의 몸가짐이 더욱더 조심스러워집니다.

....

세속에 묻은 때를 벗겨주고, 신앙의 새 옷을 입혀주어야 할 이들.....

채석장에서 막 퍼온 돌덩이처럼

멋없는 모습을 가꾸어 손질하고 다듬어줘야 할 사제의 손을 봅니다.

한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석공의 작업처럼,

좀더 맑은 마음으로 첫 손질을 시작해야겠습니다.

....

한가지의 걱정이라면,

행여 제 손질에 잘못 길들여질까 그것이 염려스럽습니다.

끝까지 함께 한다는 다짐은 받았지만,

자꾸 불안하고 걱정이 앞서는 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

돌이켜 생각해보니,

지금껏 제 불찰로 인해 교리수업을 중도포기한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나오면 나오고, 안나오면 그만 이라는 식의 무관심이

결국 이들의 손을 놓쳐버린 결과를 맞고 말았습니다.

.....

실상 가르침보다는 사랑과 관심과 기도가 더 중한 것 같습니다.

가르치는 건 세상이 다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도하고 사랑하는 일은 사제의 몫이라 여깁니다.

동안엔 가르치는 일 하나만을 직분으로 여겨왔을 뿐,

솔직히 그들을 위해 기도 한번 드려주지 못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하느님의 소중한 성소를 키워주지 못해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만 이들...

좀더 섬세한 관심만 베풀었다면,

좀더 깊숙이만 손잡아 줬더라면,

하마 아름다운 꽃을 틔웠을 텐데,

저의 무관심이 그들 신앙의 불씨를 꺼트려버렸던 것입니다.

........

의례적인 겉치레보다 마음을 넣어주는 일을 더 소중히 삼아야겠습니다.

아무리 꽃같은 강론을 하고, 성무를 잘 수행할지라도

정작 마음에 사랑과 관심과 기도가 없다면,

거짓의 삶이고, 위선의 모습일거라 여깁니다.

....

보다 더 섬세하고, 유순한 사랑의 소유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더 부드럽고, 더 인자하고, 더 다정다감한 모습의 사제이고 싶습니다.

문을 두드려야 만나주는 모습이 아니라,

찾아다니며 만나는 모습의 사제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번만큼은 하나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줄 수 있다면 뭐든 다 털어 줘서라도 마지막까지 붙들 작정입니다.

그래서 봉헌의 다발로 엮어 하느님의 품에 부활의 선물로 안겨드리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머금은 부활의 꽃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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