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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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묘양님 이제 들어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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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실 [asman] 쪽지 캡슐

2001-12-16 ㅣ No.27603

    (1)박묘양님!

    님께서 사제들에 대한 오해를 쓰기 시작한 것은 금호동 성당 사건이 터진 후였습니다.

    모르면 몰라도 금호동 사건을 희석시켜볼 심산으로 쓰기 시작한 것 같은 데 그러기엔 사태가 좀 심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지금의 금호동은 수면 아래로 접어든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아직 치유된 상태는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를 제기한 분의 뒷 글이 없기 때문입니다. 금호동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이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때와 장소를 알고 신부님 옹호를 했으면 합니다..

     

     

    (2)박묘양님!

    당신은 그동안 신부님 얘기만 나오면 신부님 옹호자로 나오셨습니다.

    참으로 본받을 만한 신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리고 신부님 옹호자들이 다 그렇듯이 네가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느냐고 항변하셨습니다.

    누가 그랬죠. <성경구절은 아무때나 인용하는 게 아니라고>..

     

    이 세상에 죄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느님 앞에 모두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죄를 뻔히 알면서도 묵인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죄로 뒤범벅이 된 세상이 되고 말겠죠 .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말씀을 왜 하셨을 까요?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그 구절을 해석하는데 社會的인 構造로 접근해 보고 싶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가 됩니다.

    돌에 맞을 자와 돌을 던질 자의 위치가 뒤바뀌었다면 어떠했을까? 하고요.

    다시 말하면 죄가 적은 자와 죄가 많은 자의 위치가 바뀌었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입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가신다면 요사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女人天下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리라 믿습니다. 중전의 오래비의 뇌물 액수가 중전을 몰아내려는 공신들의 액수보다 훨씬 적었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없는 자, 미천한 자, 보잘 것 없는 자의 편이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구절을 신부님 옹호하는데는 써먹고, 바로잡겠다고 나서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형제에게는 바늘끝만큼의 위로도 없는 비정한 인간으로 전락한다면 당신은 최후의 심판 때 무엇이라 답변하실 겁니까?(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라 했는데)

     

    (3)박묘양님!

    여기 올라오는 신부님들에 대한 비난성 글은 대개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하나는 비난 대상인 사제의 이름을  밝히는 경우요,

    또 하나는 밝히지 않는 경우입니다.

    사제의 이름을 밝히는 경우는 그야말로 이판사판식이고,

    밝히지 않는 경우는 앞으로 그런 유형의 일들이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고 바라는 청원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최문화님의 성직주의 단상이었는데 님께서는 그동안 한결같이 성직주의 단상에 이의를 제기해왔거니와 이번에 또  

    <사제에 대한 오해1과 4에서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후 저는 누가 사제를 비난하는 말을하면 나름대로 조사하고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그렇게 하고보면 나쁘다고 욕 먹는 사제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자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구요.

     여기에 등장했던 폭력신부도 그렇고 신종면죄부의 사제도 그렇고

     사연의 내면을 알고 보니 아, 그랬었구나 하는 긍정적이고 올바른 면이 반드시 많이 존재하네요.

     

    윗글을 읽고 님께 질문하겠습니다.

    최문화님의 글에서는 교구도 성당도 이름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인 줄 알고 조사해보셨다고 했습니까? 당신은 신적 존재입니까? 그 대상이 누구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나요? 참으로 묘한 일 아닙니까?

    기껏해야 반론을 제기한 사람들의 아이디를 찾아갔었나요. 그분들은 그 익명의 신부님을 다 잘 아신다고 하던가요?

    참으로 기가 차는 일 아닙니까?  

    괜히 아는 체 하지 마십시오. 말이 되는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리고 나쁘다고 욕먹는 사제도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자가 많더라구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최문화님이 언제 특정신부의 자서전을 썼나요?

    斷想입니다. 그것도 성직주의단상입니다. 거기에 칭찬거리를 쓰지 않았다고 시비하는 것은 수준 낮은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요한이라는 이름을 밝히신 분께서 그러지 않으셨나요? 칭찬을 한 사람에게 왜 나쁜점은 쓰찌 않았느냐는 논리와 같지 않느냐구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쓰지 않도록 합시다.

    최소한도 斷想의 뜻은 알고 이 게시판에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들에 대한   

    당신의 옹호논리는 너무 단순합니다.

    기껏해야 그런 분도 칭찬거리가 있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그런 말이라면 쓸 필요가 없다는 걸 아시고 지면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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