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유게시판

특권의식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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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2-09-01 ㅣ No.38006

 며칠 전에 한 통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제서품 기념일을 축하한다는 메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 서품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되었을 때, 저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째, 많은 교우분들께서 제가 젊은 나이인데도, 저에게 경어를 사용해 주셨습니다. 물론 저의 인격과 저의 품위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제가 받은 사제의 직무를 존중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본당에서의 모임이 끝나고, 식사 자리가 마련되면, 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셨고, 보통은 이동할 때도, 차를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술을 마실 때도, 저에게 먼저 따라 주실 때가 많으셨습니다. 젊은 신부에게는 무척이나 곤혹스럽고, 송구한 일들입니다.

 

 셋째, "신부님 한 말씀하시죠" 이런 이야길 자주 듣게 되었습니다. 정리할 때라든가, 무엇인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리고 선택을 해야할 경우에 이런 이야길 자주 들었습니다. 때로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넷째, "신부님이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런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됩니다. 예를 들면 청소를 한다거나, 책상을 나른다거나, 화분을 옮긴다거나, 물건을 들고 걸어가는 경우들입니다. "아닙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기도 하지만, 쪼금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다섯째, "신부님도 그런 거 하세요!"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신부님도 화장실을 가느냐! 신부님도 이런 음식을 먹느냐! 신부님도 노래방에 가느냐! 등등 이런 말씀을 들을 때면   "난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사람들이 절을 하는 것은 말 등에 있는 "십자가"를 향하여하는 것인데, 말이 자기한테 하는 것인 양 착각하고 건방을 떠는 어리석음을 보인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저 역시도 사제로 생활하면서, 교우분들께서 저를 아껴주고, 저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여 주시는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저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다만 저의 직무가 너무나도 소중하고, 너무나도 거룩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종종 잊곤 합니다.  그와 같은 직무를 맡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과 자질이지만 하느님의 크신 사랑으로 주님의 구원 사업을 수행하는 것인데도 마치 제가 잘나서 그런 것 같은 착각과 오만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로메로"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로메로는 사람 이름이고, 라틴아메리카에서 사목하던 주교였습니다. 정의를 말하기 어려운 시대에, 해방과 자유를 말하기 힘든 시대에 민주와 자유는 독재의 군화 발에 눌려 숨을 죽이던 시대에 양심의 소리에 하느님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외치던 사제였습니다. 주교님은 결국 한 군인이 쏜 총에 희생을 당하지만 아직도 그 주교님은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가슴에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다는 내용 이였습니다.

 

 제가 그 영화에서 감명 깊게 보았던 장면은 바로 이 장면 이였습니다. "어느 권력자의 아내가 엄청난 부를 소유한 집의 며느리가 주교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아이는 저 가난에 찌들고 배우지 못한, 더럽고 냄새나는 저 사람들의 아이와는 다릅니다. 우리 아이는 저 사람들의 아이들과 같이 세례 받을 수 없습니다.  주교님 우리 아이만 특별히 따로 세례를 주십시오. 그러나 주교님의 대답은 냉정했습니다. 여기 있는 아이들과 같이 세례를 받지 못하신다면 나는 그 아이만을 위해서는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특별대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한 특별대우는 거의 없고 힘있고, 빽 있고, 권력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특별대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철없이 놀다 지금은 구치소에 있습니다. 이 또한 자신의 능력보다, 자신의 재능보다 자신들이 대통령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들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알았다면 부모님께 불효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 중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 또한  힘과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자녀만을 챙기려는 그릇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목숨 바쳐 피의 값으로 세우신 교회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저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제가 되었다고, 특권의식을 갖는 신부

재산이 많다고, 고위직 공무원의 가족이 되었다고 특권의식을 갖는 사람들

많이 배웠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오늘도 같은 말씀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사탄아 물러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특권을 가지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짊어질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윤동주님의 "十字架"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十字架

 

 

쫓아오든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든 사나이,

행복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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