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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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38번... 죄의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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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5 ㅣ No.2041

 

컴퓨터 무단 복제가 죄가 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셨는데, 글쎄요? 그것은 자신의 양심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겠죠. 우리 신앙인의 기준으로는 그것은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님께서 그것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고백성사를 보고 싶다면 그것도 죄가 된다고 보면 좋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을 사회법의 개념에서 도둑질 했다고 느끼시면 대죄의 개념까지도 되겠고, 아니면 양심에 하등 꺼리낌이 없이 그 흔하디 흔한 프로그램을 복재했다는 것이 별로 양심에 걸릴 것이 없다고 판단했느냐에 있지 않을까요?

저 개인적인 판단은  일반적인 우리 교리와 교회법의 범주에서 보면 죄가 아니다라고 봅니다만... 당연히 사회법으로는 죄가 되겠지만요...

 

우리의 하느님 법은 우리 사회법과는 좀 다른 점들도 많이 있지요. 예를 들어서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딱지"를 떼었다면, 사회법으로는 죄가 되어 벌금을 물지만 교회법에는 하등 죄가 되지를 않거든요. 그러면 우리의 가톨릭 신자가 지켜야 되는 하느님 법은 어떤 것입니까? 간단히 말씀드린다면 하느님께서 주신대로(천부적으로) 타고난 인간으로서의 양심법이라고 말씀드려도 큰 오차는 없겠지요? 그러면 그러한 양심법을 과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하여 어떤 신부님께서 올려 주신 내용을 정리하여 여기에 붙여 드리오니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하느님과 나와 그리고 우리 가톨릭 공동체와의 관계이며 또한 죄는 하느님께서 처벌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족쇄라기 보다는 죄를 지었을 때 하루 빨리 반성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사함을 받기 위한 참으로 아름다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인간들에게 공동의 선을 추구하면서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며 살라고 하는 하느님의 자비의 근원을 이루게 하는 원천이다라고 하면 어떨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해성사를 볼만한 죄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자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하여 잘 알아내기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천주의 십계명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이신 천주를 내가 얼마나 흠숭했는가, 혹 미신 행위는 하지 않았는가,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나 않았는가,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면서 맹세하지 않았나, 또 주일을 잘 지켰는가, 부모에게 효도했는가, 이런 식으로 십계명을 따져 보시고, 그 다음 교회 법규를 생각하면서 단식재나 금육재,미사 참례는 잘했는가?

 

그 다음에 일 년에 두 번 판공 때 성사를 잘 봤는가? 영성체를 했는가? 교무금을 잘 냈는가?그리고 혼인관계에 잘못한 것이없는가? 혼인성사 안 받고 한 것이 있는가? 그 다음에 칠죄종(七罪種)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 죄의 종류가 있습니다. 교만, 인색, 그리고 너무 선정적으로 색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분노, 과욕, 질투, 태만(자기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는지) 등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서 성당에안 나가시는 동안에 십계명, 교회법규, 칠죄종을 대입해서 성사를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 기회에 함께 공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대죄와 소죄에 관한 설명을 아래에 게재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대죄와 소죄>

 

모든 죄는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소죄는 사죄(대죄)처럼 하느님의 뜻에 직접적이고 완전한 거부를 가져오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게으르게, 불성실하게 따르는 것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윤리신학은 행위의 주관적 불완전성을 이차적 이유로 생각하고, 사물의 객관적 중대성에서 첫째 이유를 찾는다. 우리는 중대한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법을 침범하거나, 중대한 일이지만, 완전한 인식과 자유의지가 없이 하느님의 법을 침범할 때이다. 오늘날에는 소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행위의 주관적 불완전성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 이유로서 이 때에는 `최종적 결정’이나 `기본적인 선택’을 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사죄(대죄)는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올바른 목표에 반대되는 `최종적 결정’을 하기 때문에 사죄가 성립된다. 이 때에는 죄스러운 결정과 심각한 무질서에 대한 명백한 인식과 자유의지의 충분한 동의가 전제된다. 인간의 전 생애중 사죄는 최종적이며, 취소할 수 없는 선택은 아니다. 인간이 생존하는 동안에는 참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종결정은 죽음의 순간에만 될 수 있다. 또한 사죄는 보통으로 중대한 대상에 의해서 야기된다. 다만 예외적으로 작은 대상이 사죄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사죄와 소죄의 본질과 조건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생활에 자신을 맡기기를 결정할 때 사죄를 범한다. 여기에는 항상 충분한 인식과 의지의 완전한 동의를 전제로 한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채우는데 있어서 단순히 소홀히 할 때 소죄를 범한다. 이같은 일은 중요치 않은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법을 침범하는 것이다. 혹은 중요한 일이지만 불완전한 인식과 의지의 불완전한 동의로써 하느님의 법을 침범할 때이다.

 

 

<죄란 무엇인가?>

 

1.의의

 

죄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나쁜 줄 알면서도 자유 의지로 하느님의 계명을 거스리고,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함을 말한다.’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마르 1,4)

 

2.죄의 대상과 본성

 

죄란 하느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자유를 육체적,감각적 노예가 되게 하여 육신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에 방해가되게하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을 거스리고 우리의 이웃을 거스리는 것이다. 죄는 우리의 인간성에 속한 것이며 우리의 악습에서부터 나오고, 인간 본성에 대한 배신으로서 우리의 이성을 거스려 성덕을 파괴시키는 원수이다.

 

성아오스딩은 ’죄는 영원한 법(하느님의 법)을 거스리는 생각이나 말이나 행위이다’라고 그 본성을 요약한다. 죄는 인간이 책임 있는 행위와 자유를 가지되 택한 목적을 위해 잘못 실행한 행위에서 생기며, 인간의 원의가 무한하다면 죄의다양성도 무한하게 된다.

 

3.죄에 대한 성서의 기술

 

1)구약성서-구약에서 말하는 죄는 일반적으로 외적으로는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말하며, 내적으로는 인간 스스로 선과 악을 아는 하느님과 같이 된다고 주장하며 인간 자신의 윤리적 자율성을 내세움을 의미했다.

 

구약에서 죄를 가리키는 흔한 어휘는 히브리아어의 hata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빗나가다,어기다’인데 리적인 면에서는 주로 ’악행을 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리고 구약에 나타나는 죄의 근원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사악한

지향과 마음이었다. 예를 들면, 야훼께 반항함(민수14,9;신명28,15-44) 하느님의 명예를 더럽힘(2사무12,10;이사1,4) 불충실과 간통(이사25,5;에 16,59;호세3,1)등이 그것이다.  

 

2)신약성서-대체로 죄의 의미를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첫째,구원을 잃고 하느님을 잃은 것을 의미한다. 즉, 죄는 모든 자유의 근원이며 선의 근원이시고 구원의 원천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떼어 놓고, 인간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거부하고, 하느님께 대항하므로써 하느님을 잃고 파멸에 이름을 의미한다.

 

둘째, 계시된 하느님의 의지에 대립함을 의미한다. 즉, 인간 본성의 창조적 질서 안에 표현된 창조주의 뜻을 거역하고, 율법에 표현된 하느님의 뜻을 어김으로써 하느님께 대한 가장 무례한 불의를 행함을 의미한다.

 

4.죄의 원천

 

죄원으로서 칠죄종 즉, 교오(교만,허영),간린,미색,질투,분노,탐도,해태이다.또한 죄의 원인으로는 즉, 죄의 원인의 내적 가능성은 지성, 감상적 욕망, 의지이다. 죄는 사람에게만 있고 반드시 사람의 행위 속에 속한다. 한편 우리 밖에 있는 죄의 원인의 가능성은 하느님을 이탈하여 인간적인 행위의 본질과 기능과 인간적 기능 전부에 영향을 미치는 마귀의 유혹이 있다.

 

5.죄의 구별

 

1)종류상의 구별

 

첫째, 죄는 반대되는 덕에 따라 구별된다. 예를 들어, 나쁜 표양은 타인에 대한 애덕을 거스림이요,불신앙은 신앙의 덕을 거스림이며, 경신의 덕을 거스림은 미신인 것이다.

 

둘째, 덕이 명하는중요한 의무 내지 책임을 어김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순결을 빼앗은 죄는 하느님의 은총을 거스림과 순결의 덕을 해침 및 건강과 좋은 결혼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째, 중용의 덕을 벗어남으로써 죄가 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재산의 낭비, 무계획한 소비 등이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죄가 많은 덕을 그르칠 수 있으므로 고백성사 때 양심의 판단에 따라 죄의 번수와 종류를 일일이 고백하도록 하고 있다.

 

2)마음의 죄와 행동의 죄

 

내심에서 악을 즐기는 것, 특히 마음 속에서 과거의 죄를 승인하거나 범죄치 않았음을 후회하는 것, 악한 일에 대한 생각을 하고 마음 속에 그려진 상상을 즐기는 것, 악한 욕망으로써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악에로 향하는 의지, 악한 의향으로써 악을 행할 실제적 결의 내지 의지 등이다.

 

6.죄의 종류

 

1)원죄-원조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원죄는 인간성의 순조로운 조화에 파괴를 초래했고 무질서를 갖다 주었으며, 모든 악에로 이끌리는 경향의 근원을 이룬다.

이러한 원죄의 요소는 인간이 하느님께 반항하여 하느님께로부터 이탈함과 인간 정신이 하느님께 반항한 벌로써 육체가 영혼에 반항하게 된 데 있다.

 

그리하여 인간은 인간 본성이 받았던 성화 은총(초성은혜 즉,사람을 성화시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케 하는 초자연적 은혜)을 잃고 죄에로의 경향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원죄를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는 은혜로써 본성에 붙여 주셨던 완전성을 거두어 가시고 인간 영혼에 붙여 주셨던 초자연적 은혜를 거두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내면에는 하느님께 대한 복종을 거부하려는 경향이 생겼고 영신의 지도를 뿌리치려는 육신의 반항적 움직임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잃어버린 성화 은총을 영세를 통해 되찾음으로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2)본죄는 원죄로 말미암은 인간 본성의 무질서와 결함으로부터 많은 악한 행위가 흘러 나와 이루는 죄로서 대죄와 소죄로 나눌 수 있다. 대죄는 영혼 안에 있는 성화 은총을 잃게 하여 영신적 생명을 파괴시킨다. 즉, 하느님을 거스리고 인간의 이성을 거스려 하느님의 율법(계명)을 배척하는 것이다.

 

대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중대한 일이나 행위이어야 하며, 그 중대성을 완전히 인식하고 완전한 자유 의지로 승락(허락)할 때이다. 이러한 것들의 판단은 양심에 의한다. 결과로는 성화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을 잃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뿐만 아니라,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잃고 모든 공로에 가담할 자격을 상실한다. 소죄는 성화 은총을 잃어버리지는 않으나 영신적 생명의 완만하고 건전한 작용을 손상시킨다. 대죄의 성립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었을 경우에 성립하며, 그 성질상 영혼이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향하는 태도를 버리지는 않으나 하느님을 사랑함을 등한히 하거나 덕행을 거스릴 대 성립한다. 결국은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되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을 방해하고 갖가지 벌을 가중시키며 더 나아가서는 대죄에 떨어질 위험을 초래한다.

 

그러니까, 상기의 설명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무지나 자신의 탓이 아닌 것에 의한 행위는 죄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마태 8장에 나오는 마귀들린 사람의 행위는 마습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마귀의 영향에 예속되어 있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행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지요. 이러한 경우는 자신의 죄와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살지못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지못하기에 참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를 위해 우리는 선한 손길의 도움을 펼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하지요. 예수님은 그러한 해방의 사랑을 지금 마태 8장에서 드러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웃이 있으면 그리스도께 안내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총을 구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신약성서를 보면 많은 이들이 병약하고 귀신들린 이들을 그리스도께 데려오고 축복을 청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중재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일꾼이 되시길 바라고 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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