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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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8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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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30 ㅣ No.172861

[연중 제8주간 목요일] 마르 10,46ㄴ-52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손자병법을 보면 적군과 싸우기 위해 진을 칠 때에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는 것이 병법의 기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군이 수세에 몰리면 산으로 도망쳐서 적군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고, 아군이 공세를 취할 때에는 적군을 물 쪽으로 몰아서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나라의 명장 한신은 조나라의 군대와 싸울 때 이 병법을 정반대로 적용했습니다. 당시 한신이 지휘하던 군대는 먼길을 행군하느라 무척 지친 상태였고, 정규 군사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게다가 적군인 조나라의 군사들에 비해 수적으로도 열세였습니다. 그래서 한신은 군사들로 하여금 물을 등 뒤에 두고 진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던 한신의 군사들은 죽기살기로 싸웠고 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필사적인 각오를 드러낼 때 쓰는 ‘배수의 진’이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입니다. 배수진이란 강을 등지고 진을 치는 것으로 앞에는 적군이 있고, 뒤에는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강이 있으니, 죽음을 각오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전력을 다해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소경 바르티매오도 배수의 진을 치는 비장한 각오로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에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만류와 구박에도 불구하고 목이 터져라 큰 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의 비장한 각오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사람들을 시켜 자신을 부르시자 그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눈 먼 거지로서 노숙을 밥 먹듯 해야했던 바르티매오에게 있어서 겉옷은 목숨만큼 소중한 재산목록 ‘1호’였습니다. 겉옷은 쌀쌀한 바람을 막아주었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그를 지켜주었으며, 잘 때에는 이불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그토록 소중한 겉옷이었지만 그 겉옷을 챙기는 일이 예수님을 만나는 일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아낌없이 내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겉옷과 함께 아직도 남아있는 알량한 자존심까지 다 던져버렸습니다. 앞 못보는 소경으로 살아야 했던 슬프고 괴로웠던 과거를,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거지였기에 거칠고 험한 세상에 맨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끔찍하고 혹독했던 지난 날의 기억들을,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둔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 같은 감정들을 다 뒤로 던져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는지 물으시는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합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매일 아침 새로운 마음으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우리 신앙인들도 바르티매오처럼 내가 입고 있는 수많은 ‘겉옷’들을 다 벗어 던져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자존심, 체면, 위선, 겉치레, 질투, 미움, 분노 같은 겉옷들을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나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내가 고통을 겪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또한 바르티매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 하느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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