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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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승천 대축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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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5-12 ㅣ No.172355

[주님 승천 대축일 나해] 마르 16,15-20ㄴ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그저 멍하니 하늘만 봐라봐 /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봐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봐 / 그저 멍하니 지금 너의 사진만 바라봐

 

똑같은 미소 똑같은 모습 / 똑같은 옷차림의 너를 잊지 못한채 멍하니 

도대체 뭣 땜에 / 너에게 화만 내고 못된짓만 했는지

너에게 잘해줄걸 널 좀 더 이해할걸...

 

너와 함께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걸까]

 

박명호라는 가수가 부른 <사진>이라는 곡입니다.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진 뒤에,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남자의 심경을 담고 있지요.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주진 못할망정 화를 내며 가슴 아프게 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며, 그런 자기 잘못과 부족함 때문에 더 이상 그녀와 함께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좌절과 공허함을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 모습이 자기들을 떠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모습과 비슷했을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그분이 ‘주님’이심을 온전히 믿게 되었는데, 그런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면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나신다는 사실에 망연자실 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그동안 예수님을 따른 것은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였는데, 예수님께서 자기들은 세상에 남겨놓은 채 당신 혼자서만 그곳으로 떠나신다고 하니 섭섭하기도 했겠지요. 또한 예수님 없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들이 그분께서 맡기신 사명을 대체 어떻게 수행해야 할 지 막막하기도 했을 겁니다. 그래서 하늘로 오르시는 예수님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그들에게 천사들이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고,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 것들에만 연연하지 않고 하늘을, ‘하느님 나라’라는 참된 가치를 추구하며 살도록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엄연히 ‘세상’ 한가운데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야 할 ‘형제’도, 우리가 이해와 용서로 얽힌 관계의 매듭을 풀어야 할 ‘원수’도 다 이 세상에 있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하늘만 보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이야 망하든 말든 우리만 잘 되면 된다는, 남이야 어찌되든 상관없이 나만 구원받으면 된다는 이기적이고 편협한 태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한다면 지금 이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나만 탈출하려 하지 말고, 내가 사는 이 세상이 하느님 나라가 되고 천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세상에 파견하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께서 만드신 이 세상을,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다시오시는 ‘그 날과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에 있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 기다림은 나무에 매달린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수동적’인 기다림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그저 손 놓고 기다리라고 우리를 부르신게 아닙니다. 더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 곁으로 모여들어 구원받기를 바라시기에, 우리에게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할’ 막중한 사명을 맡기신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기다림이라는 시간을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알차게 채워가야 합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을 삶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도’로서의 소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 소명을 실천하는 세 가지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첫째,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며 겁을 주라는게 아닙니다. 초기 교회 공동체가 그랬듯이 주님 뜻에 충실하게 살아가며 그 안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라는 겁니다. 둘째, 마귀를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 안에 깃든 마귀만 쫓아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욕망과 집착으로, 나태함과 게으름으로 끊임 없이 우리를 유혹하는 사악한 세력에 넘어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셋째,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의학적으로 직접 치료해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위로와 힘을 주라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를 위해 당신 ‘이름’으로 청하는 것들을 주님은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겁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지향해야 할 최종 목표는 그곳이 어디인지도 불분명하고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는 ‘하늘’을 찾아 헤매는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종목적지는 ‘하느님의 오른쪽’에 있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이 세상에 있는 동안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충실하게 살아온 의로운 이들에게 돌아갈 영광된 자리입니다. 그러니 주님처럼 승천하기를, 그래서 그 영광된 자리에 앉기를 바란다면,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분의 뜻에 대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요한 6,39-40)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음선포’라는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선교라는 사명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선택사항’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길 바란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의무입니다. 이 점을 되새기기 위해 오늘 우리는 주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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