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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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악인에게 맞서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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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봉7 [gloria7] 쪽지 캡슐

2024-06-17 ㅣ No.173394

 

 

 

 

  

 

 

2024년 나해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인에게 맞서지 말아야 하는 두 가지 이유>

 

 

 

복음: 마태오 5,38-42

 

 

 


LORENZETTI, Pietro 작, (1325)  

   

 

    오늘 복음은 우리가 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악인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속옷을 가지려 하면 겉옷까지 내어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밭을 노립니다. 나봇은 아합에게 포도밭을 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제벨 여왕이 나서서 일을 꾸며 나봇을 죽게 합니다. 나봇은 반항도 못 해보고 포도밭을 빼앗깁니다. 

그런데 이것을 정말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 독재자가 나타나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데모라도 해서 저항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오늘 복음대로라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로마 지배하에 있었지만, 로마에 세금을 내라고 하시고 바오로 사도는 도망친 노예를 주인에게 돌려보냈습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말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악인에게 맞서면 같은 수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주인공은 사이코패스를 가장 고통스럽게 죽이려고 본인이 그 사이코패스보다 더 악랄한 존재가 됩니다. 같이 놀면 같은 존재가 됩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독재정권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권을 잡으니 더 악랄한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쿠데타를 해 보니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들고일어서지 못하게 하는지 그 방법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싹부터 잘랐습니다. 그리고 무려 49년 동안 20세기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독재정권을 유지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나를 사랑하고 따르는 이들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내가 악인과 맞서면 나를 따르는 이들도 그를 적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은 마음에 미움을 가지게 될 것이고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으로 민중이 귀족과 종교에 대해 들고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런데 몇몇 선동에 일반 시민들은 수많은 사제와 귀족들의 머리를 단두대에 올려 잘라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미움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들도 모르게 범죄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유다와 맞서지 않고 그를 감싸셨습니다. 유다가 당신을 팔아넘기기 위해 입맞춤하실 때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끌려가서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이렇게까지 유다를 감싸신 이유가 ‘하.사.시.’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에 잘 드러납니다. 

    “적어도 마지막 시간까지, ‘죄악’을 숨겨 두어, 제가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피로 그들의 몸을 더럽히지 못하게 막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저들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7-224). 

 

 

    만약 예수님께서 유다가 배반할 것을 드러내셨다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당신 제자들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하였을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나쁜 생각이 깃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악인에게 맞서면 안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훈련하고 분별하는 장소입니다. 더 큰 고통과 시련이 있을수록 더 정화됩니다. 우리는 악인에게 저항하거나 맞서기보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으셨는지 먼저 배워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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