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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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초상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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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학 [pshak59] 쪽지 캡슐

2001-05-02 ㅣ No.3416

또 초상났어요

이글은 최경용신부님이
가톨릭다이제스트(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신부님은 레지오 마리에전공으로 
신학박사학위를 받으신 바 있습니다.

"또 초상났어요."
한달새 벌써 여섯 번째다.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속 초상이다. 병자성사로 대기중인 
이들도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초상이 날 것이다.

"이곳에 저승사자로 부임했나. 
아니야, 어르신네들 모두 천국보내 드리려고 
부임한 거야" 혼자속으로 자위해본다

지난 2월 울산 성바오로 성당에서 
부산영도에 있는 신선성당으로 발령이 났다.
신선들이 산다는 동네이름과는 달리
빈궁하고 병든 노인이 많은 곳이다. 
현대중공업 직원이 많아 평균연령이 젊고 
보좌신부도 있는 울산의 전임본당과 대조되는 본당이다.

발령이 났을 때 "지속적인 성체조배실"에 들어가 
기도하며 묵상했더니 "베드로야, 너는 편하려고 
사제가 되었느냐? 더 넓은 새 어장으로 기꺼이 떠나거라.
신선(神仙) 성당에가서 신선(新鮮)한 사제가 되어 
신선한 본당으로 만들어라." 
사제서품 25주년이 되는 해에 대형본당에 안주하지 말고
새부임지로 떠나 새마음을 지니고 새출발을 하라는 
말씀으로 가슴에 와닿았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니 내적인 평화와 기쁨이 
온 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신선성당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유치원 원아들이 양옆으로 도열하여 환영해 주었다.

"너도 이런 어린이들처럼 되어라. 하늘나라는
이런 어린이들 것이다." 그리고 마당 끝 
높은 동굴안에 두손을 모으고 서 계시는 
루르드의 성모상도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 지소서."

신선본당은 설립된지 46년이 되어 
교적상으로는 신자가 4400여명이지만 
주일미사 참례자는 750명 남짓이다.
6.25전쟁때 나온 밀가루신자도 아직있고 
냉담상태에서 결혼해 교적을 옮기지 않은
신자도 많다고 한다. 미신이 많은 섬이라서
그런지 관할구역은 넓은 데 새양 데려오기가
무척 힘든 실정이다. 
예비자 숫자만큼 병자 영성체대상도 많다.
그래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한가하고 여유롭게 지낼 상황이 아니다.

부임하자마자 전체 신자 가정방문을 시작했는데
쉬고 있는 냉담교우가 눈에 띄면 반가워서 
그 자리에서 성사를 준다. 고해성사 보러
성당에 나오라고 하면 대답은 해놓고
안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냉담생활20년이 넘은 대어들도 낚인다.

초상이 나서 상가를 방문하면 유가족 중에
냉담자가 종종 있다. 고해성사기회를
놓칠 수 없다. 얼마전엔 유가족 중 고인의 남편에게
성사를 주었는 데 난생처음 낚은 36년짜리 대어였다.
고해성사후 기쁨을 나누고 싶어 함께 한잔 했다.
마치 잃어버린 아들의 아버지라도 된듯 기뻤던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비신자노인들도 자주 눈에 띈다.
그들을 차마 성당교리반에 나오라고 권유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방문교리, 출장교리를 실시하고 있다.
아직 숫자는 보잘 것없다. 그러나 연로한 엘리사벳을 
친히 방문해 봉사를 아끼지 않으신 성모님처럼
교회도 노인들을 직접 방문하여 봉사하는 
자세를 보여주고 싶다.

어느새 성모성월이다. 나는 소년시절 친구의 레지오
활동덕분에 신자가 되었다. 스스로 소년 레지오단원이
돼 사제성소를 받고 레지오 마리에도 전공했다.
그런데 성당마당에 있는 성모상만 보고 
개신교 형제들이나 비신자들이 천주교를 마치
마리아교로 오해하니 속이 상한다.

성모님은 주인공인 예수께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안내자,
문지기역을 하는 분임에 그들은 모르는 것이다.
불교사찰에 가보면 문지기 노릇을 하는 사천왕이
문간에 있고 주인공인 부처님은 깊숙한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것과 같은데도 말이다.

예수님탄생시 목자들이 아기예수께 곧장 
인사한 것이 아니라 먼저 마리아와 요셉의 안내를
받았고 (루가2,16)동방박사들도 아기예수께
경배드리기 전에 먼저 어머니 마리아께 
인사하였던 것이다.(마태2,11)이처럼 성모님은
아드님께 오는 손님을 맞이 하려고 
사시사철 성당마당에 나와 계신다.

예수님 혈액형은 성모님 혈액형과 똑 같다.
피는 못 속인다고 예수님은 성모님을 빼닮으셨고
성모님께 효도를 다 하셨다. 
친히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시고(마태19,19)
부모에게 순종하며 사셨다.(루가2,51)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성모님과 사랑하는 제자를 모자관계로 맺어 주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셨으니
(요한19,25) 개신교 형제들도 그 제자처럼 성모님을
어머니로 깍듯이 모신다면 분파와 분열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천주교를 마리아교로 오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사제생활중에 영성적으로 메말라 쓰라린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몇개월간 이곳저곳
복지시설에서 생활했는데 모두가 성모님과 
관계되는 곳이었다. 불우한 그들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고 그들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도 받았다.
긴 세월이 지나 사제서품25주년이 되는 해에
이곳 신선성당에 부임해 그때의 각오를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병들고 궁핍한 노인들과 장애인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어린이들이 바로 예수님이니까.

얼마 안 있어 " 또 초상 났어요" 할 것이다.
그래도 좋다. 고인은 예수님처럼 성모님품에
안겨 하늘나라에 갈 것이고 유가족중에 냉담자는
고해성사로 구원받는 기회가 될 테니까.
*최경용신부/부산교구 신선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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