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일 (일)
(백)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그분"이 불러주셔서 .... 브뤼셀의 노트르담 (열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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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항 [vinchen10] 쪽지 캡슐

2004-12-13 ㅣ No.429



"그분"을 사랑함으로

  산수유가 피었나 했는데 아파트 담장과 정원에는 목련이 한창입니다. 이파리 하나없이 한 아름이나 되는 흰 꽃을 가지마다 안고서 눈물 그렁 그렁한 새댁이 금방이라도 눈물 쏟아 낼까봐 목련에 꽃망울 맺힐 때부터 봄잠을 설치기 시작했습니다.

  또, 꽃 이야기 하나 더 해볼까 합니다. 저희 집 군자란이 드디어 주황색 꽃을 활짝 피웠더랬습니다. 해마다 피워온 터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며칠 전부터 힘차게 꽃대를 쑤욱 뽑아올리더니 오늘에사 넉넉한 꽃망울을 터트리니까 겨우내 초라하던 우리집 베란다가 금새 화려한 꽃동산으로 변해버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벌써 이 십년이 넘게 우리 가족과 살아온 터이고 더우기 신혼 때부터 이사짐따라 더불어 살아온 군자란인지라 각별하게 신경을 써주었다면 벼락을 맞겠지요. 오히려 여섯 분(어떻게 표현해야 하나요? 동양란 화분 개수를)이나 되는 동양란에 신경을 더 쏟았다는 말이 옳겠지요. 그저 무덤덤하게 보아온터라고 고백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이제, 벼루어 오던 나만의 꽃맞이 행사를 해야겠습니다. 라면 냄비 들고서 볕 잘드는 베란다에 앉아서 두어 줄기 라면발 후루룩 들이마시며 줄기찬 군자란의 생명력을 배우렵니다. 동양란이 가진 멋이란 그윽한 향기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초가집, 버선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미려한 곡선이 주는 보일 듯 말 듯 감치는 한(恨)의 곡조를 닮았다면 군자란은 끈질기면서도 힘차게 솟아 오르는 이 땅의 백성들이 살아오면서 보여주는 굳셈과 태산처럼 너른 어깨가 생각나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까요???
참, 석파(石破) 대감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군자란을 힘과 멋이 아우러지게 한 번 쳐 주실까요?

  그런데 꽃맞이 행사에 왠 라면? 하시겠지만 옛날 일본의 도요도미 히데요시는 벚 꽃이 만발할 때면 천하의 제후들을 모아놓고 눈 어지럽게 한들거리는 벚 나무 아래서 찻물을 끓이며 천하를 논했다는군요,
벚 꽃과 권력이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 자리에서 도꾸가와 이에야스는 내가 천하를 얻는다면 큰 가마를 걸어 놓고 흰죽을 쑤리라, 내 백성 누구도 굶주리지 않는 부처님 세상을 꿈꾸며 잠자코 내일을 기다렸답니다.
누가 천하의 주인이 되었는지는 물어볼 것도 없겠지요.

  기껏 소시민이 천하를 논할 수야 없겠지만 무엇을 이야기 해볼까요? 꽃과 사랑, 아참!  순례기를 이어나가는 게 어울리겠지요. 그리고, 겨울을 이겨낸 춘란이 꽃을 피운다면 나도 아끼던 지리산 죽로산 세작, 그 덟은 맛을 그 앞에서 보리라... 유치하다고요? 에이, 그냥 봐 주시구려....

* * * *

  밤을 세워 달려온 열차가 파리 근처에 왔을까, 3층 침대칸에서 내려와 복도에 나오니 새벽을 기다리는 몇 몇 승객과 기지개를 켜며  "봉~쥬흐" 새벽인사를 나눕니다.
여덟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파리의 리옹역은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부수수한 모습으로 친근하게 우리를 반겨주었지만 순례자는 벌써 다음 순례지로 고개를 돌리며 매정하게도 정을 떼고 있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는 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면 아침도 거른체 집을 나선 파리지앤느들의 출근차량으로 도로는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서울이나 파리거나 사람 사는 모습은 매양 비슷한 가 봅니다.
버스가 씽씽 제 속도를 낼 때면 멀리서 에팰탑이 커다란 제 몸둥이에 깜박거리는 전구를 달고서, 서둘러 새벽 여명이란 놈이 "방~빼" 하며 어둠을 향해 고집스럽게 달려드는 것을 달래고 있습니다.
     "야 임마, 넌 해장국도 안 먹고 오냐?  기다려, 밤이란 놈도 눈꼽이나 떼고 ... 어차피 저녁이 오면 너도 방 빼야 할 터인데 서둘기는...."
금방입니다. 어느새 차장 밖으로 싱그런 아침 공기가 밤새 내린 빗방울을 한껏 웅켜지고 맑디 맑은 겨울 아침인사를 건내고 있습니다.

  도중에 아침요기라도 하려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서 저마다 전화기를 듭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멀리 떠나온 터라 아이들이 매우 보고 싶었습니다만 기껏,
   "밥은 제때 먹었고,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제 주변머리가 이렇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루르드의 성모님을 네가 봐야 하는데 얼마나 예쁘신지, 또 루르드의 생명수에 침수예식을 할 때는 얼마나 차가운지 도망가고 싶었단다, 그런데도 신기한 건 몸을 담궜는데 말야, 오히려 몸 속에서 따뜻하고 신비한 힘이 올라오는 게 아니겠어,너무 좋았단다. 너랑 꼭 다시 와야 할 텐데..."
바케트가 싫어서 낮익은 토스트랑 커피를 마시며 이렇게도 먼 이 곳으로 불러주신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네 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벨지움은 우리나라 충청도 만한 크기에 약 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이며 수도는 브뤼셀입니다. 1,831년 네덜란드로 부터 독립한 이 나라는 남부의 곡창지대와 북부의 공업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사용하고 있는 언어도 북부의 플라망어(네댈란드어)와 남부의 왈릉어(프랑스어)를 사용하며 나라의 일체감이 부족하여 분리 하자는 움직임도 있다고 합니다.
브뤼셀의 중심가는 시청사가있는 그랑팔라스며 고색창연한 건물이 빼곡히 들어 서 있는데 대개 오래된 길드 건물이 둘러 선 광장이 아름답습니다. 괴테가 그 아름다움을 극찬했다지요. 봄이 되면 아름다운 꽃잔치가 벌어질 때면 관광객들이 많이 온답니다. 제 2의 파리라고 할 정도이니 브뤼셀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알 수 있겠지요? 
  제화공 길드와 제과공, 제분업자들의 길드 등 업종별 조합이 아직 그랑팔라스광장에 늘어선 고색창연한 건물에 자리하고 있지요. 그 옆에 사층 정도되나 아주 좁은 건물이 바로 브뤼셀에서 최소 두어달 전에 예약을 해야하는 최 고급 레스토랑이라기에 가보았습니다. 아무리 전통을 고수하는 유럽이지만 한 층당 사십여 평도 채 안되어 보이는 좁은 식당하며 올라가는 계단에는 술에 만취한 술주정군이 정오 무렵인데도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밖으로 나온 메뉴판을 보니 거위 간으로 만든 요리가 최고라네요...

  벨지움은 수예품과 카폣트가 유명하여 가게마다 즐비하게 걸려 있고 길가에 해바라기하면서 마실 수 있는 까페에는 유명한 벨지움 맥주가 거품 가득한 채로 관광객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골목이 좁아 소형차라야 다닐만 해서인지 예쁘게 생긴 소형차들이 골목마다 정차해있고 반시간이 채 안되어 중심가 구경을 다 해버립니다.
아~! 유명한 "오줌싸게 소년" 동상을 길 모퉁이에서 발견하고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이젠 기억나지 않는 안데르센 동화책을 읽으면서 가녀린 소녀에 심취해 가슴 에이던 일이 생각 나네요. 그러나 유명세를 따라서 바로 옆 골목 안에 위치한 "오줌싸게 소녀"상은 영 아니올시다. 아무리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해도 쭈그려앉아 오줌 누는 모양이 엽기적이구 말구요.

  발길을 돌려 중심가에 위치한 "노트르담"성당에 갑니다. 왜냐고요, 미사 시간에 맞추려...
브뤼셀의 노트르담 성당은 중심가의 상가가 즐비한 도로에 자리했는데 대개의 성당과는 달리 계단이 없이 성전으로 들어 갈 수 있어 참 편안했소이다.
로마, 파리 등 대형 성당만 봐오던 터라 알맞은 크기와 편안한 입구 땜에 뭐랄까 미사드리는데는 오히려 맘이 차분하게 가라 앉아서 너무 좋았다고 해야겠지요. 물론 이 성당도 퍽 오래된 듯 제대에는 아름다운 조각으로 성모님과 성인들이 계셨고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제대가 동시에 자리하여서 퍽이나 기품이 흘러 넘쳤읍니다.

  오늘의 독서는 히브리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봉사해 왔고 아직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보여 준 선행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여러분 각 사람이 희망을 성취하기 까지 끝내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바랍니다. 게으른 자가 되지말고 믿음과 인내로써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상속받는 사람들을 본 받으십시오." 독서를 낭독하는 대학생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노트르담의 성전을 퍼져나가고 있는데 함께 미사에 참례하는 벨지움 사람들도 이 말씀을 이해하는듯 엄숙했소이다.
송신부님의 오늘도 "성인되십시오" 라는 강론이 더욱 절실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영성체 때는 여러 분의 벨지움 교우들과 순례자인 듯 아시아 사람들도 함께하여 매일 매일 바치는 미사는 여러 인종의 신도들이 함께하여 의미가 깊었습니다.

  깊은 묵상에 잠겨있다 밖으로 나오니 바깥은 바로 분주한 번화가인지라 길에 좌판을 벌인 짚시여인이 여러명 관광객을 부르고 있네요. 짚시여인의 검은 눈이 무척 고단해 보였습니다. 황혼녘이어서 그래 보였는가 모르지요. 흥정을 벌이며 몇 가지 토산품을 사는 일행과 한국에서 배낭여행을 떠난 대학생들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참 우리나라가 세계화 되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햐흐로 유럽은 온통 성탄세일 끝무렵이어서 가난한 순례자를 자꾸 유혹하는데, 우리는 브뤼셀의 명동에 서 있습니다. 어스름 어둠이 짙어 오는 번화가는 일상을 끝낸 연인들이 도로마다 가득 밀려옵니다. 이제 활기가 넘쳐나기 시작하네요. 역시 젊은이들이 북적이는 곳이어야 장사도 잘 되고 사람 사는 듯한 생기를 느낄 수 있나 봅니다.
도시 어느 곳에서나 황금빛 "생 미셀"조각이 눈 부신 생 미셀 성당이 보여 얼마나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황궁, 그 앞에 넓게 펼쳐진 황실 정원,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었던 공원 ...어둠이 짙어진 밤거리를 버스투어로 즐기며 일행들 표정은 심드렁해 하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로마와, 아씨시, 루르드와 파리에 길들어져서 수준이 너무 높아서일까요?
그래서 유럽으로 갈 때는 제일 마지막에 로마를 들려야 한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가 봅니다.

  오늘 숙소는 제일 번화가에 자리한 현대식 호텔이어서 깊은 잠을 잘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짐을 호텔에 풀고 저녁을 먹으러 호화반점, 중국식당으로 갑니다. 한국식 다음으로 중국집이 입에 맞아서 루르드에서 프랑스 요리에 질려있던 제게는 상당히 신나는 메뉴였습니다.
깔끔하게 중국 전통 옷을 입은 종업원의 서빙을 받으며 식사를 즐기고 있었는데 교포가이드가 서빙하는 청년을 가리키며 한국인이라 합니다. 젖먹이 때 이곳으로 입양해 온 탓이라 우리나라 말도 못하지만 한국에서 온 순례자를 보면 저렇게 반가워한다는 말을 들으며 잠시 묘한 생각에 빠져듭니다.
저 청년도 자기를 낳아주고 어쩌면 버리다시피 한 자기 친부모를 찿고 싶을까?

  화제를 돌려 은발이 잘 어울리는 가이드, 60년대 후반 서독 간호사로 고향을 떠난 이래 이곳 벨지움의 루뱅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당시 유학생이었던 남편을 만나 아이를 키웠고,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을 출가 시키고 학교마져도 은퇴하였답니다. 아마 일찍 떠나 온 조국이 그리워서 일까, 가끔 한국에서 오는 여행자들 가이드를 하며 소일한다는 곱게 나이든 가이드에게
  "한국에는 가끔 나가십니까?"
  "왠걸요, 부모님과 형제들 모두 돌아 가신 후에는 고향이 너무 낯설어요, 조카들도 있지만 ...또 너무 멀어서...."
말 꼬리를 흐리는 가이드의 눈 주위에는 주름도 주름이지만 못살던 시절 조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만 했던 한 여인의 신산한 삶의 피로와 고향도 가물 가물거리기만 하는 짙은 외로움만이 묻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60년대 말인가? 탄광 광부로 간호사로 조국의 젊은이를 보낸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
    "여러분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이역만리 외국 땅으로 고생하러 떠나보낸 조국의 못난 대통령을 원망하십시요. 저와 고국에 남은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 다시는 이 땅의 아들 딸들이 먼 이국 땅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잘 사는 날이 올 때까지 몸 성히 계십시요..."
연설을 마치고 대통령은 모였던 간호사와 광부들을 얼싸안고 엉엉 울었다는 글을 읽고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지...

  찹찹한 마음으로 가랑비가 내리는 거리에 수퍼를 찾아서 유명하다는 벨기에 맥주를, 평소 눈에 전혀 익지 않은 놈으로 한병 사들고 호텔로 돌아 옵니다.
못난 조국을 만나 고생하다가 결국은 이방인이 되어 살갗을 파고드는 처연한 겨울비 내리는 유럽의 깊어가는 밤으로 가이드를 배웅합니다.

그대는 깊숙이 들이 마시면 만져지는 이 외로움의 정체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또 제법 잘 살게 되었는 데도 바깥으로 바깥으로 똥 오줌도 못가리는 어린아이를 내보내는 이리도 잔인한 내 나라를 어찌 생각 하십니까!!!
유럽의 겨울은 하루도, 단 하루도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없나보네요!

  멀리, 내가 태어나고 부댖기며 더러는 고달픈 삶을 원망하던 그곳은 지금 한 낮인가요?
그리운 이여 ! 차가운 겨울 비가 창문을 적시는 깊은 밤, 내 안부에 혹여 감기라도 옮길까 염려돠어 차마 전화기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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