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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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안나 [joanveth] 쪽지 캡슐

2003-12-31 ㅣ No.9709

2003년을 보내며

 

떠오르는 할머니들 몇몇 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작년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시간에 어느 멋쟁이 중년부인이

 

할머니 한 분을 모시고 와서 교적확인을 하러 오셨습니다.

 

차림새로 보아 꽤나 있는 집 부인인 듯 했습니다.

 

어머니가 원해서 이곳으로 다시 교적을 옮겼는데

 

치매가 있어서 걱정이라는 말과 잘 부탁드린다는 말로

 

할머의 교적을 확인하고 떠나가셨습니다.

 

그 후로 할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성당에 오셨습니다.

 

미사시간 변경이 잦은 대다가 할머니의 머리로는

 

미사시간을 다 기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침에 눈뜨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발길 닿는 대로 오시는 곳이 성당입니다.

 

10시미사면 8시부터 와서 성당 문을 두들기기를 다반사였고

 

9시 출근인 나보다 먼저 오셔서 늦게 출근한다고 호통을 치시기도 하시고

 

성당에 들어가서는 묵주기도를 큰소리로 하셔서 묵상하는 다른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도 하셨지요

 

노인대학을 빠짐없이 참석하셨으나 봉사자들의 애를 먹이며 힘들게도 하셨고요

 

그러나 할머니는 늘 밝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알았다고 하시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다시 자제분있는 곳으로 교적을 옮기기전

 

성탄 전야미사가 있던 날

 

할머니는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와 성당마당에서 마주쳤습니다.

 

제법 찬바람이 이는 아침에 할머니는 입성도 제대로 입지 않고

 

뭐가 그리 바쁘신지 부랴부랴 성당을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할머니 오늘 미사 없어요 이따가 밤에 오세요

 

그래? 미사 늦어서 밥도 못 먹고 왔는디....

 

목도리는 땅에 질질 끌리고...

 

몇 번을 감어서 묶어주고 다시 할머니를 보내려는데 마음이 걸렸습니다.

 

"할머니 따듯한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 하니까

 

"나 당뇨라 그런 거 안 먹어" 하시며 다시 집으로 가십니다.

 

그 후로 할머니를 뵙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가실 거면 할머니 손 한 번 더 잡아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참으로 어렵게 손녀를 키우며 사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십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어떻게 됐는지 잘은 모르지만요.

 

할머니의 얼굴은 늘 어두우셨습니다.

 

가끔 낮술을 하시고 한가한 성당에 오셔서 조용히 있다가 가시곤 했지요

 

빈첸시오회의 도움을 받아 이럭저럭 살아가시며

 

도움이 끊길 새라 눈치도 많이 보시며 힘겨워하는 할머니를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무실에 오셨습니다.

 

그 어렵게 키우던 손녀딸이 취직이 되어 첫 월급을 탔다고...

 

그래서 너무도 감사해서 미사를 넣으려고 왔다고...

 

친구 할머니들이 감사미사나 자손들을 위한 미사를 넣을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고....

 

우리 사무실식구들은 모두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할머니 얼굴에 이제 깊은 시름이 거두어지길 바라고 또 바래봅니다.

 

 

 

사무실 식구들이 도시락을 싸오는 것을 눈여겨본 어느 할머니는

 

어느 날 작은 통에 반찬을 여러 가지 싸오셔서는 남이 볼 새라

 

슬며시 두고 눈을 찔끔하시며 어느새 가버리셨습니다.

 

점심시간에 할머니가 주신 반찬 통을 열어보니

 

할머니 손으로 조물락 조물락 비벼만든 무말랭이였습니다.

 

무말랭이 장아찌 위에는 잣이 송송 눈이 온 듯 뿌려져있었습니다.

 

간식으로 먹으라고 찰떡을 데워서 먹기 좋게 송송 잘라오신 통을

 

들여다보며 따뜻한 할머니의 정이 솔솔 느껴졌습니다.

 

 

 

할머니도 많고, 할아버지도 많고, 아픈 사람도 많은 우리성당에

 

내년에는 웃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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