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자유게시판

사랑받기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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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peterpan65] 쪽지 캡슐

2002-09-22 ㅣ No.39117

 결혼후 처음 맞이하는 한가위 였습니다.

 

모처럼 긴 휴가를 맞아서 어떻게하면 이 황금연휴를 알차고 또 푸~욱 그간의 피곤을 날려버리며 쉴 수 있을까?를 곰곰히 생각하다보니...헉! 휴가가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그냥 쉴것을...

 

좀더 알차고 어쩌구 고민하다가 휴가가 끝나고 만것이지요.

 

일년에 몇번 안되는 이런 황금연휴가 대개 이런식으로 끝나는것이 참 어리석음을 알면서도 여적 고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총각시절엔 그저 방바닥에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다 배가 출출하다 싶으면 주방 아무 덮개나 열어서 지지미 몇조각 집어먹고 다시 뒹굴 거리면 그만이었지만 결혼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쓴뒤에는 주위 여건상 이것이 허락되지 않더군요.

 

성묘는 당연한 일이고 이집 저집 그간 인사드리지 못했던 친척집을 돌며 인사도 드리고, 그러다 이젠 끝났겠거니...안심을 하려면 다시 처가집으로 향해야하고 우리 사위 왔네 하시며 밥상위에 있는 이런저런 음식접시들은 전부 내앞으로 몰려와 꾸역꾸역 고문 비스무레하게 먹어제끼고, 그렇게 정신없는 이틀이 지나고야 겨우 오늘 정말 우리 둘만 쉴 수 있는 첫 휴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정신없었던 추석연휴를 복기하고 있었지요.

 

심심하기도 하더군요.

 

TV리모콘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도 재미도 없고...뭐, 재밌는 일 없나?를 생각하다가 갑자기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오르지 뭡니까?

 

언젠가 누군가에겐가 들었던 나이 50이 넘어 내일모레면 60을 바라본다던 한 부부의 얘기에 아내가 감동을 받은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생일날은 지금도 잊지않고 꽃을 사간다는 그 단순한 얘기에 아내가 참 부러워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의집엔 달력이 하나 있는데 그곳엔 제가 친히 날짜마다 체크해가며 아버님생신, 어머님생신, 누구누구 생일, 혹은 축일등등을 표시해놨습니다.

 

아직은 초보 새색시에 대한 저의 배려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중년부부의 얘기를 들은 아내가 무심코 툭 던졌던 한마디...

 

"어떻게 그 달력에 내 생일은 표시 안되어있지?"하며 입을 삐죽이 내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엔 깜짝 이벤트를 하려고 일부러 그랬다며 급급히 변명을 대며 넘어갔었지요.

 

갑자기 그 생각이 나지 뭡니까?

 

생각해보니 아내에게 미안한 맘도 없지 않아 저는 달력에 표시를 해놓아야지 하며 아내가 잠시 나간후 네임팬을 들고 아내의 생일인 12월달 페이지를 훌쩍 넘겨 그곳에 선명하고도 크게 인쇄 되어있는 9일날에 각종 하트 모양이며 별 모양까지 그려가며 화려하게 장식을 하고는 오늘은 당신의 날이라며 애교성 멘트까지 적은후 다시 달력을 원위치 시켜놓았지요.

 

아내가 보면 감동 받겠지! 저는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한것 마냥 의기양양 괜시레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태연한척하며 TV를 보고 잠시후에 있을 그녀의 감동 받는 모습을 상상하며 괜히 기분이 좋아 바보처럼 히죽 거리고 있었습니다.

 

나탈리아가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것을 알리고자 일부러 그녀에게 툭 물어봤습니다.

 

"자기야! 올 크리스마스는 무슨 요일이지?"

 

그러자 나탈리아는 "글쎄?"하며 날짜를 따지는 듯 했습니다.

 

"아! 복잡하게 따지지말고 가서 달력 열어보고 알려줘봐!"

 

"알았어...근데 그건 왜?"

 

"글쎄 알아야 할 일이 있어서..."

 

아내는 그러려니 하며 달력이 있는 거실로 쪼르르 나갔습니다.

 

그녀는 12월달 달력을 열어보겠지요? 그리고 자신의 생일날 적어놓은 나의 화려한 장식에 감동을 받을것이고 말입니다.

 

크크크! 저는 제가 한일이 마냥 잘한일이라며 자찬을 하고 감동 받을 아내를 상상하며 방안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언뜻 들으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이런 사소한 것에 여자들이 감동 받고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짧은 시간 상상을 했습니다.

 

감동받은 그녀를 살포시 안아줄까?...아니면 뽀뽀를???

 

이런 상상을 하며 행복감에 푹 젖어 있었지요.

 

잠시후......

 

저는 현관문 밖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방안에서 방심하고 그저 편안한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그차림...그러니까 소위 반라라고도 말하는 그 차림인채 현관문 밖에서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야! 이러지말고 우리 대화로 풀자! 응?"

 

"..."

 

"문 좀 열어줘봐. 아니면 나 웃도리라도 좀 줘."

 

"..."

 

"자기야~잘못했어. 잘못했다니깐...내가 착각했어. 아니 19일을 왜? 내가 그만 9일로 착각했지? 어제, 그제 너무 돌아다녀서 피곤하니까 나도 모르게 그만...자기야. 용서해주라 응?"

 

"시끄럿! 도대체 12월 9일날이 어떤 女+ㄴ의 소중한 날이야?"

 

"글쎄 그게 아니라니까...거 뭐, 주일날도 토욜날로 하자고 난리치는 마당에 그 19와 9가 그리 중요해?"

 

"조용안해?"

 

"녜~...하지만 문좀 열어주~"

 

이렇게 처절하게 현관문 손잡이를 붙든채 무릎꿇고 빌고 있는데 위층 아주머니의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뭡니까?

 

저는 얼른 아무일도 아닌척 태연히 체조를 하고 있었지만 웃통을 벗어던진 제 모습이 영~이상해보이는것은 감출 수 없었습니다.

 

"아! 아...안...녕 하세요?..허허허!" 저의 어색한 인사에 아주머니 목례를 하며 저를 위아래로 훑어 보면서 나갔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스스로 벌여서 사태를 이리 만드나 그래?

 

저는 오늘 빌고 빌어 겨우 다시 꿈에도 그리운 집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루종일 토라져있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별의별 재롱을 다 떨었습니다.

 

그냥 장난으로 알면서 그랬노라고 둘러댄후 겨우 아내의 삐짐은 끝났습니다.

 

12월 9일과 12월 19일...가끔 날짜라는것이 헛갈릴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전에 이런 실수였으니 망정이지 만일...정말 올 12월에...헉!

 

생각만해도 소름 끼칩니다.

 

여러분들은 한가위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피터팬의 연휴는 딱히 갈 고향도 없어서 그냥 이렇게 끝나간답니다.

 

즐거운 연휴 마무리 하시고 내일부터 다시 화이팅! 하십시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중얼...중얼...19일...19일, 19일...19"(사랑받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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