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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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냉담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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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11.200.210.*]

2006-03-19 ㅣ No.4020

저는 오래전 대학시절 스스로 선택하여 1년동안 예비자 교리를 받고 영세하여 가톨릭에 입교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하느님을 그것도 가톨릭에서 가르치는 하느님을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태신앙으로서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전혀 없이 부모로 부터 어린시절부터 신앙을 강요(?)받은

같은 또래 젊은이들을 불쌍하게 보았습니다. 

 

모태신앙을 가진 이들 중에는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로 신앙에서 멀어지거나 방황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르면 사춘기 시절 아니면 막 성인이 된 대학시절에 말이죠.

 

하지만 당신이 부모님을 전혀 선택할 수 없었듯이 사실은 우리의 신앙도 우리가 선택한게 아닙니다.

저는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제가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제 신앙이 결코 제가 선택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언젠가는 부모님께서 신앙을 물려 주신 것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신앙에 위기가 오고 냉담에 빠졌을때 제가 모태신앙이 아니라서 가족중에 누군가가 저를 질책하거나 기도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 너무도 속상하게 여겨졌습니다.(스스로 선택한 신앙에도 위기는 옵니다.)

 

이때는 모태신앙을 가진 이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님은 정말 배부른 소리하고 계시는 겁니다.^^)

 

제가 처음 가톨릭에 입교하던 시기는 우리나라에 가톨릭 신자가 채 5%도 되지 않던 시절입니다.

가톨릭 신자분들마다 어쩌면 그렇게 다들 거룩하고 착하고 정의롭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지 

제가 가톨릭의 한 일원이 된다는 게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신자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평신도는 물론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온갖 허물도 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실망도 많이 했었죠.

 

그런데 어느날 문득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별로 거룩하지도 못하고, 과히 착하지도 않고, 종종 비굴하기도 하고, 내 것부터 먼저 챙기려는 내가 바로 가톨릭 신자가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즉, 가톨릭 신자들의 온갖 부족함과 허물에 나 자신도 일조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는 나는 그렇지 못하면서 다른 신자분들이나 성직자 수도자 분들에게 '너희는 그래도 거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나도 제대로 지지 못하는 무거운 짐을 어찌 남들은 더 잘 지고 다니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이 그렇게 착하지도 거룩하지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세상의 욕심에 매여 사는 여는 사람들의 극악무도함과 잔인함과 음탕함과 천박한 욕심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옛날 저를 결정적으로 가톨릭에 입교하게 했던 계기는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위해 시간을 내어 봉사하던 한 소녀의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 소녀는 가톨릭 신자였었죠. 그때는 가톨릭 신자들은 다들 이렇게 천사같은 분들만 있는 줄 알았었죠. 저는 운이 좋았는지 초기에 그런 분들을 많이 뵈올 수 있었습니다. 독거 노인을 위해 몸소 봉사하시는 분. 집을 잃은 철거민들과 추운 겨울을 함께 나시는 분 등등...

 

물론 주일 미사에나 겨우 왔다가는 상당수의 보통 신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고 눈에 띠지 않게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분들이 드문 드문 보석처럼 박혀 있는 곳이 또한 가톨릭입니다.

 

저의 가톨릭 신자로서의 오랜 괴로움은 보석이 되기 보다는 보석의 빛을 가리우는 못난 신자가 바로 저라는 겁니다.

 

님께서도 보석같은 분들을 많이 만나보시고 궁극에는 보석같은 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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