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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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냉담을 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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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3-20 ㅣ No.4023

 

 

   † 찬미예수

 

   ○ 어릴적 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다녀왔습니다.

   ◎ 성모님 손잡고 성부께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은 좋은 것입니다.

  

   ○ 내 뜻과는 다르게 ...아니 진지하게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채..세례도 받고, 견진도 받고, 대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 쉬고 싶으실 때에도 병자들, 가난한이들, 고통받는 이들이 계속하여 밀려왔으며, 따라서 가톨릭 신자들도 때때로 감각적인 즐거움이나 환상에 젖어 인터넷 음악 방에서조차 예수님의 쉴자리를 배려해 드리기는 커녕 방송부터, 치료부터 해달라고 야단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회두해야 할 것입니다.

 

   ○ 그러다, 무의미 하게 반복되는 주일미사에 한두번 빠지기 시작했고 차츰 발길을 끊게 되었습니다

   ◎ 미사는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초대공동체를 보지 않고 산만한 사람들의 그것에 분심을 당하거나 주보등을 흘리고 가는 그것들에 아픔을 당하다보면 무의미해 질 수는 있습니다. 아무튼 무관지옥 빼고 나머지는 천국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 어머님은 제가 깊은 신앙을 갖지 못하고 냉담을 하려하니 많이 걱정하시고 화부터 내십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맘이 떠나있었지만 제가 미사 참례를 안하면 온통 신경이 곤두서시곤 하는 어머니로 인해 험악한 집안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싫어서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왔습니다.

   ◎ 어머님을 지상에서의 성모님으로 알현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은사로 어렵지 않게 보시다보면 어머니도 꽃을 좋아하시는 여심이기에 어머니를 천상으로 초대하시어 장미 화관을 씌워주시도록 예수님을 용서(얼굴을 마주함)해드리십시오.

 

   ○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사제와 평신도들로부터 느끼는 실망은 커져만 갑니다.

   ◎ 사실, 실망이야말로 주님의 몫이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형제님도 주님을 그렇게 닮아가는 여정이려니 생각하시고 성모님의 그것처럼 순명의 덕을 구하도록 어머니와 함께 조건부의 묵주기도도 바쳐보십시오. 성가정 부부가 절대 화를 내지 않고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서로 손잡고 나의 의견을 피력하듯이 모자지간은 오히려 부부보다 더 쉽게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을것인데 작은 기도로도 큰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 종교와 교회를 바라보는 저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가톨릭의 표현에 의하면 하느님이시고, 포괄적인 표현을 빌자면 신이 존재한다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고 표현하듯 우리 인간은 신의 일부를 접하고 자기가 보고 느낀것만이 진짜 신이라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 매우 정확한 표현이신듯 합니다. 그 정확성을 초월하여 완전하시기에 지고지순하실 수밖에 없는 신성뿐 아니라 거룩한 인성도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가톨릭이 보편성이라는 이유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출발선상에 불과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사적계시이기도 한데, 이로써 사적계시를 잘 가꾸고 거듭 완전하신 주님께 의탁하고 진화받음으로써 쉬어감으로써 당도하는 교회의 믿을교리(공적계시)를 우리는 또한 일반인들도 포용할 수 있는 공중 도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님의 사적계시도 분명 나쁜것만은 아닐테니 주위을 환기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 가톨릭의 성인들에게는 하느님의 모습으로 출현하셨고, 다른 이들에게는 조상신의 모습으로, 부처의 모습으로, 알라의 모습으로도 인간에게 나타나셨던 것은 아닐까요?

   ◎ 성인은 천국에 이른 신자의 모습이기에, 천국은 멀리있는 것만이 아닌, 지금 우리와도 함께하는 것이기에, 우리가 그분들의 시각을 단언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최초의 조상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시기에 이후의 조상신들은 그 유전 인자등으로 스스로 상처받았던 영혼들일 수 있는데, 그래서 가톨릭 신자들은 조상들에게 드리는 제사도 조상들의 영혼을 초대하여 주님께 함께 기도하는 미사성제를 지향하여야 합니다.

 

   ○ 나만이 정통이고 너희는 이단이다. 오직 내가 믿는 하느님만이, 신만이 절대적이라는 주장하기보다는 다양한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함이 옳다고 봅니다(사기성 짙은 사이비 종교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종교와 많은 대화를 하셨던 故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업적 또한 높이 평가받는것이 아닐까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는 이웃을 사랑하라 외치면서도 가톨릭의 교리를 따르는 우리 안의 이웃만을 인정합니다.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사는 되풀이되어선 안될 일이지만 피흘림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종파간의 애착심을 말하는군요. 가톨릭은 성모 엄마가 살아 계시기에 이처럼 상호 부드럽게 훈화 말씀도 가능한 것입니다. 지혜는 단점을 장점화로 이끌도록 성령으로 오시는 것이기에 성스러운 영혼은 아쉬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나 아닌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 주장으로 하신 것이 아니란 이야기지요. 당신의 움직이는 침묵(사랑이 담긴 말만을 하시는)등의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녀에게 엄위하심을 드러내어 주셨으며 그 신성을 인성으로 이끌어 주심인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고 닮고 따르면 그만인 것입니다.

 

과학처럼 보고,듣고,믿으려 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써의 무한한 사랑의 정신을 향한 믿고,듣고,보는 여정과 매우 유사하겠지만 유한한 한계성에 직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이 가톨릭의 교리만을 따르는 우리만을 인정한다구요? 천만의 말씀이랍니다. 가톨릭은 이미 모든 보편적인 성인의 통공을 함께 믿고 있기에 가장 인기있는 종교이기도 하며 그러다보니 이타성의 본질을 잊고 자신의 평화만을 구가하려는 우리들의 그러한 죄들이 양산되기도 하는데 의인은 더이상 주님이 필요없기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을 바라보면 될 것입니다.

 

   ○ 저는 근엄한 모습으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는 사제보다 교회라는 건물에는 열심히 다니지만 내 옆의 다른 이웃에게는 차갑기만한 신자들보다 비록 교회를 통해 하느님을 접하진 않고 살더라도 사회안에서 자기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따뜻하게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는 사람들이 더 존경스럽게 느껴지고

저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역시 좋은 지적인듯 합니다. 결국은 형제님의 그 말씀이 그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평신자들이 신부님이 강론이 길면 지루하다 야단이고, 짧으면 공부 안했다 야단이기도 한데, 신부님들이 뒷짐을 쥐고 계시는 것 같아도 쉬지 못하는 예수님의 그것을 닮으려고 무던히도 애쓰시고, 또한 때때로 지쳐 계심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봉성체를 영하며 그 환자가 선종할 때 가래가 묻은 성체를 뱉는다면 역시 그의 영혼을 위하여 사제가 대신 성체를 영해야 하는 희생의 봉사등도 베풀어주시는데 아무튼 형제님도 단편적으로 보지 마시고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은수자로서의 고초를 겪으실 너와 나의 예수님을 배알하시고 따라야 할줄 믿습니다.  

 

그러다 보면 성당은 건물이 아니요, 하늘의 배였슴을 묵상을 통하여 실감하게 될 것이고, 침묵을 수련함으로써 고통을 수반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의 차갑게도 보일 수 있는 모습이 또한 거울속의 나임으로 매일 단정함을 향하여도 새롭게 매진하게 되겠지요.

 

   ○ 모든 사제와 신자들을 매도하려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일이든 모두가 나쁘다고 할수 없는 것처럼 모두가 뜻대로 올바르다고는 할수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전체를 대변 하는것도 아니고

좋고 나쁜면 모두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종교라는 울타리를 잠시 벗어나고자 합니다. 마치 여행을 떠나는 심정으로 말입니다. 사람은 여행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깨달은 후에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종교를 떠나 세상을 돌아보고 살아가는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 어느 젊은 신학생이 수련생활이 힘들어 아버지 신부님께 님과 같은 심성을 토로하자 '그래...도망가고 싶으면 실컷 도망가봐...'하시는 말씀과 비슷한 것 같군요. 세상을 구경하고 싶으시다면 그리 하시되, 인간의 깨달음으로 얻는 윤회사상과 하느님 말씀의 계시를 얻는 강생부활 사상의 난형, 난제 및 상호 조화사상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 손바닥과 하느님 손바닥과 나의 손바닥이 보이건데 자비와 사랑이신 그분께 의탁하면서 분심을 때때로 손바닥에 올려놓고 이잡듯 박수를 치며 훅!~ 불어보십시오. 분심도 알고보면 별거 아닌것입니다.

 

모든 종교와 예술의 끝도 하나요. 어느 철학자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여행에 머무는 철학자는 아무리 잘해야 철학자일 수 밖에 없으며 세상속에서 가장 사랑받던 첫 아내 돈도 당신이 죽었을 때 콧배기도 안 비출 것이요, 대충 사랑하였던 가족도 문턱밖에 배웅을 못하지만, 평소 그렇게 소박을 받았던 영혼은 비로소 영원히 당신과 하나되어 해후하게 될 것입니다. 이왕이면 성스러운 영혼이신 성령을 믿으십시오.

 

이에 혹여 철학자적인 사관으로서 희생과 봉사의 그것이 결여된 쉽고 편안한 삶을 지향하는 여정을 꿈꾸신다면 가급적 우주의 수만 광년을 지나는 은하수, 또 은하수만큼이나 무수한 은하계조차 거룩한 사랑으로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세상을 구경하였노라고는 말 못할 것입니다. 이 때의 나 자신이 밀알만큼만 보여도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비대하여 보입니다.

 

다만 자기 가족만 보살피는 개미형 삶과 이웃의 아픔도 공유하는 꿀벌형 삶과 음습한 곳에서 암약하는 거미형 삶중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 세속인데, 어디를 가든 성령께 의탁하는 성자로써 성부의 사랑을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러한 꿀벌의 삶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양분을 저장시켜주시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현재까지의 형제님의 고민은 그 내용으로 보아 냉담을 하겠다는 엄포가 아니라 쉬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고백이기도 한데 아무튼 성사생활을 멀리하게 만드는 벽이 보이고 있습니다.

 

   ○ 어머님은 제가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니 온통 신경이 곤두서 계십니다. 그런 어머님이 염려스러워 수년동안 어머님 뜻대로 미사참례는 해왔지만 어머님 뜻대로 살수만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주일 저녁도 저로 인해 맘이 많이 상하신 어머님을 보는 것이 안타깝고 저 또한 맘이 많이 아픕니다.

 

답답한 마음에 이곳을 찾아 글을 남겨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도움되는 말씀을 남겨 주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음...형제님이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는 효성이 지극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전입가경으로 형제님의 글이 어느 수도중인 수련자의 고백으로 다가옴은 왜일까요? 간단히 저의 신앙체험담으로 대답을 대신하겠습니다.

 

80년대 말의 일이었군요. 연중 300일 이상을 그녀의 아파트를 경유하며 저역시 모태로써 냉담을 걷던중에 하루는 사람들이 내리지 않는 양화대교 입구에서 할머니 한분이 내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이럴때 그것을 흘려보내기 일수이겠지만 '제눈에 안경'이라고 '저 할머니께서 자살하시려 내리는 것이라면 내가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된다'며 무언가에 이끌려 따라 내리게 됩니다.

 

할머니로서 어린이와 같으신 눈이셨기에 '저...할머니...어디 가시는지요?...'의 질문에 사람이 걷지 아니하는 양화대교 가운데로 우리가 향하기전, 할머니께서는 질문자의 선의를 그 한마디로도 알아보시고 몹시 고마워하시며 손녀의 다음날 대학입시 치성을 위해 내렸노라고 말씀해주십니다.

 

다음날 그는 여전히 퇴근후 때로는 소나기를 맞던 여정속에 양화대교조차도 도보 귀가 순례가 이어집니다.

 

이윽고 그의 눈에 문득 비추어진 한강물이 도시의 야경을 머금고 매우 아름다운 물침대라 속삭이며 그를 자살충동으로 유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납니다. 도시의 매연을 뚫고 수많은 별들이 보인 것입니다.

 

이후 그는 군에서 삼년간 하루 세시간도 못자며 수많은 죽음의 유혹에도 힙쌓이는 냉담속 고초속에서의 작전 서기병으로서의 메모력을 얻었기에 7일만에 초등 9살때부터 익명의 신자셨던 아버지의 선종으로 하여금 시작된 오랜 냉담의 옷을 벗게 됩니다.

 

이날의 성모성심 본당은 막 성전 건립중이라 지하실 초라한 장소에 모셔진 성체앞에서 정 이사벨라 원장 수녀님께서는 때마침 밤 열시경에 이르렀기에 옆의 교우들도 없이 홀로 기도하고 계십니다.

 

도민고는 조배중이신 이사벨라 수녀님께 '냉담을 그만하고 싶다며 그간의 슬픔을' 하소연 합니다. 이사벨라 수녀님께서는 교황 요한바오로 2세 성하께서 주신 당신의 묵주를 도민고의 손에 쥐어주십니다.

 

다음날 미리내 천주성삼본당 축성미사 때 이사벨라 수녀님은 도민고의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서도 뒷자리에서 무언가 간절히 기도하여 주십니다.

 

이시기 80년대 마지막해의 성탄 성야 때 도민고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가장 맞기 힘들었던 고독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외사랑(짝사랑은 자기만 알고 있는 일방적인 사랑, 외사랑은 만인이 아는 일방적인 사랑)하는 로사가 보고파 선데이도 아닌 연데이 신자로써 화곡본동 성당을 찾은 도민고는 콩나물 시루의 신자들 뒷모습만 보며 신부님의 제대를 볼 수 없는 가운데 다만 신부님의 음성을 조금이나마 듣습니다.

 

인파에 밀려 다시 세상이라는 성당문으로 떠밀려 나오려는데 문득 고개를 돌리자 로사 자매의 모녀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로써 등진 모습을 보이는 그 힘들었던 로사의 모녀가 이날의 어둠속으로 사라짐으로써 그의 일생 일대의 가장 고독했던 추억이 생성됩니다.

 

이후 도민고는 안타깝게도 정 이사벨라 수녀님이 주신 귀한 묵주를 한바퀴도 돌리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도민고에게 앞으로 묵주기도 열심히 하라시는 경고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사동(은평구) 성당 초대 꾸르실료 부간사로써 뽑혀서 이후 1년여가 흘러 신설본당내의 첫번째 2차 교육자로 피정을 마치고 돌아온 날 새로운 꾸르실리스따 파견식이 있는 성목요일이기에 도민고는 신명나고 기쁜 마음으로 아내 실비아의 도움을 얻어 25시간의 봉사를 합니다. 이날은 신사동 성당 성가대의 일원으로써 시튼 피정의 집에서의 일일 피정도 있었는데 하루동안에 이러한 세가지 봉사를 겸함으로써 역시 매우 즐겁게 오전과 오후 모두를 성모님품에 안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갑자기 아내 실비아가 수술을 받게 됩니다.

 

이로써 도민고는 성금요일 태어난 첫 아들 태성이(베드로)와 첫 딸 연희(제노베파)와 함께 일생 일대의 첫 기도를 도티병원(녹번동 소년의 집내에 있슴, 마리아 수도회 운영) 경당에서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쯤 셋째 아들의 집에 마실오신 요안나 어머니와 함께 성령강림 주보의 녹번성당 미사에 참례하게 됩니다.

 

미사전 성체조배를 하려는데 이날따라 뒷좌석의 노인께서 작은 기도를 바치는데 그 소리가 몹시 시끄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도민고의 귀가 청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어머니와 함께 집중할 수 있었던 이날의 미사 은사는 결국 '하느님 감사합니다'의 파견 인사후 돌아서려는데 주님께서 도민고를 따로 부르는 사건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것은 기억 상실 환자가 기억에서 깨어나듯 그동안의 인간적 상처의 기억들을 모조리 받아주시며 하느님께서 너를 쓰시고자 잃어버렸던 기억을 모두 일깨워주시는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슬라이드 음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듯 하는 작은 소리인지 기운인지와 함께 제대위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서는 도민고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도민고야...너를 이곳으로 초대한 이는 로사와 로사의 어머니란다..."

 

이로써 여지껏 살아오면서 가장 슬프고 고독으로 남았던 그것이 완전 역전의 기쁨의 순간으로 다가오는 일생 일대의 환희의 순간으로 뒤바뀝니다.

 

그리고 물침대 사건의 그날 별들의 우뢰와 같은 말발굽의 기도는 우리 가톨릭의 구원송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 저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구하소서..."

 

이날은 남과 북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주석이 악수한 날이기도 하여 기억하기 좋은 날이기도 합니다.

 

그로부터 도민고는 꾸르실료 냉담자들도 참으로 불쌍하고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하며 전국 꾸르실료 대회가 열리면 모조리 한꺼번에 주님 무덤가의 그 은총으로 꽁꽁묶어 이끌겠다며 성령발로써 자! 가자!(울뜨레야)라고 외치겠다는 칼을 갈기도 합니다.  

 

오늘에 이르러 관면혼인 배우자였던 아내 실비아는 남편인 도민고가 바라던 그 소망을 대신 이룬 가운데 노숙자들의 똥,오줌을 갈아주는 힘든일을 취하며 마리아 수녀회에서 국가위탁으로 운영하는 사회복지 시설에서 월급도 잘 받고, 요즘은 사내 직원들 성서공부등의 참으로 부러운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아내는 바보처럼 우직하기에 이리 써주셨고 여기 도민고는 똑똑하기 때문에 여전히 주께서는 눈치만 살피는것이 아닌가 하는 분심도 들기도 합니다. 기도 기억하여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그런데 도민고는 당시 냉담중의 유일한 위로 수단이었던 해바라기의 노래를 하루 20시간 가량 반복 청취타가 최근에는 우연히 서울그레고리오성가단 총무로써 절두산 순교성지(대원군 시절때는 양화진 : 양화 나루터)에서의 주일 미사곡을 솔로로써 봉송하는 영광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덕분에 세배의 기도인 성가로 하여금 주님 은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기쁨을 잇기도 합니다.

 

도민고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돈줄과 연줄에 타협치 않으며 선교직을 쟁취 할 것입니다.

 

어린시절 요왕형과 함께 신문을 팔 때, 다방에 죽치고 앉아있던 빈둥 빈둥형의 그 어른들이 어린 우리들의 신문을 빼앗아 보고는 신문값 4원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다 봤어!~ 임마!~'라 할 때 이에 전혀 대응책도 없이 그들로 인하여 자정을 넘겨야 했고 어둠속에서 늘 기다려주시는 요안나 어머니의 품에 안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린시절은 어린이의 마음이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어른의 마음으로 성화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또한 당시의 2원이 남던 신문보다 10원의 큰 이익이 남는것이 푸른 비닐 우산이었기에 지하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어른들에게 그것은 날개돋힌듯 팔렸고 이에 우리 형제는 비가 오는날이면 환호성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지하도에서는 수많은 나를 닮은 선교대상이 쏟아져 나오기도 합니다.

 

안개꽃을 한아름 들고 로사는 마지막날 도민고에게 이러한 질문을 주었습니다.

 

도민고씨, 안개꽃말을 아시나요?

 

훗날 안개꽃말은 물망초의 '나를 잊지 마세요'와 비슷한 '과거를 잊지 마세요'였슴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민고가 물하(河)가였는데 당시 7일간의 여정을 통하여 냉담을 벗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로써 강물의 물침대 사건 다음날, 회사의 하얀 책상위에는 누군가 전해준 진한 흙색의 가톨릭 새 신자 수첩이 놓여져 있었고 이에 메모력을 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하기(5점), 듣기(10점), 쓰기(15점), 외우기(100점), 전하기(200점), 실천하기(300점) <--- 완전하고 안전한 300배 600배의 은총과 이자가 주어지는 하늘나라 통장입니다. 메모해 두십시오.

 

당시 회사에는 로사를 포함하여 하마리아 자매등 세사람의 가톨릭 신자 자매가 있었는데, 이 수첩을 모두가 자기가 올려놓은 것이 아니라 하였는데 그 출처의 미스테리를 새까맣게 잊고 살던 도민고에게 10년뒤의 미사후 주님께서 그 출처를 밝혀주신 것이었습니다.

 

결국 300일이 넘도록 그녀의 아파트를 고독으로 지나야 했던 가톨릭 냉담자를 위하여 로사의 어머니가 로사를 통하여 '새신자 수첩'을 데스크탑에 올려주셨슴을 이날의 사적계시로서 직감하게 되었는데, 아무튼 새까맣게 잊혀졌던 과거의 사건이 왜 이날 남,북 정상이 악수한 싯점에 섬광처럼 스쳐갔는지도 그저 신비롭고 거룩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훗날 묵주기도와 스카플라를 성모자로부터 전수받으신, 선교의 어려움을 당할 때의 '관상하라! 그리고 설파하라'의 말씀의 수호자이신 성 도민고(도미니꼬와 같은 성인, 교회의 두 기둥이신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처럼 성프라치스꼬 수도회와 함께 교회의 선교자로 알려진 도미니꼬 수도회는 전세계 어디서나 반드시 도시와 자연의 경계선상에 위치하고 있슴)께서 1215년 첫 서원자를 받아들이시고 리마의 성녀 로사께서도 가입하심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겠으며 도민고 또한 약현성당에서 어머니의 강보에 쌓여 61년 8월 15일의 성모몽소승천 대축일을 3일 앞둔 12일 태어나 15일뒤 영세를 받은것 또한 우리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하느님의 걸작품으로써의 사적계시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성금요일 태어난 아들이 클泰자 항렬에 성인 聖자의 이름을 얻음에 아비로서 부러움을 갖기도 하였으나 몇년후 아련한 옛추억을 더듬으며 부슬비속에 성가를 봉송하며 걷는 이사람의 이름인 하경호속에서도 성부와 성모께서 하하하 경사롭다 호호호의 성령의 위로를 더하셨기에 아들만 부러워하는 아비의 부끄러움을 일깨워 주시기도 합니다.

 

이날은 묵주기도의 모후를 주보로써 모시는 정릉본당에 어떠한 지원서를 내며 모교쪽으로 걸어 올라오던 여정이었군요.

 

그리고 본당의 신부님께 어느날 음식점에서 나는 하느님과 종씨인 '하가'라 하였다가 자칫 주모죄에 해당한다는 엄위한 꾸중을 듣기도 하였는데 내심 반감도 가졌으나 신부님의 성화된 삶으로 하여금 그것을 들어주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도민고가 365일간 로사를 찰나의 한순간도 서운커나 미워한 적도 없슴은 기적입니다. 당시 흔하던 겨울나그네라는 카페에서 문 열때부터 문 닫을 때까지 고독속에 그리움안고 기다림의 여정이 이루어졌는데도 말씀이지요.

 

두손 호주머니에 넣고 소나기를 맞고 걸으면 더 편하고 아늑하였고, 겨울 함박눈에 온 차량조차 발이 묶이어도 그 틈에서도 도보 순례하는 내가 덜 심심해서 좋았던 그 시절이었는데,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녀가 서운할라 치면 재빨리 머리를 털 수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단순한 기적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순시기의 하느님께서는 과연 우리에게 이조차 비견할 수 없는 그 크신 사랑으로 어떠한 관심을 가져주실까요?

 

로사는 아래와 같은 말을 남기며 '이왕이면 시작한 일 365일을 채운다며 마지막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가 이윽고 유독 편안한 표정으로 다가온 도민고와 함께 마지막 날을 장식하게 됩니다.

 

'엄마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을 얻으라 하지만, 로사는 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얻고 싶군요...'

 

이 또한 형제님의 물음표와도 유사한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는 주님을 구하라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구하고 싶군요...'

 

 

좋은아침 02)351-4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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