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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1866]부자가 불행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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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몬 [simonhan] 쪽지 캡슐

2003-07-08 ㅣ No.1867

주님의 평화!

 

최 인숙님,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십자가에 대하여 참고가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이번의 질문은 루가복음 6장의 말씀 중에서 부자가 죄인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하시는 데 이 복음말씀의 의의는 가난한 사람의 행복과 부유한 사람의 불행에 관한 하느님의 뜻깊은 어떤 선포의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부자로 산 사람이 자기만 즐기고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면서 나눔의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넘어갈 때에는 상황이 역전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합니다.

 

이것은 루가복음 6장 24절에서 보듯이 루가의 의도는 독자들에게 저 세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며 그 구원의 길이란 회개와 믿음이란 것입니다. 이 복음 말씀은 부자들과 가진 자들에 대한 경고이자 부정부패를 일삼는 자들에 대한 질책이고 못가진 자들, 헐벗은 자들, 소외된 자들에 대한 축복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나 재물에 눈이 어두워 자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기주의에 사로잡힌 현대인의 부자들을 겨냥한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 루가복음 16장 19~31의 말씀에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자가 어떻게 부를 이룩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자기가 이룩한 부를 즐기면서 온갖 사치와 향락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 부자의 쾌락은 자기 곁에서 죽어가는 라자로를 잊어버리게 한 것입니다. 라자로는 남루한 옷에다가 몸에 온갖 상처와 종기가 난 그야말로 거지, 그 자체였습니다. 개들이 상처를 핥았던 가장 비참한 그는 부자가 자신의 손을 씻기 위해 닦은 빵 부스러기로 겨우 연명한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자나 라자로나 모두 죽어서 그 상황이 바뀌게 되어,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채 천국으로, 부자는 저주받은 지옥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이 같은 극적 전환이 전하는 참된 의미는 하느님께서는 자기만 아는 돼지 같은 부자의 편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당한 라자로의 편이라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곧 가난한 자를 먼저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더라도 웃음과 여유를 갖고 사는 삶입니다. 또한 더 어렵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려는 마음, 곧 재물에 눈이 어두워 이웃과 형제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며 이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태도입니다.

 

 

이에 대하여 이 성우 신부님께서는 강론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질문에 대하여 함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묻고 싶어한다.하느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하느님 나라는 어떤 형태의 나라입니까? 어느 곳입니까? 언제 옵니까? 그러나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는 "하느님 나라는 이것이다"라고 규정하지 않았고,"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다"라고 비유로 설명하신다.왜 그러셨을까? 그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미지의 것은 비유로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빛을 볼 수 없는 장님에게 빛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장님이 알고 있는 어떤 무엇,빛과 유사한 무엇에 비유하는 길뿐이다.국화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장미를 알려주는 길은 ’장미는 국화와 비슷하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하느님 나라는 직접적으로 설명될 수 없다.하느님 나라 안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고 들어가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아는 어떤 상징을 빌어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을 수 없다. 그렇게 묻는다면 너무 무리한 질문이다.우리는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을 뿐이다.분명한 것은 하느님 나라는 볼 수 있고 확인 가능한 어떤 제도와 법,체제를 갖춘 외적인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다.그래서 하느님 나라는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어느 특정한 곳에 세워질 왕국도 아니며,시간을 의미하는 어느 특정한 연도에 도래할 통치체제도 아니다.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사실 하느님 나라는(이미) 여러분 가운데 있습니다"(루가 17,21).

 

하느님 나라는 이 다음에 언젠가(미래) 도래할 하느님이 통치하실 왕국이라는 사상은,지금 여기는 아니고 항상 다른 곳,다른 때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다.이처럼 하느님 나라가 ’세상종말’(인류 역사의 끝으로 이해된다)에,미래의 어느 때인가 도래할 왕국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은 아주 편해진다. 우리는 지금 삶의 결정을 내리지 않고 내일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삶을 내일로 유보하는 것보다 더 안일한 것은 없다.그래서 예수는 삶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은 불행하고(마태 24,45-51;루가 12,41-46), 어리석으니(마태 25,1-13) 늘 깨어 있으라(마르 13,33-37)고 당부하신다.

 

왜 우리는 삶을 늘 내일로 미루는가? 그것은 우리가 지금은, 지금 당장은 살기가 싫어서이다. 지금은 다른 할 일,충족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우리에게는 삶을 내일로 미룰 핑계와 이유가 항상 있다.그리고 그 핑계와 이유가 우리에게는 더 중요하게 보인다.우리는 아직 많은 것들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이 다음에 언젠가 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지만,지금 당장은 아니다.만일 우리가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 있다"라는 말을 듣는다 해도 우리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다. 해야 할 일이 많고 이루어야 할 꿈이 많고,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할 일이 있어서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못하고,’할 일이 없는이들’ 거리에서 방황하는 이들,거지,방랑자들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루가 14,15-24) 초대는 매일 매순간 온다.그러나 우리는 즐김과 행복과 축복을 미래로 유보함으로써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한다.자연의 아름다움과 오묘함을 즐기라고 하느님은 우리를 초대하신다.인간과의 만남을 즐기라고 초대하신다.

 

결국 하느님 나라의 비유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르 10,25)는 예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부자가 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나?왜 하느님과 맘몬(돈,며예,권력)을 동시에 섬길 수 없나?(마태 6,4;루가 16,13) 부자나 여러 가지 일에 바쁜 사람이 삶의 진수를 놓치는 이유는 무엇이고,가난한 사람이나 할 일이 없이 서성이는 사람이 삶이라는 잔치,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부자가 재물,명예,권력을 얻기 위해 가장 소중한 ’외동딸’을 악마에게 팔아넘기는 사람으로 묘사되는 동화가 있다.여기서 외동딸은 그 사람의 영혼을 상징한다.부자는 돈과 재물, 명예를 얻기 위해 가장 값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내팽개친 사람이다.그런 사람에게 시나 예술은 무의미하고 종교도 의미 없고 하느님도 의미 없다.그런 사람에게는 인간보다는 일이나 물건이 더 중요하다.어떤 일 때문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청을 거절하거나 물건을 손상했다고 사람을 무시하고 비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우리는 재물과 사랑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우리가 아직 계산적인 사고에 물들지 않았을 때,우리는 우정과 사랑 때문에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거나 바다의 파도를 보고 감동하기도 한다.떨어지는 단풍잎을 보고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친구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느라 저녁 내내 함께 고심하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잠 못 이루는 밤도 많다.음악에 취해 아무것도 못할 때도 있다.시를 읽느라 약속조차 잊기도 한다.

 

어른이 되어 계산적인,실용적인 생각을 갖게되면 그런 모든 것이 어렸을 때,현실을 몰랐을 때 가졌던 비실용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백해무익한 몽상적 낭만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래서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르 10,15)라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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