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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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 하느님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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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11.200.208.*]

2006-06-13 ㅣ No.4259

우리 인간의 선험적인 도덕률로는 '착한 이가 복을 받고 악한 이가 벌을 받아야 한다'(상선벌악)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현세를 살아가면서 경험한 바로는 오히려 착한 이가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고 악한 이가 잘 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물론 착한 이가 복을 받고 악한 이가 벌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데체 왜 이렇게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요?

 

사실 이 의문은 종교가 답을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현세에서 상선벌악의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만일 현세가 인간의 유일한 삶이라면 이 세상은 지극히 부당한 곳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 마음 속에 상선벌악의 도덕률이 선험적으로 있다는 것은 또한 몹시 부조리한 일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상선벌악의 도덕률이 진리라고 한다면 이 현세에서 그 정의가 구현될 수 없음으로 인해 심각한 모순이 발생합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무신론적인 방법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상선벌악이라는 도덕률이 진리가 아니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도덕률을 버리고도 우리가 제대로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예컨데 당신의 자녀에게 네 마음데로 살아라 도둑질을 하든 강도질을 하든 아무런 상관없다고 가르칠 수 있을까요?)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방법입니다.

 

현세만으로는 정의가 실현되지 않으므로 또 다른 삶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현세만으로는 정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만 현세를 넘어선 삶까지 포함하면 온전히 다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지요.

 

우리 그리스도교는 그 삶을 내세라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스도교의 내세는 하느님이 우리의 현세 삶을 평가해서 천국으로 혹은 지옥으로 보내기 위해서 마련해 두셨다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그 존재를 열렬히 바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현세에서 온갖 사악한 짓을 거리낌없이 저지른 이가 벌은 커녕 부유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편안하게 죽었다면 우리의 도덕률로는 그런 자를 위해서 죽은 뒤에 제발 지옥을 준비해 주시라고 요청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반대로 정말 남을 자신보다 더 위하고 착하게 살던 이가 가난에 찌들리고 온갖 병마에 시달리고 비참하게 죽었다면 이런 이를 위해서 반드시 죽은 뒤에 천국을 준비해 주시라고 요청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물론 이런 의문이 있습니다.

 

왜 하느님은 정의를 바로 이 현세에서 다 이루어 주시지 않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만일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면 아마도 우리 인류는 오래전에 모두 멸망했을 겁니다.

 

인류의 전 역사를 걸쳐서 인간이 저지른 온갖 극악한 악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정의로우시다면 이런 못되먹은 피조물을 굳이 살려 둘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한 방에 싹 쓸어버리고 새로 만드는 것이 낫지 않게습니까?

 

그러기에 우리가 감히 현세에서 정의가 온전히 실현되기를 바라는 건 스스로에게 하느님의 징벌을 불러내리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죄많고 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현세에서 그분의 징벌을 거두어서 내세로 미루어 두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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