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일 (월)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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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ias For Farinelli - Vivica Genaux - Rene Jacobs 2│클래식 성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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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8-11-16 ㅣ No.11893

Arias For Farinelli

파리넬리를 위한 아리아

Mezzo-Soprano: Vivica Genaux

Conductor: René Jacobs

       

Akademie Fur Alte Musik Berlin


Nicola Antonio Porpora 1686-1768

09. Added Aria In Artaserse By Johann Adolf Hasse: Or La Nube Procellosa

Johann Adolf Hasse 1699-1783

10. Artaserse: Per Questo Dolce Amplesso


- 200년을 기다려온 목소리
- 그라모폰 선정 음반
- 프랑스 하르모니아 문디 사상 최대 예약 판매 기록
- 르네 자코브 지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 알려진 대로, 헨델을 매료시켰고, 숱한 여인들을 실신시켰던 당대 최고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 파리넬리의 스승 포르포라를 포함하여 당대 작곡가들은 파리넬리를 위해 곡을 썼다. 듣는 이를 전율시키는 파리넬리를 위한 작품들인 만큼 성악의 화려한 기교와 숨이 끊어질 듯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곡들이 대부분이다. 파리넬리가 세상을 떠난 후 200년간 아무도 이 엄청난 능력을 요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다. '놀랍다, 놀랍다 해도 이렇게 놀라운 메조소프라노는 없었다'는 찬사를 받은 비비카 쥬노! 한마디로 전율이다. 그라모폰 선정 음반.

     

     

영화를 통해 너무나도 유명해진 파리넬리(1705-1782:거세된 남성 소프라노인 카스트라토 가수)에게 헌정된 작품들을 담은 이 앨범은 비비카 자신이 마치 파르넬리라도 된 듯이 감정에 몰입하여 형용하기 힘든 가창력을 뽐내고 있다.

파리넬리의 형인 리카르도 브로스키(Ricardo Broschi)가 작곡한 ‘Qual guerriero'를 위시하여 지아코멜리(Giacomelli)의 ’Mancare oh Dio mi sento', 'Quell' usignolo', 갈루피(Galuppi), 하쎄(Hasse) 등의 작품들이 비비카 쥬노의 매혹적인 노래로 새롭게 탄생하였고 르네 야콥스(Rene Jacobs)의 생동감 넘치는 오케스트레이션은 이 작품의 진가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이 노래를 듣기 위해 200년 이상이나 기다려야 했다! '파리넬리를 위한 아리아'

파리넬리의 아리아는 청중들을 전율시키기를 기대하고 작곡한 것들인 만큼 화려한 성악 장식들이 많고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파리넬리 사후 200년 이상 엄청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이 노래들을 부를 수가 없었으나, 이제 비비카 쥬노가 우리의 숙원을 풀어준다. '놀랍다, 놀랍다 해도 이렇게 놀라운 메조 소프라노는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당대 최고의 가수 비비카 쥬노!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 감전되어 눈도 못 뜨고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것 같다. 너무도 전율적이고 눈부시며 유려하기 때문이다.

* 그라모폰 에디터스 초이스 (이 달의 좋은 음반)
* 프랑스 하르모니아 문지 사상 최대 예약 주문

     

F. Farinelli:

성악가 파리넬리(본명 까를로 브로스키)는 굉장한 카스트라토였다. 모든 시대의 위대한 성악가 중 가장 위대한 성악가로써 많은 사람에 의해 생각되었다. 그의 능력은 3옥타브를 넘는 음역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는 30대 초반까지 오페라를 했으며 그의 시대의 수퍼스타였다.그는 스페인 왕의 궁전에서 일하다가 은퇴했는데, 몇몇 사람은 그가 매우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느꼈고 오페라에 있어 극심한 경쟁 분위기(오페라극장사이에)가 오페라 가수로서 은퇴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메따스따시오로 알려진 남자와 평생동안 우정을 유지했다고 알고 있다. 둘의 관계는 가장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다.메따스따시오는 시인이었고 둘은 서로를 잘 이해했다. 그들은 자주 서로를 쌍둥이라고 불렀는데, 파리넬리는 스페인에서 그가 있는 동안에 가난한 가정들을 위한 기금을 설립했다. 그것은 그가 매우 친철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 게 한다.그는 때때로 성직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형은 작곡가였던 리까르도 브로스키였다.1995년 흥행한 영화에서 그들 서로는 그들의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것으로 추측되어졌다. 이것은 역사적인 증거를 뒷받침했던 것이 아니며 또한 그의 동생의 거세의 책임을 리까르도가 졌다는 주장도 또한 그렇다. 비록 이것이 가능하더라도 까를로의 아버지가 시켰다는 것이 더 납득이 간다.리까르도의 오페라들 가장 유명한 곡들은 그의 동생이 노래하는 동안 점점 빛을 잃어가고 전설이 되었다. 만약 리까르도가 그의 동생에게 거세의 책임이 있었다면 이것은 아마도 충분한 벌이 아니었나싶다. 까를로의 영혼만이 확실하게 알겄이다. 책임이 있는지 없는지는..우리는 파리넬리가 매우 신앙심있는 사람이었다고 알고 있다. 기도를 하는데 있어 기초가 되는 그것으로 매일 기도했다.

아마 천주교에서 기도문이 있듯이 그것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됨. 그는 심지어 그가 은퇴한 후에 그의 집에 예배당마저 지었다고 했다.그는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친구들이나 방문객들이 요청을 할 때만 연주를 했다.그는 또한 결코 방문하는 젊은 카스트라토에게 연주하는 것에 대한 비령을 하지 않고 오직 그들이 그에게 요청할 때만 그렇게 했으며 그는 그때마다 그들을 만족시켜 주었다. 까를로는 너무 예의바르고 너무 친절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았던 것이라고 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거세된 남자 까를로 브로스키는 실로 성자 파리넬리였다.어떤 사람이 말하길 그는 그에 대해서 비통하게 생각했고 특히 그의 노년에 그랬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카스트라토의 경우 한 인생을 회고할 때에 다소 거세에 대해서 다루기 힘든 면이 있다. 그들이 가정을 가질 수 있었으면 가졌을 것이다. 까를로는 그의 재산을 그의 사촌에게 물려주었고 그의 종에게도 평생 먹고 살 분량의 돈을 남겨주었다. 비록 크진 않지만 그의 부동산은 가치가 있었다.불행히도 까를로는 그리 많은 카스트라티들같이 그의 생의 기록을 결코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발성, 생각, 감정, 꿈, 사랑, 절망, 슬플과 기쁨 같은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은 역사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우리는 결코 그들에 대한 것을 잊어버리면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 그들의 입지를 보호해줘야 한다. 심지어 그들이 그들이 죽은 지 수십년 동안 낮게 평가 되었어도 말이다. 현대에 카스트라티들을 위해 과거에 쓰여졌었던 오페라들과 아리아의 부활은 아주 드문 남성 소프라노에 의해 연주되고 있고, 또한 여성 소프라노와 카운터테너들에 의해서도 연주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역사를 보존하는데 있어서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오페라들은 모든 사람의 구미에 맞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관계로 해서 받아들여야만 한다.

 아름다운 이웃은 참마음 참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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