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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를라티 소나타 - Ivo Pogorelich│고대 바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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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8-12-09 ㅣ No.12100

Scarlatti Sonata - K.9 L.413 & K.159 L.104
스카를라티 소나타 - 포고렐리치
Domenico Scarlatti, 1685~1757
Ivo Pogorelić, piano
 
1. Sonata in D minor, K.9 - L.413 - Allegro moderato
2. Sonata in C major, K.159 - L.104 - Allegro
     
1. 소나타 D단조 L413
타우지히의 편곡(단 E 단조)에 의해 잘 알려져 있는 곡으로 일반적으로는 파스토랄레라는 통칭으로 알려져 있는데, 커크패트릭은 이 곡은 반드시 파스토랄레는 아니라고 하고있다. 첫머리의 2마디 동기는 약간 애조를 띠는데, 이에 이어지는 다른 2마디의 동기는 오히려 장조적이고 밝다. 이 주제는 확실히 전원적이고 무곡적인 느낌조차 있다. 12마디째부터를 병행조(F장조)에 의한 제2주제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4마디 뒤에는 여이게서 파생한 동형의 동기로 더욱 강조된다. 후반은 첫 머리 동기를 이용한 전개 부분이 병행조에 의해 시작되고, 여기에 으뜸조에서의 제2주제에 의한 짧은 발전이 이어진다. 정규의 제2주제의 재현은 경과구에 이어 나타나고, 이후는 제1부 후반의 충실한 재현이다. 제1주제의 재현은 없고 그 대신 짧은 전개부가 두어진 형태의 소타나이다. 즉 유형 A, 왼손에 있어서의 반행형분산화음이 교묘하게 사용되고 있다.
     

2. Sonata in C major, K.159 - L.104 - Allegro
     
2. 소나타 C장조 L104
짧지만 완전한 소타나 형식에 의하고 있으며 유형은 E. 1 - 25 마디가 제시부, 26 - 42 마디가 전개부, 이하 재현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으며 물론 제시부와 그 이하가 각각 반복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스카를라티에 이런 작품이 있다고 해서 그가 후대에 있어서의 소나타 형식을지향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커크패트릭의 의견은 경청해야 할 것이다.
제1주제는 6/8의 4번쨰 나오는 경쾌한 것으로 호른의 중주와 사용되어서 부드러운 데가 있다. 자우어는 스타카토를 지시했는데, 오히려 매끄러운 느낌을 가지게 하는 쪽이 적절하다.
제2주제는 딸림조(G장조)로 나타나 싱코퍼레이션의 리듬에 의한 상성부의 위쪽으로의 도약에 의하여, 하성부는 분산화음의 반행형을 써서 극히 동적이다.
전개부는  C단조로 시작하며 그 전개의 소재는 제1주제에 서 제2주제로의 경과부에서 사용해오고 있다. 재현부는 단축되었는데, 제1, 제2주제 모두 원조로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주제의 성격적 대비감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으나 전개부에서의 조성 변화의 교묘함, 양주제의 적절한 재현, 코다의 부가 등 여러 가지 점에서 허실 없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극히 완벽하다고 느껴진다.
     
     
스카를라티 건반악기 작품에 관하여 - 글 김재미(피아니스트)
바로크시대 건반음악사에 있어서 바흐 이외에 동시대의 또 다른 건반음악 작곡가를 꼽으라면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의 도메니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바흐, 헨델과 같은 연도인 1685년에 태어났으며 당대의 유명한 오페라 작곡가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Alessandro Scarlatti)가 아버지였고, 이태리 출생이지만 1729년 이후 생의 후반부를 마리아 바바라 여왕의 음악교육을 위해 스페인에서 보내면서 대부분의 그의 작품에는 스페인의 영향을 보여준다.
스카를라티 소나타의 특징
스카를라티는 550곡 이상의 건반악기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그의 소나타가 피아노 독주곡으로 나오는데 이는 피아니스트에게나 오늘날의 청중에게나 즐거운 일이지만 본래는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화려한 음향, 과감한 전조, 조성의 선택 등이 하프시코드의 서로 다른 음역에서 잘 어울린다는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의 설명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카를라티 에디션은 각 소나타를 독립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부 학계에서는 이들 소나타를 당시의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관례처럼 짝지어 연주하도록 의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하나가 장조이면 나머지 것은 단조로, 혹은 둘다 동일 으뜸음조로 쌍을 이루기도 한다. 대개 모든 스카를라티 소나타는 두 부분(Binary form)으로 된 단악장(one movement) 소나타로 되어있다. 각 부분은 연주자의 요구에 따라 반복할 수 있으며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단일주제로 되어있다. 그러나 때로는 주제가 2개 혹은 3개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후에 나타나는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의 태동이 되었다.
스카를라티 소나타 주제의 특성에는 짧고 간결하면서도 괄목할 만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주제는 전개과정에서 어떤 화성적 색채와 결합하여도 결코 왜곡되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우아함으로 주제의 선명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소나타에서 즐겨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양손교차(crossing of hands), 옥타브를 넘는 넓은 음역의 도약, 화려한 음향을 내는 연속3도, 아르페지오적 베이스음형, 에코식 반향기법, 주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음 등이 그것이다. 이는 스카를라티가 하프시코드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는 그가 오랜 세월 지내왔던 스페인의 영향을 보여주는데, 빠른 템포의 춤곡성격을 나타낸다든지 반복음의 사용을 즐기며 기타의 현을 훑는 듯한 Guitar strumming, 아르페지오적 분산화음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스페인의 기타음악과 플라멩고 노래와 춤, 또는 Zapateado나 Polo 같은 스페인 민속춤을 연상시키는 효과기법이라 생각된다. 이외에도 짧은 앞꾸밈음(acciaccatura), 혹은 불협화음을 매우 적절히 사용하여 곡의 효과를 더해주기도 하고 주제를 건반악기 모든 음역에 걸쳐 re-echo시키면서 하나의 fughetta처럼 느껴지듯이 대위적 화려함을 연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외에도 때로는 대조적 성격으로 유연하고 포근한 선율과 화성으로 독특한 우아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수많은 그외 소나타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특별히 L.104(K.159), L.465(K.96), L.39(K.249), L.305(K.251) 등에 뚜렷이 표현됐다. 참고로 스카를라티 소나타의 작품번호에는 Kirkpatrick번호인 K.번호와 Longo번호인 L.시리즈가 있는데 Longo는 수많은 소나타 작품을 그의 고유한 방식으로 조성에 따라 Cantabile style, Dance style 등의 그룹으로 만들어 분류하기도 했다.
K.54, K.118 소나타에서는 작곡자의 trade-mark라 할 수 있는 양손교차기법이 특별히 더 잘 나타나 있어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나 즐거움을 준다. K.365에는 ‘jota’혹은 ‘folia’ 같은 스페인 춤곡이 캐스터네츠 리듬에 의해 표현되는 듯 하다. 또한 그는 다양한 악기의 음색을 건반악기에 연출하고자 했는데 K.487은 그 예로서 종소리와 기타를 연상시킨다. K.491은 트럼펫과 드럼이 행진곡을 연주하는 듯 생동감 있는 리듬을 연출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스케일과 반복음의 사용은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크의 시대적 환경에 따라 그의 작품에도 fugato나 토카타적인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당시 건반악기에 유행하던 베이스 파트의 continuo, figured bass뿐 아니라 양손의 고른 테크닉의 분배와 음악적 중요성을 부여한 것도 괄목할 만하다. 이것은 K.503, K.54에 잘 나타난다. 또한 급격한 템포의 변화, 도약하듯 사용한 연속적인 옥타브의 두들김 같은 연속적인 16분음표의 빠른 부분들이 급작스럽게 폭발적인 화음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 급격한 다이내믹의 변화, 독특한 리듬의 모티브 등은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작품 이전에 바로크시대부터 그들의 작품을 미리 맛보는 듯한 신선함과 건반악기의 실험정신을 느끼게 해준다.
     
     
Domenico Scarlatti 도메니코 스칼라티 1685~1757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열 명의 아들 중 6번째 아들. 그의 대모는 총독부인이었으며, 1701년 그는 오르간 주자 겸 작곡가가 되었다. 1702년 아버지와 함께 토스카나의 궁정을 방문했고 나폴리에 돌아온 후 곧 계속해왔던 3편의 오페라 옥좌에 돌아온 오타비아 L'Ottavia ristituita al trono(1703), 주스티노 Il Giustino(1703), 이레네 L'Irene(1704)를 작곡했다. 1705년 알레산드로는 페르난도 데 메디치 앞으로 다음과 같은 추천장과 함께 도메니코를 베네치아로 보냈다. 이 아이는 날개 달린 독수리입니다. 둥지 속에 가두어 둘 수 없습니다. 그가 날아가지 못하게 할 권한이 내게는 없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그는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밑에서 공부했는데, 그를 통해서 프레스코발디의 예술에 인도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1709년부터 1719년에 걸쳐서는 로마에서 지내면서 헨델을 만났다. 도메니코는 이때 전설적인 경연을 하여 오르간에서는 헨델이, 쳄발로에서는 도메니코가 승리했다. 또 그곳에서는 약 20년 후에 그의 초기 오페라를 런던에서 보급시키기 위해 많은 협력을 하게 되는 영국의 음악가 토머스 로진그레이브도 만나게 된다. 우선 그는 1714년까지 망명한 폴란드 여왕의 예배당 악장으로 있었으며 1713년 12월부터 바티칸의 줄리아 예배당에서 일하게 되었다. 1714년 폴란드 여왕이 로마에서 떠나자 그는 포르투갈 대사인 데 폰테스 De Fontes의 예배당 악장이 되었다. 미제레레 G조와 10성의 장려한 스타바트 마테르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때에 작곡한 것으로는 이밖에도 칸타타와 수많은 오페라가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톨로메오 Tolomeo(1711), 오를란도 Orlando(1711), 아울리드의 이피게니아 Ifigenia in Aulide(1713), 타우리드의 이피게니아 Ifigenia in Tauride(1713), 암블레토 Ambleto(1715), 인테르메쪼 디린디나 Dirindina(1715) 등이 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는 베레니체 Berenice(1718)이다.
1719년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평생의 대전환기가 찾아온다. 그 해 그는 포르투갈 국왕 조앙 5세의 예배당 악장으로서 리스본으로 옮겨 갔다. 오랫동안 1719년에 스카를라티가 영국으로 건너간 것으로 믿어왔으나 랠프 커크패트릭*은 그것이 사실무근이라고 했고, 리스본으로의 이주가 그때까지 생각했었던 것보다 수년 앞섰다는 것이 사실임을 밝혔다. 리스본에서 스카를라티는 국왕의 동생 돈 안토니오 Don Antonio와 특히 왕녀 마리아 바르바라 Maria Barbara의 음악교육을 담당했다. 그의 소나타의 대부분은 그녀를 위해서 작곡한 것이다. 그가 이탈리아에 돌아온 것은 1724년(로마), 1725년(나폴리, 이때가 아버지와 재회한 마지막이 된다), 그리고 1728년(이때 로마에서 첫번째 아내 마리아 카탈리나 젠틸리 Maria Catalina Gentili와 결혼했다) 등 세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 차례의 여행을 제외한다면 그는 말년의 36년간 이베리아반도를 떠난 적이 없었다.
1728년에 포르투갈 왕녀 마리아 바르바라는 스페인 왕, 후의 페르디난도 6세와 결혼했다. 도메니코는 그녀를 따라 마드리드에 갔고 그곳에서 살았다. 이때부터 그는 최후의 작품이라고 추정되는 소프라노와 현악기를 위한 살베 레지나 외에 쳄발로곡밖에는 작곡하지 않았다. 1738년 포르투갈의 조앙 5세로부터 산티아고 기사훈장을 받은 그는 그 답례로 왕에게 유명한 쳄발로 연습곡집을 헌정했다. 같은 해 런던에서 출판된 이 곡들은 커크패트릭에 의해서 붙여진 작품번호 중 처음 30개의 소나타이다. 1739년 아내가 죽자 1742년에 재혼했으며 9명의 아들 중 4명만 살아남았으나 음악가가 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스카를라티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에는 아버지가 지배하고 있었던 나폴리파 오페라 분야의 보통 작곡가 한 사람에 불과했고, 이 시기에는 기악 앙상블을 위한 17곡의 신포니아를 작곡했다. 포르투갈로 떠난 것이 그를 오페라의 세계에서 해방했고, 자기 자신의 체험을 축적시킴으로써 이것을 위해서 그가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쳄발로 소나타를 발견하게 했다. 바흐, 헨델과 같은 해에 태어났고 라모보다 두 살 밑인 스카를라티는 사실상 모든 시대를 통한 쳄발로의 대가이다. 연습곡집의 서문은 스카를라티의 것으로 남아있는 2개의 텍스트의 하나인 만큼 다음에 인용해 두겠다. 독자여, 여러분이 〈애호가〉이든 전문가이든 이 곡에서 어떤 심오한 가르침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쳄발로의 장엄성에 친숙해지기 위한 예술을 기대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출판하게 된 것은 이익을 위한 것도 야심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순종하는 마음에서일 뿐입니다. 이 곡이 귀하의 마음에 들었으리라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른 주문에 대한 것보다 쉽고 보다 변화에 찬 상냥한 양식으로 귀하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대 비판적이기보다 인간적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당신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입니다. 손의 위치에 관해서는 D는 오른손을, M은 왼손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커크패트릭이 본 스카를라티의 555곡의 소나타(이 가운데 미완성이거나 또는 진정으로 그의 작품인지 의심되는 것은 10곡이 채 안 된다)의 자필보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작곡자의 생전에 출판된 것은 그 수가 매우 적으며, 당시의 거의 모든 판은 영어판으로서 모두 스카를라티가 직접 서명한 유일한 출판, 즉 1738년의 30곡의 〈연습곡〉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1739년에 토머스 로진그레이브가 12곡을 더하여 모두 42곡이 되었다. 1742년 암스테르담에서 연습곡집의 신판이 나왔고 또 1741년부터 1746년에 걸쳐서는 파리에서 지극히 한정된 수의 몇 곡의 소나타가 간행되었다. 19세기 초 스카를라티가 에피소드와는 다른 어떤 흔적을 남겼을 당시 이탈리아 유일의 작곡가 무치오 클레멘티는 영국에서 스카를라티의 쳄발로 또는 피아노 포르테를 위한 걸작 Scarlatti's Chefs d'oeuvre, for the Harpsichord or Pianoforte이라는 작품집을 출판했다. 또 1839년에는 체르니가 200곡의 소나타를 출판했는데, 이것은 손가락 연습을 하는데 유용한 연습곡으로 간주된, 당시의 취미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1906년이 되어서야 겨우 최초의 전집이 나왔다. 알레산드로 롱고의 손에 의한 것으로 총 544곡의 소나타가 조성마다 〈조곡〉의 형태로 그룹지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작곡된 시기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지극히 자의적인 것이었다. 롱고판은 후기 낭만파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권위를 지켜왔다. 그가 붙인 작품번호는 커크패트릭에 의한 것이 나올 때까지 유효했었다. 커크패트릭의 작품번호에 기초한 전집은 1970년대에 케네스 길버트*에 의해 실현되었다. 때때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 작곡 연대순으로 분류를 하기 위해서 커크패트릭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카를라티의 기본적인 자료에서 도움을 얻었다. 주로 1742년(1752년의 가능성도 있다)부터 1757년 사이에 병행해서 옮겨 기록한 마리아 바르바라가 소지했던 각기 15권으로 이루어진 두 그룹의 수고보에 의한 것이다. 그 중 하나(총 496곡의 소나타를 수록한 I에서 XIII까지의 번호가 있는 13권과 번호가 없는 2권)는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고, 다른 하나(총 463곡의 소나타를 수록한 15권)는 파르마의 왕실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원래는 번호가 없었지만 커크패트릭이 XIV와 XV의 번호를 붙인 베네치아의 두 권은 각기 1742년과 1749년에 카피되었다. 거기에는 1738년의 30곡의 〈연습곡〉을 비롯하여 가장 오래된 소나타가 수록되어 있다. 반대로 가장 새로운 것은 베네치아의 제13권과 파르마의 제15권으로 모두 1757년에 옮겨 기록한 것이며, 뮌스터의 포르투나토 산티니 Fortunato Santini 신부(17781862)가 소장하고 있던 수고보집인 또 하나의 다른 자료에는 도메니코 스카를라티가 1756년과 그가 사망한 해인 1757년에 작곡한 마지막 쳄발로 소나타곡들이라고 소개한 소나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뮌스터의 5권본에는 총 349곡의 소나타가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요하네스 브람스가 소지했던 총 308곡의 소나타가 수록된 7권본은 현재 빈 악우협회가 보관하고 있다.
베네치아와 파르마의 수고보의 유래는 상당히 분명하다. 스카를라티와 같은 시대에 파리넬리라고 불렸던 유명한 카스트라토 카를로 브로스키가 마드리드 궁정에 있었다. 1737년 스페인에 도착한 파리넬리는 그곳에서 페르디난도 4세가 세상을 떠난 해인 1759년까지 살았다. 그는 바르바라 왕비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쳄발로뿐만 아니라 스카를라티 소나타의 수고보까지 받았다. 파리넬리는 그의 생애를 이탈리아에서 마쳤고, 각각 15권으로 이루어진 2개의 곡집이 베네치아와 파르마에 당도하게 된 것은 그의 중개에 의한 것임에 틀림없다.
단어의 가장 좋은 뜻으로서의 수집가(멘델스존)인 산티니 신부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의 집에서 크라머와 리스트는 스카를라티의 곡을 연주했고, 체르니가 그의 1839년판을 발행하는 기초가 된 것이 바로 그가 소지하고 있던 수고보였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커크패트릭이 붙인 스카를라티의 555곡의 소나타는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K. 130:쳄발로 연습곡(1738, 런던)
K. 3142:토머스 로진그레이브가 1739년에 연습곡에 추가한 12곡의 소나타
K. 4393:베네치아 XIV(1742)
K. 94:쿠앵브르의 수고보
K. 9597:파리판(1746 이전)
K. 98138:베네치아 XV(1749)
K. 139144: 런던 수고보(1746 이후)
K. 145146:케임브리지 수고보
K. 147:뮌스터 I
K. 148176:베네치아 I(1752)
K. 177201:베네치아 II(1752)
K. 202205:파르마 IV(1752)
K. 206235:베네치아 III(1753)
K. 236265:베네치아 IV(1753)
K. 266295:베네치아 V(1753)
K. 296325:베네치아 VI(1753)
K. 326355:베네치아 VII(1754)
K. 356357:파르마 IX(1754)
K. 358387:베네치아 VIII(1754)
K. 388417:베네치아 IX(1754)
K. 418451:베네치아 X(1754)
K. 452453:뮌스터 II
K. 454483:베네치아 XI(1756)
K. 454513:베네치아 XII(1756)
K. 514543:베네치아 XIII(1757)
K. 544555:파르마 XV(1757)
위와 같은 연대순은 자료의 날짜에 의한 것이므로 실제로 작곡한 날짜와 순서가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자필보가 하나도 없는 이상,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몇 곡의 소나타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로 구상된 작품의 결정고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은 필사한 여러 가지 악보에서 일반적인 특징들을 이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 일반적인 특징이란, 이어지는 곡집들의 다이내미즘에 반대되는 연습곡집의 정태(靜態), 베네치아본의 제3권과 제4권 이후의 성숙한 인상과 특히 느린 악장의 훌륭한 베네치아본, 제5권과 제7권의 서법의 투명성과 외적 효과의 배제, 베네치아본 제13권 이후의 완성된 종합성, 1967년 순수하게 양식상의 규정에만 기초한 작품 성립연대의 분류적 시도가 조르조 페스텔리 Giorgio Pestelli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그것도 확실한 것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는 모두 1악장 구성이(이것이 반드시 템포가 불변이라는 사실을 뜻하지는 않는다), 모은 자료에도 한 곡씩 번호를 붙였다. 그러나 베네치아와 파르마의 수고보에서는 종종 조성을 같이하는 것끼리 2곡씩(드물게는 3곡씩) 모아지고 있다(그러나 그와 같은 방법을 쓰지 않고 모은 수고보도 많다). 스카를라티 자신이 소나타를 연주할 때에도 같은 방법으로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모아진(커크패트릭은 연속하여 번호를 달았다) 소나타는 서로 대립적인 것, 반대로 보조적인 것 등 여러 가지이다. 형식은 항상 2부형식으로 각 부가 원칙적으로 되풀이되고 또 각 부의 끝은 항상 동일했다(제1부는 속화음이나 그것을 대신하는 것으로, 제2부는 주화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고전파의 소나타 형식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은 소나타의 서두가 제2부에서 되풀이되는 예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그러나 몇 가지의 예외는 있다. K. 159와 K. 256 등). 그래서 제2부의 서두가 종종 〈전조적 전개부〉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현부〉의 느낌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실제로는 분명하게 단조롭고 한정된 틀 속에서, 스카를라티는 끝없는 풍부한 상상력을 전개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소나타는 대략 2개의 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2개의 부분이 유사한 〈닫혀진〉 형식의 것이고, 하나는 주제와 조성에서 2개의 부분이 서로 다른 열려진 형식의 보다 역동적인 것이다. 모든 작품에서, 그리고 이것은 그 놀라운 참신성의 한 측면이기도 하지만 화성적 구조가 주제적 구조보다도 중요하다. 스카를라티는 어떠한 전조를 앞에 놓고도 굴복하지 않고 지극히 떨어진 조성을 갑자기 대립시켜 전격적인 이명동음적 전조를 사용했고 또 다조성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는 불협화음에 관해서 역동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소나타는 바흐와 헨델 또는 라모의 작품들보다 훨씬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 되고 있다. 이 점이 빈고전파를 가까이에서 예고했다고 할 수 있다.
리듬도 훌륭하고 다양하며 조금도 부담을 느끼게 하지 않는 어법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있고 상당히 힘차다. 도메니코는 민중의 음악, 즉 이베리아 민요에 열중하여 거의 스페인의 작곡가로 착각할 정도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플라멩코에서 한 진귀한 선법적인 표현을 차용했고 또 그의 서법은 종종 기타를 방불시켰다. 여기에서 그가 사용한 불협화음들이 유래했다. 많은 출판자와 필사자들은 정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실제로는 즐기기 위한 잘못된 음이고 그것을 위해서 스카를라티는 알베니스와 라벨과 같은 20세기의 피아노 작곡가와 가까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어떤 피아노의 대가들보다도 먼저 아치아카투라를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생생한 불협화음과 슈만과 브람스를 예고하는 것과 같은 반음계를 볼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짐수레꾼과 노새꾼, 그밖의 민중의 노래를 모방했고 사냥, 민중적인 무도회의 음악, 그리고 심원한 성찰이 공존하고 있다. 그 음악 또한 지극히 명기교적이며 종종 기술적으로 아주 곤란한 것도 있다. 도약, 손의 교차, 배터리, 음계, 그리고 아르페지오 등 손가락에게는 가장 어려운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에 비교적 고립되어 있었던 스카를라티의 제자로는 안토니오 솔레르 신부를 비롯한 이베리아의 작곡가들밖에 없었다. 그의 작품은 단 하나밖에 없는 고독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것이었고 화려함과 완벽성을 갖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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