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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간 '쪽방촌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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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진 [dbswls] 쪽지 캡슐

2008-04-19 ㅣ No.119656

<금주의 인물>사랑의 인술 남기고…하늘로 간 ‘쪽방촌 슈바이처’
 
 
문화일보  기사전송 2008-04-19 09:05 
 

“이 자리에 서니 그동안 함께 해주신 분들의 얼굴이 아른거립니다. 우리 병원의 오늘은 모두 자원 봉사자들 덕분입니다.”

노숙자, 알코올 중독자, 외국인 노동자처럼 아파도 병원을 찾기 어려운 이들을 무료로 진료하다 18일 오전 4시에 세상을 떠난 선우경식(63) 요셉의원 원장이 지난해 10월20일 설립 2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말입니다. 2006년 위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는데도 밝게 웃으며 기뻐하던 그는 결국 지난 15일 뇌출혈로 쓰러져 영면했습니다. 한때 의학 공부를 했고 지금은 여동생들이 살고 있는 미국에 가기를 거절하면서 “나는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고 한 선우 원장의 숭고한 사랑은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문화일보는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다한 채 20년이 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다 별세한 ‘쪽방촌의 슈바이처’ 고 선우경식 원장을 금주의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선우 원장은 1973년 가톨릭 의대를 졸업한 뒤 뉴욕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초에 귀국해 한림대 의대 부교수가 됐습니다. 그러던 그는 1983년 가톨릭 의대 학생들과 함께 주말진료 봉사를 하러 서울 신림동 철거민촌을 찾았다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도시 빈민들을 돕다가 아예 4년 뒤인 1987년 서울 관악구 신림1동 동사무소 자리에 무료 자선병원인 요셉의원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의기투합한 동료 네댓명과 함께 시작한 일이었지만 하나둘씩 떠나면서 선우 원장만 남았고, 요셉의원은 신림동이 재개발되면서 1997년 9월 영등포역 옆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한평생 봉사의 길에 매진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요셉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생겨난 월간 ‘착한 이웃’ 창간호(2003년 5월)에 실린 선우 원장 글에서 답을 얻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환자들은 내게는 선물이나 다름없다. 의사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는 환자야말로 진정 의사가 필요한 환자 아닌가. 이렇게 귀한 일은 아무나 할 수가 없는 것이기에 나는 감사하고 이런 선물을 받았으니 보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돈이 없는 환자를 선물이라고 할 정도로 헌신적 삶을 살아온 ‘노숙자의 대부’ 선우 원장을 잃은 요셉의원은 얼마 전에 또다른 아픔을 겪었습니다. 창간 이후 1억원 정도 도움을 받았던 월간 ‘착한 이웃’이 경영난을 겪으며 올해 4월부터 무기 휴간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병원 운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만큼 도움을 받는 환자 수가 줄어들지는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18일부터 서울 서초구 반포동 강남성모병원 1호 영안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각계각층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큰 어른인 김수환 추기경과 정진석 추기경,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이 조화를 보내 고인의 삶을 기렸고 병원 관계자들과 학교 동창들도 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후원자는 “선우 원장이 처음 요셉의원을 만든다고 할 때 ‘과연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하고 반신반의했었다”면서 “고인이내과과장으로 근무하던 방지거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대하는 모습을 보고 돕기로 결심해 지금까지 후원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한때 요셉의원에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는 한 중년 남성은 “하느님이 원장님을 하늘에서 쓰고 싶어 일찍 데려가셨나 보다”며 울먹였습니다. 요셉의원의 상징이던 선우 원장의 빈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 평생 독신으로 산 고인의 장례는 사회복지법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장으로 치러집니다. 21일 오전 9시 서울 명동 성당에서 정진석 추기경, 김운회 주교, 김용태 신부 등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열립니다. 장지는 경기도 양주 천주교 길음동 성당 내 묘원에 마련된다고 합니다. 부와 명예 대신 고단한 이웃을 선택한 우리 시대의 성자 선우 원장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요셉의원이 힘차게 부활하기를 기원합니다. 02-590-2352

홍주의·김인원기자 impr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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