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를 사서 근근히 생활을 이어갔지요
1970년대 군 복무를 마치고 좀더 급여가 많은 직장을 갖기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야했지요
그렇게 급여를 받아 꼭 필요한 부분에만 쓰면서 절약을 했지요
1980년대에는 융통성이 부족해 큰 회사에 다니곤 있었지만 진급이
동료들보다 뒤떨어져 퇴사를 해야만 했지요
작은 이 공장 저 공장으로 직장을 옮기며 사는 기간이 있었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퇴직금과 모자라는 돈은 새마을 금고에서 대출받아
아주 작은 아파트를 샀는데 한 2년만에 좋은 경기 덕분에 집값이 올라
살고 있는 34평형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내집 마련의 기회가 이루
어 졌었지요
푸로그래밍으로 가동되는 기계를 조작하기 시작했지요
이유는 그런 설비가 많이 보급됨으로 그 설비를 조작하는 기능이
필요한 시대가 됐고 직장 잡기가 유리했기때문에 배우게 되었지요
그렇게 집안에 필요한 생활비를 공장에서 일하면서 벌다보니 산업공해에
관한 질병에 걸려 병원신세를 단기간 지게 됐었지요
그후 나이도 들고 해서 단순노무직을 선택해 근 20여년간 직장 생활을
현재까지 하고 있지요
사람 사는 정도의 수준은 각기 다르겠지만 지금 주변에 본인과 같은
형평성이 있는 동료가 많은것 같습니다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갖고있는 집을 연금을 들어 나오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손자손녀들의 용돈이나 학교 입학금등을 보조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 편이어서 보람을 휠링하면서 살고 있는것 같습니다
가끔씩 여행을 떠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딜가든지 빠르게 변하고 있지요
4호선 지하철을 타고가다보면 강변에 60여년 묵은 아파트들이 아주 이쁘게
고층으로 제건축을 했고 또 진행중에 있지요
새로운 모양으로 서울이 변하고 있습니다
청계천 부근도 허름하고 작은 건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있지요
대형 건물들로 바뀌고 있고 이미 바뀌어져 있는 부분도 있지요
용산역 부근도 잡다한 소형 가계들이 자취를 감추고 고층 건물들로 새로
지어져 있지요
드넓은 한강에 카누 경기장만 있어 아주 조용스러웠었는데 말입니다 아파트와
고층건물로 모두 바뀌었구요 지하철 미사리 역 부근에는 호수공원이 조성되었고
서서히 자리잡혀 가고있었지요
코로나 시대가 가고 고가로 치솓던 상가나 아파트값이 떨어지기 시작했지요
아파트나 상가 공급이 확 많아지면서 부동산 값이 주춤 해진것 같습니다
1988년도경 교대쪽 30평형 아파트 값이 5천여만원 정도였지요
한 3여년전 코로나 시대에 부동산 가격이 막 급등당시 20억~30억을 초과했지요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40~50배로 증가했지요
그리고 특히 노인들 조그만 상가하나 구입해 월 백만여원씩 수입이 생기기도
해서 그 재미로 말년에 산다는 풍문도 있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서울 곳곳에만해도 새로 등장한 고층 아파트와 고층 건물속에 등장한 상가가
엄청나게 많아졌지요
불과 5~10년 사이에 돌변한것 같습니다
빈 아파트가 생기고 빈 상가가 많아진것 같습니다
공급이 많아지면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할까?
가난뱅이 우리가 국민 소득이 급속히 올라 선진국 대열에 들어 섣다고 칭찬
비슷하게 하더니만 이제는 도시 모양이 급변하고 있내요
한편 이에 대비해 해외 관광객이 늘고 있고요 대외 수출액도 늘고 있다고 하지요
특히 개발부분인 에어 버스나 에어 택시 시범 운행이라든지 수리호 헬기라든지
개발 업무에 힘쓰는 현상이 일코 있지요
관광객도 중국인이 많았는데 이제는 전세계 인으로 두루 바뀌는 현상이 일어나는듯
싶습니다
깨끗하고 하얀 변기며 화장지가 다소곳이 걸려있고 음악이 조용스럽게 들려오는
화장실 문화는 아마도 우리가 상당한 수준이 된것 같지요
정지돼 있는 현상보다는 발전하는 모습이 좋긴 하지만 빈집, 빈상가가 많은것
같아서 걱정 스럽기도 합니다
(작성: 2024. 0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