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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하느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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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숙 [hedbig] 쪽지 캡슐

2008-04-28 ㅣ No.6428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번 기회에 e-Book 사용법을 좀 알게되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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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목적과 이유 293-294,314,319 , 353,358;
 
293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118) 이것은
성서와 성전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찬미하는 진리이다. 보나벤투라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시기 위해서이다.”
119) 하느님께는 당신의 사랑과 선하심 이외에 창조를 위한 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열쇠가 만물을 창조할 손을 열었다.” 그리고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당신의 선하심으로, 그리고 전능하신 능력으로, 유일하신 참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복을 더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당신의 완전을획득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부여하신 선을통하여 당신의 완전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가장 자유로운 계획안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한처음에, 유형 무형의 피조물 하나하나를 무에서 창조하셨다. 121)
 
294 이렇게 당신 선하심을 드러내고 나누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며, 이를 위하여 세상이 창조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없습니다” (에페 1,5`-`6) .
“하느님의 영광은 바로 살아 있는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창조를 통한 하느님의 계시가 벌써 지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게 생명을 주시는데, 
하물며‘말씀’ 을 통한 성부의 드러나심이야 하느님을 뵙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생명을 주는 일이 되겠습니까.”
122) 창조의 궁극적인 목적은“만물의 창조주이신 성부께서 마침내‘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 (1고린 15,28) 이 되시어 당신의 영광과 우리의 행복을 드러내시고 동시에 돌보시는123) 것이다.”
 
314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계와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그 섭리의 길을 알 수가 없다.
종말에, 우리의 부분적인 인식이 끝나고 하느님의“얼굴을 맞대고” (1고린 13,12) 보게 될 때, 비로소 이러한 길을 완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길을 통해서, 심지어 악과 죄의 비극을 통해서까지도,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을 결정적인 안식(Sabbath)으로 158) 이끄신다.
이 결정적인 안식을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319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 함께 나누시려고 세계를 창조하셨다.
당신의 진선미에 참여하는 바로 이 영광을 위하여 피조물들을 창조하신 것이다.
 
353 하느님께서는 당신 피조물의 다양성, 고유한 선, 그들의 상호 의존과 질서를 원하셨다. 모든 물질적인 피조물은 인류의 선익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인간은, 그리고 인간을 통하여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358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셨다. 219)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께 모든 피조물을 봉헌하도록 창조되었다.
 
도대체 이런 배려를 받아 창조되는 존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위대하고 경이로운 동물, 하느님 보시기에 피조물 전체를 능가하는 인간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하늘과 땅, 바다와 모든 창조계가 마련되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의 구원을 너무도 중히 여기시어 당신의 외아들마저 아끼지 않고 내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높이 올리시어, 당신 오른편에 앉게 하시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셨습니다. 220)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창세기 강론」 , 2, 1: PG 54, 587-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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