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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일 [bjohn] 쪽지 캡슐

2001-12-04 ㅣ No.1926

오마이 뉴스에서 퍼온 글입니다. 교우들과 같이 읽고 싶습니다.


 

고 3학년 영수의 모범적인 모습

 

 

유정열 기자 yoo7532@hanmail.net    

 

3학년 수능 성적표가 오늘 나왔습니다. 재학생도 재수생도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들어보니 많은 아이들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하니 그렇게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업이 끝난 다음에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교무실에서 사정회가 열렸습니다. 3학년 학생들의 1년 동안의 생활을 결산하여 보고하는 자리입니다. 납부금 미납 현황, 학력 우수상, 개근상 등 여러 가지를 각반 담임들이 보고하여 전체 선생님들의 동의를 구하는 자리입니다. 이의가 있으면 즉석 토론을 하여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담임들이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는데 ’김영수(가명)’란 이름이 나왔습니다. O반 남학생 회장입니다. 회장으로 학급일을 열심히 하면 공로상을 받는데, 영수는 그 상은 물론이고 봉사상과 선행상까지 추천된 것입니다.

 

언젠가 그 반 담임 선생님께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 영수 같은 아이 없어요. 어쩜 그렇게 착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표정 좀 봐요. 언제나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잖아요."

 

나는 영수를 3년 동안 한 번도 담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업도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수에 대해 난 자신 있게 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 그런 아이가 없다고요.

 

지금까지 상을 두 개 받는 경우는 보았어도 이번처럼 세 개를 추천 받은 적은 없습니다. 그러한 전례가 없기 때문에 오늘 그 아이의 상에 대해 의논을 한 것입니다. 봉사상과 선행상을 다른 두 선생님이 추천하여 올렸다고 담임이 말하면서 문제가 있다면 상을 하나 빼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담임은 이어서 두 선생님이 올린 공적 조서를 간단하게 설명했습니다. 분리수거 당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도와서 열심히 했고, 학교 끝나고 갈 때에 복도의 창문을 다 닫았다고 합니다. 길 가다가 할머니가 청소하고 있으면 멈춰 서서 끝날 때까지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급우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습니다. 틀림없이 영수는 선생님들의 눈에 다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그를 난 자주 보았습니다. 나는 걸어다니고 영수는 자전거 타고 다니고 해서 우리들은 여러 번 학교 가는 길에서 만났습니다. 그 때마다 영수는 자전거를 멈추고 공손하게 웃으며 인사합니다. 그러면 난 너무 미안해서 고맙다며 빨리 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네" 하고 시원하게 대답하고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우리가 만난다는 것은 내가 앞에 걸어가고 영수가 내 뒤에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생님한테 자전거를 탄 채 인사하지 않고 가는 아이들도 안타깝지만 많습니다. 인사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를 멈추고 인사하는 아이는 영수 한 명입니다.

 

한 번 그 반에 1학기 때에 시험감독을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영수가 인사를 했습니다. 반가웠습니다. 시험을 보는데 그가 얼마나 신중하게 하는지 내가 그렇게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하며 답안지를 표시하라고 하는데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 3분 정도 남았을까요? 기어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수가 손을 들며 틀리게 표시했다고 했습니다. 답안지를 바꿔달라는 것입니다. 그 시간에 바꿔서 답을 쓰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내가 시간이 너무 없어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불안했습니다. 여러 번 아이들과 시험 때마다 답안지 교환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기 때문입니다. 거의 다 아이들이 감독교사의 말을 듣지 않고 답안지 표시하지 않고 문제만 풀다가 뒤늦게 표시하는 통에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했는데도 오히려 큰소리 치며 바꿔 달라는 아이들도 있고, 슬픈 표정으로 하소연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나는 시험 볼 때만큼은 호랑이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공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가 요구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냉정하게 대합니다.

 

영수는 나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나머지 문제의 답을 답안지에 표시했습니다. 요즘에 그런 아이 발견하기 정말 힘듭니다. 더군다나 3학년 학생입니다. 그가 바꿔달라고 떼를 쓰면 어떻게 합니까? 잠시 뒤에 종이 울릴 때에 분명히 다 못 표시할 텐데 그때에 다 표시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아주 싫습니다.

 

시험이 끝나고 답안지를 걷었습니다. 그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늘 그 모습 그대로 싱글벙글 미소 띤 얼굴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영수 그는 오늘날 이 시대가 꼭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가 다시 보였습니다. 그 아이의 미소 머금은 얼굴이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개교기념음악회가 구에서 관리하는 문화회관에서 저녁에 있었습니다. 2층에 올라가서 관람했습니다. 열심히 재밌게 봤습니다. 끝난 뒤 나오다가 ’이 시대의 의인’ 영수를 만났습니다. 그가 와서 본 것을 나는 몰랐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나의 주특기인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시험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점퍼 차림으로 편하게 왔습니다. 그와 단 둘이 2층에 남아 무대에서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는 합창단 아이들을 바라봤습니다. 역시 영수의 모습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환한 모습이 나에게 또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그 영수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생님에게도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추천되어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나의 예상, 아니 참석한 모든 선생님들의 예상대로 전례는 없지만 영수는 상 세 개를 졸업식 날에 받게 됩니다. 오늘은 그 일이 나에게 사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아파트에 영수가 삽니다. 졸업한 뒤에 영수를 꼭 만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많이 배우겠습니다. 오늘 점수가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영수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는 등불의 역할을 멋있게 해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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