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Re:세례성사를 받고나서...

인쇄

사랑과영혼 [61.106.108.*]

2005-07-06 ㅣ No.3550

 

  

    † 찬미예수

 

    형제님의 고백을 접하면서 하느님의 은총이 언제나 함께 하심을 새삼 실감해봅니다.

 

    주께서 당신 평화의 도구가 필요하시기에 갖가지 은총으로 다져주시며 형제님을 선택하셨나봅니다.

 

    사람이 일생에 세번 태어난다 하는데 최근 이곳의 신부님께서도 말씀해 주신 ''탄생, 결혼, 죽음''을

 

    또 다른 말씀으로 접한다면 ''생일, 성세, 영원한 탄생''이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오늘만을 사는 하루 살이로서의 끊임 없는 숨쉬기 운동이 이 아침으로 하여금 새쌀을 새 부대에 담아 주시기에 평화와 함께 시작되고 때때로 이어지는 어려움(속에서도 관대하게 복음을 나누며), 그리고 또다른 평화로써의 기쁨의 포기가 이어지는 꿈나라의 반복(진화)이 이어지는 사랑을 배워가는 여정에서 형제님의 두번째 탄생(영세)도 이미 무한한 축복을 받고 계심인것입니다. 

 

    이러한 세가지 은총 가운데 전자와 후자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땅과 하늘에 계신 부모님의 의지데로 탄생이 이루어지며 다만 두번째의 결혼, 세례등은 나의 의지와 그분의 의지가 반반씩 섞임으로써 타인에게도 다양한 여파를 제공해 주고 있기에 여타 분심들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형제님은 분명 행복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영원한 탄생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이정표를 보다 깨끗하게 볼수 밖에 없는 형제님은 참으로 복된 분이십니다.

 

형제님도 지내 보면 아시겠지만 영세는 하느님이 주신 성사 생활의 첫번째의 천국문 은총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우리들의 오류가 범벅된 물질 우선 풍조와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하기에 침묵으로 응대할 수 밖에 없는 가톨릭의 보편성이라는 것이 이미 구조상 동서 고금을 통하여 가장 인기있는 종파로서 이어져 있고 이에 적지 않은 우리 자신조차도 ''영세''가 아닌 인간 스스로의 자아 비중이 과다한 세례로서의 정체성에 허덕일 수 있기에 개신교우들의 비판, 비난등에 대해서도 기실 할말이 없어지기도 할 것입니다.

 

형제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이러한 개신교인은 나의 자아를 닮아 있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하니 그 아름답고도 거룩하여야 할 침묵을 잘 가꾸십시오. 그리고 깊은나이신 주님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며 그것을 계속하여 주님 제대위로 봉헌하신다면 틀림없이 형제님에겐 시시한 은총이 아닌 성모님을 전체로 맞으며 온전한 평화의 여정으로서 매일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연습까지 잇게 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 자아가 남다른 수련을 통하여 성사생활의 첫번째 관문을 승리로써 통과 하심은 축하받아야 마땅한 일인것입니다. 이 성사생활의 초대는 결코 가톨릭의 자랑꺼리나 위안꺼리로 머물 수 없으며 결국 하느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형제님같은 분은 남다른 계기가 내 자아로 포기함이 아닌 하느님께서 감싸주시는 아침기도, 삼종기도, 저녁기도 및 양심 성찰, 성체조배, 미사, 영성체, 십자가의 길, 희생, 영적 독서등의 기쁨을 더욱 맛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아의 조급함인 것입니다. 그냥 다 지나가는 것이니 그저 코로 바람이 스치는 나무토막같은 우리 자신을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때엔 그 무엇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그냥 흘러 옵니다.

 

계속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첫번째 조건이 ''들음''이기에 형제님께서도 영원한 탄생의 여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환영합니다.

 

보십시오. 과연 우리가 누굴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누구와 부족하나마 그 사랑을 나누려 하고 있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만을 믿으시기에 저는 주님의 은총만을 믿습니다로 화답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면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가운데 고통이라 하는 것은 가장 커다란 은총이기에 형제님은 그것을 당겨서 감사할 수 있는 의지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아무에게나 스스로 고통 받을 때 재빨리 상대의 영혼을 바라보며 ''하/느/님/감/사/합/니/다''의 여덟 글자를 기도 앞머리에 놓고 그분과의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통 사고를 당한 아들을 살려달라 처음 성당문을 열고 들어온 어느 엄마가 한달 뒤 어서 고통이 없고 더 평화로운 하늘나라로 이끌어 달라 기도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으며 문제는 언제나 우리 자아가 그것을 교의적으로 자의적으로 활용하지 않도록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의 하늘, 화해의 바다를 가로지으신 그분을 믿고, 닮고, 따르는 여정가운데 물고기인 내가 이웃과 비린내 풍기는 부패한 생선의 만남이 아닌, 또한 밧데리가 소진되는 건전지의 만남도 아닌, 시들면 버리는 꽃의 만남도 아닌, 허무하게 곧바로 지워지는 지우개의 만남도 아닌! 주님과의 서로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 만남을 누릴 수 있기에  이 푸르른 물고기들의 장미 여정(묵주기도 열심히 바쳐보세요, 일상이 함께 숨쉬어 주는 장미 여정으로 다가옵니다), 영원 무궁한 건전지 충전을 받는 영화속의 그 도자기로 매일 태어나시어 오직 내안의 슬픔, 고뇌등을 즐겁게 지우는 그러한 여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형제님의 경우라면 지고 지순한 영화의 두 주인공 샘과 몰리역으로 인생이라는 무대위에서 그 감성과 이성이 충분히 열연함으로써 사랑이 역시 의지로 하는 것임을 절감에 절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승자는 형제님(깊은 너)처럼 무대 위로 오르고 패자는 관객석으로 내려가기에 형제님도 완전한 기도인 미사를 보는 것이 아닌 참례 하시려 하실 것입니다.

 

우리 이 거룩한 성당에서 화이팅! 한번 크게 외칩시다!

 

들리시지요? 형제님께 봉헌하는 수많은 기도가요. 안녕.

 

 

 

 

 

 



330 0댓글쓰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