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신앙상담 신앙상담 게시판은 비공개 게시판으로 닉네임을 사용실 수 있습니다. 댓글의 경우는 실명이 표기됩니다.

q 상담하시는 님에게 드리는 편지

인쇄

비공개 [220.94.24.*]

2004-09-09 ㅣ No.2983

저는 신학적이거나 교리지식을 갖고 대답하지는 않겠습니다.

모고백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답은

영성적인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신부님께 상의해본다면

금방 답을 얻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크게 어느 항목에 해당되는지 알 수 없기에

구체적인 대답은 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복음서에 나오는 예를 들어 설명할께요!

 

간음하다 들킨 여인이 예수 앞에 끌려 나왔을 때

어디 그 여인이 일일이 구체적으로 소상히 자기 죄를 고백하지는 않았어도

예수님 앞에 나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님의 연민에 찬 눈길은 죄에 대한 용서를 선포했답니다.

중요한 것은 고백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느님 안에 완전한 회개로 돌아선 삶의 자세가 아닐는지요!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버리는 일회성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하느님 뜻 안에 살아가기 위해

우리 내면의 심지에 밝혀야 할 등잔불인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고백성사는 6세기경에 생겨난 제도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느 책에서 읽은 듯 한데 기억이 오래되어 찾을 수 없군요?

죄에 대한 고백을 통해 말의 힘으로 죄의식을 털어버리는 주술효과도 없지 않아 있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과거의 죄에 사로잡힌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일 것입니다.

고해성사의 근본취지를 살펴본다면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관계회복을 위한 것이랍니다.

고해성사는 죄인의 회개를 위한 카톨릭 안의 입문절차이지

고해성사 그 자체를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사람을 위한 고해성사임을 생각하시고

단순히 혀끝에 나오는 말로서 죄가 씻겨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마음의 자세를 들여다보는 하느님이심을 안다면

님의 마음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죄에 대한 심판은 우리 안의 양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닐는지요!

깨끗한 마음과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데

님의 현재 마음이 걸림돌이 된다면

과감히 그 걸림돌을 걷어낼 수 있는 용기와 결단도 필요하겠죠?

주님의 연민과 사랑은 우리네 죄와 잘못보다

우리가 얼마만큼 자기 회개의 성찰과

깨어있는 믿음으로 당신의 길을 따르냐를 보지 않을까요?

 

제 좁은 생각으로는 그렇게 세세하게 구체적으로

죄에 대한 고백을 묘사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지네요!

주님이 알고 싶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님의 죄와 잘못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아온 돌아온 탕자의 걸음처럼

그렇게 당신 안에 회개하는 님의 마음을

기쁜 제물로 받아주심을

님이 깨닫는 일이 아닐는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님의 죄와 잘못보다도

주님의 사랑에 눈을 뜸으로 인해서

다시 하느님과 이웃 사랑의 관계회복에 들어선 삶의 걸음이 아닐까요?

앞으로는 신앙 안에서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느껴가는 얼굴이 되어가길 빕니다.

그리고 카톨릭 사이트에서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어 나가 보세요?

따뜻한 이야기편이나 우리들의 묵상에도 들려 좋은 글 나누시는 그런 님이 되기를...

 



283 2댓글보기

신고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