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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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9.*]

2006-02-15 ㅣ No.3958

 

   † 찬미예수

 

   님께서 어떤 고통인지 모르오나 사려깊은 괴로움을 겪고 계신듯 하군요. 하느님께서야 마땅히 우리의 고통이 해결되길 바라시겠지요. 문제는 언제나 하느님이 유혹을 하시는 것이 아니요, 사탄이 적 그리스도로 둔갑하거나 거기에 동조한 우리가 유혹당하기도 함을 믿으십시오.

 

저는 하느님께서 분명히 이 유혹등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로하여금, 그 의미들을 깨닫게 하기전에 먼저 나의 평화를 위해 기다려 주심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화가 없다면, 그리고 내가 쇄신되지 못한채 무엇을 깨닫는다면 결과가 오히려 더욱 참담할 수가 있지 않겠는지요? 그래서 세상은 악해져 있지 않던가요?

 

묵주기도, 성체조배, 미사, 영성체, 성경봉독으로 인하여 님은 이미 분명 효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이 하느님께서는 님과 님 주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축복의 열매를 수확케도 해 주실 것입니다. 어찌보면 님 또한 요나의 고통의 경우처럼 교회의 일상적인 이야기등을 늘어놓고 있는 세 친구들의 이야기가 별로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것입니다.

 

제가 님의 고통을 잘 몰라 감히 님의 신앙을 측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요, 다만 나의 교만심이 작용하여 어찌 이리 주님의 은총을 모를까?라는 느낌이 들었슴을 용서청하겠습니다.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아무튼 고통 및 고심이 크시다는 것을 느끼며 감히 님의 고통을 나눠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봅니다.

 

저도 최근 성당 사무장직 15차 낙방으로 도무지 하늘이 노랗게 다가올 때도 많고, 한번 시작한일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형이기에, 잘하면 님과의 나눔을 허락하여 주신다면 금번 3월 1일의 재의 수요일로부터 사순시기동안이라도 꽃동네같은 곳에 피신하여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흣날을 기약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도 내 자신이 주님을 따라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외쳐야 하는 못난이로써 말씀을 나누고 있는듯 합니다.

 

뭔가 점점 악화되신다는 님의 고심(?)이 물질적 요소와 결부되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엉킨 실타레처럼 도무지 풀기 어렵게 다가오더라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연히 그것을 풀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행복의 열매를 피워바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땅에 떨어진다고 느끼신다면, 하늘로 오르게 바쳐보시지요. 예를 몇가지 들어드릴테니 받아들이게 해달라는 간절한 그 마음으로 들어주시면 좋을듯 합니다.

 

1. 먼저 첨부된 아래의 사진을 보십시오.

 

 

본 사진은 강원도 연천의 아오스딩 분원 사진을 언젠가 우연히 촬영하게 된 것입니다. 하늘이 있고, 우리안의 그것을 바쳐야 할 그리스도 제단이 있으며 내가 기도할 경건한 방이 보이시는지요? 만약 기도할 때 내가 다만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그리스도의 제단위에 나를 매일 매일 온전히 바치지 못하고 있다면 저처럼 본 그림을 컴퓨터 데스크탑 화면에 놓고 그저 바라보는건 어떨런지요?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우리의 부족한 기도를 하늘로 올리는데 도움이 되리라 사료됩니다.

 

왜 노래라는 것도 있지 않을런지요? 깨어나 있는 마음으로 미리 성모님의 품에 안긴 마음이라면 고음처리가 어렵기는 커녕 다만 그레고리오 송가의 그것처럼 조금 더 경건해지고 맑아지는 그것처럼 말씀이지요. 기회가 닿으시면 그레고리오 성가도 인터넷 자료로써 즐겨 청취해보심 좋을듯 합니다. 일반적으로 이 성가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아기처럼 졸리움이 올텐데, 형제님의 경우는 수도자들의 그 깊은 내면의 절규를 들으심으로써 불붙는 열정같은 것을 느끼실 분으로 사료되고 있습니다.

 

2. 벽에 대고 중얼중얼...이라 하심은 사제들도 자신을 낮추이며 겸손한 표현으로 그리 말씀하신 기억들이 나는군요. 이타성의 본질을 망각한 채 심리적 평화만을 갈구한다는 것은 아쉽게도 셋중 두사람이 선데이 신자조차 해당치 못하는 가톨릭 교우들의 현주소를 잘 표현해 주심이기도 하겠고 말씀입니다.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고자 검은 수단을 입고 보편신자들보다 앞,뒤가 바뀐 로만칼라로 무장하여야 할 신부님들조차 왜 때로는 하느님이 안 계신가 하는 의심이 들지 않겠습니까?

 

이 답 역시 간단한 것 같습니다. 벽이 아닌 윗그림의 넓은 투명창 넘어 하느님 아버지가 계신곳을 지향하며 다가오는 모든 것 또한 내 의지보다는 부활하신 주님의 전능하신 그것에 의탁할 수 있도록 그저 숨만을 고르더라도 나의 심리조차 절로 평화로울 것이고, 그 심리부터 얻으려 하였슴이 또한 좋은 시행착오가 아닐까 생각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데 안계신가 하는 의심도 때로는 나약한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발상일 수 있겠습니다. 이와는 반대 급부로써 영지주의의 오류로도 빠질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총탄 세발에 십자가를 새기고, 하얼빈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포살한 뒤 여순감옥에서 거룩한 금요일 죽음을 맞으신 안중근 토마스 의사와 그의 아들 준생을 베네딕도 신부로 아내에게 양성해달라 하심, 대동아 공영 평화와 함께 모든 성직자와 국민은 국가 재건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다해달라시던 유언등이 있으며 일본 쵸코렛회사 상술로부터 변질된 국적불명의 한국의 발렌타인데이 선물 문화가 아닌 발렌티노 성인등의 희생 및 수많은 초대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통한 간접 하느님 발현등을 보더라도 형제님의 고뇌는 이미 쉽고 편안함에 젖는 보편 신자들보다 더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고통은 실로 하느님이 주시는 작금의 최고의 은사인 것입니다.

 

종교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괴로운 현실상황을 그냥 받아들여서 반항하지 못하도록 만든 일종의 지배 합리화한 도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신다 하셨는데 이 역시 사이비 집단이 이 모양이지, 하느님과 하느님께 순명하는 참 종교인들은 결코 그렇치 않음을 믿으십시오. 사실 저역시 이런 나약한 무리와 참 신앙인의 중간자 입장에 있기도 합니다만, 예를 들어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의 은총의 발로가 아닌 인간의 독점욕, 소유욕, 정욕등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들은 결코 참 공동체를 만날 수도 없고, 만나서도 안되기 이전에 만나지지도 않는 것이 또하나의 은총이며 순리가 아닐런지요? 역시 방법은 간단한것 같습니다. 우선 하느님 아버지와 성자이신 예수를 닮고자 하는 나,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대위에 그것을 바치기 이전의 평화등이 소중하다 강조하고 싶습니다.

 

보편성은 다른말로 가톨릭이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카톨릭이라는 오기를 사용하기도 하더군요. 불교는 인간의 수행 및 깨달음으로 얻는 종교요, 성삼위를 믿는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의 말씀을 얻고 따르는 계시종교이기도 하지요. 예수가 되고 싶다면 먼저 부처가 되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부처의 자비에 도움받으려는 사람은 종파간의 갈등도 필요없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비워짐으로써 아침기도, 삼종기도, 저녁기도 및 양심성찰의 기쁨과 평화를 맛들이고 더 나아가 성사생활의 그것으로 무장하여 '이용당함'이 아닌 계속하여 하느님이 바라시는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찾아 나서며 나눔의 신비를 체험하고 기뻐하기도 하는 여정으로 이어지겠지요. 아무튼 님이나 저나 다소 자기안에 갇혀 계시는 공통점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성인, 성녀들의 삶이 그러하였듯, 데레사 수녀님이 그러하였듯, 노구의 몸으로도 종신 봉사하셔야 하는 교황성하들도 그러하시듯 이분들은 결코 인간의 정치, 권력부터 순종할 수 없는 분들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느님의 권력에 순종하시는 분들이지요.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을 얼마든지 누룰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우리에게 허락하고 계십니다. 믿으십시오. 의심은 그 자체로 기도의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며, 진리를 인정치 못하고 이로인하여 때때로 늪과도 같이 다가오는 자아에게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무신론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들을 탓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들도 모두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는 힘을 배양 받자는 취지에서도 다만 눈을 감고 저 평화의 제대를 바라보자는 것이지요.

 

종교는 글자 그대로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사회, 문화적 메카니즘의 하나이기 이전에 태초로부터 이들의 거룩한 어머니와 아버지 역할이 마땅하겠지요. 아무튼 님께서 뭔가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시는 성향이 엿보입니다만, 역시 님 고유성으로 주님께 의탁하여 가꾸어져야 할 달란트라 여겨지며 전능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느님은 성자이신 예수와 성스러운 영혼의 의지로써 누구에게서나 깊은 나와 너이신 주님으로도 찾을 수 있으실 것입니다. 악인의 눈에는 악인이 먼저 보이고 선인의 눈에는 선인이 먼저 보이는 법이니 내가 기뻐함으로써 주님이 함께 뛰노시게 할 것이며, 내가 슬퍼할 때 주님이 함께 아파하심도 잊지 마시고, 하느님은 결코 멀리 계시지 않음을 묵상하시리라 봅니다.

 

고통 받고 있는데 옆에서도 아니고 그 고통에 무조건 동참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고통받을 때 그 분의 현존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은 고통중에 기도가 힘들다는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이때에는 더 평화로워야 할 그때를 당겨서 감사할 수 있도록 평소 축적하시는 묵주기도, 미사, 영성체, 성체조배로서 여하히 즐겨 무장함으로써 점점 더 티없으시기에 지상에서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성모 엄마를 닮을 수 있는 것 또한 사실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따라서 님이나 저나 괴로울때, 거룩하신 천국에서 저의 괴로움을 보며 즐거워하신다는 생각만 든다는 고백은 님이 얼마나 고통스러우시면 그러실까 하는것을 느끼게도 해주십니다만, 미물인 우리 인간조차도 자식이 괴로움을 당할 때 즐거워 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즐거워 하는 경우는 경쟁자등의 도태등을 은근히 바랄 수 있는 우리 자아형 악심의 발로일 것이며, 결코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하느님은 한분이시며 성삼위이심을 믿으셔야 할 것입니다.

 

현실은 괴롭다면 평화롭도록 자세를 바로하심 되겠습니다. 모든덕의 어머니가 겸손인점도 깊이 인식하시고 그 탐구 의지를 잘 가꾸시는 측면으로써 매일 미사의 복음 말씀속의 누룩과도 같은 은총도 더불어 묵상하시는건 어떨런지요? 진정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거나 믿으려 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주님안에 거룩한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신이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안심하라, 내가 이미 부활하였노라, 두려워 말라'고 격려해 주시기도 합니다.

 

자살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생명'을 더우기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빌려주신 '생명'을 평화의 도구가 아닌, 매우 패쇄적이고도 반 이타적인 비복음적 식견으로 결행하는 대죄에 해당되는 행위입니다.

 

아파도 치료도 받지 말아야 하고, 굶어도 돈을 벌지 말아야 하고, 그냥 죽어야 한다는 논리 역시 가톨릭 교회법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인간적 자아가 빚어내는 잘못된 그릇일 수 있으니 님의 장인정신으로 하여금 과감히 그것을 버리시고 참 빛이요, 생명이신 주님으로부터 빛으로 오시는 신앙가운데 공부생활, 기도생활, 봉사생활, 성사생활, 공동체 생활등을 바라보시면 좋을듯 합니다. 먼저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나머지는 하느님이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진, 선, 미의 부모이신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든 함께 하시니 두려워 마시고 친교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아오스딩 연천분원 그림을 바라보십시오.

 

그러한 분심을 안고 있다면 천국에서 다 갚아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님의 노력등으로 보속하는 연옥등에서 먼저 갚아야 가능한 것이랍니다. 하느님의 계시를 너무 알려 하면 자칫 무당이 되기 쉬우니 순명할 수 있을 때쯤이면 폭포수와 같은 은총의 빛을 쏟아주시는 분이 또한 하느님이심을 믿으시고, 하느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님 포함 누구에게나 깊은 나와 너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찾는 것은 기도하는 이에게 사실 시간문제이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 필요조차 없는, 결코 남을 비교하지도 않는 단단한 평화의 하루로도 도래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말을 적게 하고 더 들으라 하셨는데, 죄송하게 되었군요. 하지만 너그럽게 용서해주실줄 믿겠습니다. 저도 덕분에 모처럼 부족하나마 아침 묵상을 나눈듯 하여 감사드립니다. 그럼 주님과 함께 형제님도 저도 더욱 건승하길 바라겠습니다.

 

이 밖에도 고민 찾아오면 언제든 부끄러워 마시고 전화 주십시오. 저는 이런 복음 나누기를 참 좋아합니다. 하느님과의 통화 덕분에 서로 좋은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위의 그림 데스크탑 화면으로의 캡쳐 잊지 마시구요.

 

02)351-4589 좋은아침 河 도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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