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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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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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7-03 ㅣ No.148050

저의 숙소는 2층입니다. 사무실과 주방은 1층에 있습니다. 계단에는 손잡이가 있습니다. 1층에서 올라 올 때는 손잡이를 거의 잡지 않습니다. 그러나 1층으로 내려 갈 때는 손잡이를 잡습니다. 균형을 잡기도 좋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나오는 차들은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습니다. 차선을 넘어가면 소리가 납니다. 주변에 다른 차가 가까이와도 소리가 납니다. 자동 속도 조절 장치(쿠르즈 기능)이 있습니다. 앞 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해진 속도를 유지합니다. 장거리 운전에는 편리한 기능입니다. 집에 있는 정수기에도 뜨거운 물이 나올 때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화상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냉장고도 문을 오래 열어 놓으면 소리가 납니다. 문을 닫으라는 신호입니다.

 

구약성서에는 예언자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예언자의 역할은 안전장치와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면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라고 경고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고통 중에 있을 때는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 주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 주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불의한 권력을 행사하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언자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로 나가면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인이 아이를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새로운 계약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 넣어주시면 마른 뼈도 살아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안전장치는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모든 사고를 막아주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안전장치를 이용하는 우리의 태도입니다. 안전장치를 무시하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안전장치를 너무 과신해도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예언자들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지만 예언자가 우리를 구원해 주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우리의 태도입니다. 작년에 코로나19가 시작될 때입니다. 안전수칙은 있었습니다. 마스크 착용, 거리두기, 신속한 검사, 확진자의 격리, 시민들의 협조입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런 안전수칙을 준수했습니다. 대한민국은 K 방역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추적, 검사, 치료라는 방식으로 코로나19를 안정적으로 관리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미국은 대통령부터 코로나19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마스크도 잘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거리두기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안전장치는 지키지 않으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가 있는 뉴욕은 한국에서의 운전 면허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뉴욕에서 운전하려면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필기시험은 예상 문제지가 있어서 하루정도 공부하면 무난하게 합격합니다. 그러나 실기시험은 한국에서 운전을 잘 하던 사람도 곧잘 떨어지곤 합니다. 한국에서의 운전경험을 믿고 별 연습 없이 실기시험을 보기 때문입니다. 실기시험의 기준은 얼마나 운전을 잘 하느냐가 아닙니다. 얼마나 안전운전을 하느냐 입니다. 핸들은 양손으로 잡아야 합니다. 멈춤에서는 반드시 3초 정도 멈추어야 합니다. 규정 속도를 지켜야 합니다. 방향을 바꿀 때는 반드시 머리를 뒤로 돌려서 확인해야 합니다. 한국에서의 운전 경험을 믿고 무심코 운전하다가 실기시험에서 떨어지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실기시험 감독관이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감독관은 저에게 축복의 기도를 청하였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신자가 감독관이기에 편안하게 실기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어려운 이웃을 따뜻하게 돌보라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예언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랑이 넘치시기에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하지 못했던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는 어디서나 환영을 받지만 고향에서는 예언자도 환영 받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들의 꽃에서도, 흘러가는 구름에서도 하느님의 사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문 앞에 있어도 외면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7월의 첫째 주일입니다. 겸손함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이웃에게 전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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