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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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퍼온 글--예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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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진 [hotsource] 쪽지 캡슐

1999-09-08 ㅣ No.415

 먼저 415번을 읽지 않고 414번을 쓴 저로서는 참으로 황당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지금 조선일보에서의 언쟁은 말싸움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제가 그 게시물 글들을 접하고 느낀 점입니다.

 그럼 문제의 그 글부터 싣겠습니다. 이에 대한 파장이 크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지만, 행여라도 그렇게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의 글을 아래에 고스란히 올립니다.

 

예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1)

*운영자가 예수쟁이인지 모르지만 내용도 읽지않고 지운것 같다. 성경귀절 내용대로 왜곡없이 쓴건데,

 

못읽은 분을 위해 다시 올린다.

 

*********예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1)***********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1)*****************

 

신약성서는 A.D 4C에서 A,D 10C 사이에 쓰여진 복사물로 편집되어 있을 뿐 원전이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며, 또한 복사물들은 1,500여종에 이르지만 내용이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신약성서의 사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의 하나는 1844년 시나이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되었다 하여 ’시나이 사본’으로 부르고 있는 사본이다.

 

그런데 ’시나이 사본’은 발견될 당시에 무려 16,000 여곳이나 수정되어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계에서는 커다란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시나이 사본’은 그 내용이 엄청나게 고쳐지고 지워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가 태동한지 200년 동안은 구약성서 외에는 성서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독교내의 교파간에 다툼이 일어나자 교파간의 다툼을 조정할 목적으로 각양각색으로 쓰여졌던 글을 모으게 되엇고, 이 글들이 후에 ’신약성서’로 추인 받았다고 한다.

 

’시나이 사본’이 16,000 여곳이나 수정되었다는 것은 ’신약성서’가 완성되기까지 교파간의 다툼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보여주고 잇는 증거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성서로는 교리를 정리하기가 어려워 가톨릭은 1차 종교회의(니케아 A.D 325년)에서 318명의 주교들이 모여 "예수는 하나님이다."는 교리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 종교회의를 주최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고대 페르시아의 태양신인 ’미트라’를 신앙한 사람으로 자기의 아들(그리스프스)과 장인(마키시미안)을 살해했고, 그의 처(파우스트)는 끓고 있는 열탕속에 처넣어 죽인 전력을 가진 광인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콘스탄티누스’가 "니케아 종교회의는 하나님의 결정이다."고 선포한 공적이 있다 하여 그는 가톨릭에서 일약 성인으로 추서되었다고 한다.

 

이어서 열린 2차 종교회의(콘스탄티노플 A.D 381년)에서 "신은 성부, 성자, 성신으로 존재한다."는 삼위일체 교리를 채택했고,

 

3차 종교회의(에페소스 A.D 431년)에서 "마리아를 하나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시도했으며,

 

4차 종교회의(카르케돈 A.D 451년)에서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모순을 해결하려고 "예수는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구분해야 한다."를 결의하기도 했다.

 

이와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쟁점이 계속 발생하자, 사용상의 편의를 위해 16C까지 완성했던 장과 절중 8곳(마태복음 3곳, 마가복음 4곳, 누가복음 1곳)을 훼손한 다음 ’없음’ , ’X’ 표를 해야 하는 등, ’신약성서’는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야 햇던 것이다.

 

성경은 성경 저자들의 주관적인 견해와 교파간의 이해 득실로 인하여 왜곡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로도 확인될 수 있다.

 

성경은 예수가 12세 때에 이미 범상한 기상을 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3세 이후부터는 일체 기록이 빠져 있다가 17년이 지난 30세 때부터 예수를 다시 등장시키고 있다.

 

예수가 태어날 당시에는 별을 띄우고, 동방박사 세 사람을 초청(?)도 해 가면서 요란했던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풍습에 의하면 남자가 13세가 되면 결혼하는 나이라고 한다. 성경은 에수의 어린 시절은 소상하게 기록했으면서도 정작 성인이 된 때부터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잇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성경 저자들의 실수였을까? 아니면 예수의 과거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을 만큼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다음 ’예수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2)’는 예수의 숨겨진 17년의 내용으로 이루어짐.

 

[ 김정희 : hheadstrong@hotmail.com ]

 

 

  성서 구절을 잘 인용하지 못했지만, 생각나는 좋은 구절이 하나 있어서 그대로 옮겨 적으면서 위에 글에 대해 나름대로 입장 정리를 해 봅니다.

            

           "너희도 이와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설령 내가 가진 것이 없다하여도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세상 안에서 주님 말씀을 따르고, 그 분 뜻을 따르는 것이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원천임을 깨닫고 그렇게 실천한다면 주님께서 주신 도그마만이 세상을 참평화로 이끌고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이끈다는 사실을 말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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