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연중 제9주간 목요일] 큰 계명 (마르12,28ㄱㄷ-34)

스크랩 인쇄

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03 ㅣ No.147305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큰 계명 (마르12,28ㄱㄷ-34)

 2020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1독서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토빗6,10-11; 7,1.9-17; 8,4-9)

10 토비야가 메디아에 들어서서 이미 엑바타나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11 라파엘이 토비야 형제!” 하고 청년을 부르자 그가 왜 그러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라파엘이 말하였다. “우리는 오늘 밤을 라구엘의 집에서 묵어야 하는데그 사람은 그대의 친족이오그리고 그에게는 사라라는 딸이 있소.”

7,1 엑바타나에 들어서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나를 곧장 우리 친족 라구엘에게 데려다 주시오.” 하고 말하였다그래서 그는 토비야를 라구엘의 집으로 데려갔다그들은 마당 문 곁에 앉아 있는 라구엘을 보고 먼저 인사하였다라구엘은 형제들기쁨이 충만하기를 비오건강히들 잘 오셨소.” 하고 답례한 다음그들을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라구엘은 양 떼 가운데에서 숫양 한 마리를 잡고그들을 따뜻이 맞아들였다그들이 몸과 손을 씻고 저녁을 먹으러 식탁에 앉았을 때에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아자르야 형제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10 라구엘이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청년에게 말하였다. “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형제야내 딸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나도 사라를 너 말고 다른 남자에게 줄 권리가 없다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척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얘야너에게 사실을 알려 주어야겠다.

11 나는 벌써 사라를 우리 동포 일곱 남자에게 차례로 주었지만사라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그 밤으로 다 죽어 버렸다그러니 얘야지금은 그냥 먹고 마셔라주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토비야는 말하였다.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라구엘이 말하였다. “그렇게 하마모세의 책에 있는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사람이다하늘에서도 사라는 네 사람이라고 이미 판결이 내려졌다너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라이제부터 너는 사라의 오라비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그리고 얘야오늘 밤에 하늘의 주님께서 너희를 잘 보살피시고너희에게 자비와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2 그러고 나서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렀다사라가 오자 라구엘은 그 손을 잡고 토비야에게 넘겨주며 말하였다. “율법에 따라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모세의 책에 쓰인 규정에 따라 사라는 네 아내다그러니 네가 맡아서 네 아버지께 잘 데려가거라하늘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번영과 평화를 베풀어 주시기를 빈다.”

13 라구엘은 다시 사라의 어머니를 불러서 쓸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다그리고 모세 율법의 규정에 따라 사라를 토비야에게 아내로 준다는 혼인 계약서를 썼다.

14 그러고 나서 그들은 먹고 마시기 시작하였다.

15 라구엘은 자기 아내 아드나를 불러, “여보다른 방을 준비해서 사라를 그리로 데려가시오.” 하고 말하였다.

16 아드나는 가서 라구엘이 말한 대로 그 방에 잠자리를 차려 놓은 다음사라를 그리로 데려갔다그리고 사라 때문에 울다가 눈물을 닦고 그에게 말하였다.

17 “얘야용기를 내어라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얘야용기를 내어라.” 그러고 나서 아드나는 방을 나갔다.

8,4 부모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자 토비야는 침상에서 일어나 사라에게 말하였다. “여보일어나구려우리 주님께 기도하며 우리에게 자비와 구원을 베풀어 주십사고 간청합시다.”

사라가 일어나자 그들은 기도하며 자기들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청하였다토비야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찬미받으소서당신의 이름은 대대로 영원히 찬미받으소서하늘과 당신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영원히 찬미하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협력자며 협조자로 아내 하와도 만들어 주셨습니다그 둘에게서 인류가 나왔습니다당신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와 닮은 협력자를 우리가 만들어 주자.’ 하셨습니다.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은 아멘아멘.” 하고 함께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날 밤 잠을 잤다.

 

화답송 시편 128(127),1-2.3.4-5(◎ 1ㄱ 참조)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

○ 행복하여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그분의 길을 걷는 모든 사람네 손으로 벌어 네가 먹으리니너는 행복하여라너는 복을 받으리라

○ 너의 집 안방에 있는 아내는풍성한 포도나무 같고너의 밥상에 둘러앉은 아들들은올리브 나무 햇순 같구나

○ 보라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이렇듯 복을 받으리라주님은 시온에서 너에게 복을 내리시리라너는 한평생 모든 날에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리라

 

복음<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12,28ㄱㄷ-34)

그때에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들어라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2015년 6월 4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제1독서 (토빗6,10-11; 7,1.9-17; 8,4-9ㄱ)

 

"얘야, 용기를 내어라. 하늘의 주님께서 너의 그 슬픔 대신에 이제는 기쁨을 주실 것이다. 얘야, 용기를 내어라." (토빗7,17)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저의 이 친족 누이를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토빗8,7)

 

토비아와 사라의 결혼 이야기(토빗7,9ㄴ-17)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 전개된다.

먼저 토비아가 아자르야(라파엘)에게  "내 친족 누이 사라를 나에게 주라고 라구엘에게 말씀드리시오." 하고 말한다. (토빗7,9ㄴ)

 

그러나 라구엘은 일을 천천히 진행시키려하며("오늘 밤은 먹고 마시며 즐겁게 지내라") 이미 사라를 아내로 맞이했던 일곱 남자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토빗7,10-11ㄱ)


토비야가 "제 일을 결정지어 주시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고 않겠습니다."하고 말하며 막무가내로 곧바로 결혼시켜 줄 것을 주장하자, 

라구엘은 토비야가 사라를 아내로 맞아들일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라구엘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면에는 후손에 관한 규정(수혼제)에 관한 신명기 25장 5-10절의 가르침이 들어 있다. 

이 율법의 정신은 가족 안에서 과부와 그 재산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라구엘은 토비아와 사라를 남편과 아내로 선언하면서 "이제부터는 너는 사라의 오라비이고 사라는 너의 누이다. 오늘부터 사라는 영원히 네 사람이다." (토빗7,11) 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라구엘은 자기 딸 사라를 불러 그를 토비아에게 넘겨주고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여라") 혼인 계약서를 쓴다. (토빗7,12-13)

 

끝으로 토빗기 7장 15-17절에서 라구엘은 아내를 불러 신방을 준비하게 하고, 라구엘의 아내 아드나는 또 한 사람의 남자가 죽어야 할 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드나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딸 사라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사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뿐이다.

 

한편, 토비아와 사라는 한 몸을 이루기전에 일어나 기도한다.(토빗8,4-8)

창조주이신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찬미한 뒤에 토비아는 우리 모두의 첫 부모인 아담과 하와를 기억하고, 사라를 순수한 마음으로 ("이제 저는 욕정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한다고 선언한다.

 

토비아가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얻어, 함께 해로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것이다.

토비아와 사라는 "아멘, 아멘"(토빗기에서 사라가 하는 유일한 말)으로 기도를 마친다.

 

역시 악귀를 제압하는 유일한 길은 간절한 기도뿐이요,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능력을 끌어내는 길 뿐이다

 

 

2012/06/07(연중 제9주간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복음(마르12,28ㄱㄷ~34)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33)

 

원래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 우베콜 메오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 wubekol meodeka)에서 3번이나 나오는 전치사 '뻬'(be)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 가지고'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이란 뜻의 '콜'(kol) 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목숨을 다하고 너희 최선의 힘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카르디아'(kardia)는 히브리어 '레바브'(lebab)를 번역한 단어인데,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 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목숨'으로 번역된 '프쉬케'(psche; soul)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프셰카'(naphsheka)의 원형 '네페쉬'(nepesh)는 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bekol naphscheka) '너의 온 영혼을 다해' (with all your soul)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정신'으로 번역된 '디아노이아'(dianoia; mind)는 신명기 본문에는 나오지 않고, 영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인 정신성과 정신력을 의미하기에 '목숨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마태22,37참조)로 세분하여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마르코 복음 12장 33절에는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대치되고 있다. 여기서 '생각'에 해당하는 '쉬네시스'(synesis; understanding) '지혜', '총명', '깨달은 것', '이해' 등으로 번역된다.전체적인 의미에서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요한4,24).

 

끝으로 '힘'으로 번역된 '이스퀴스'(ischys; strength)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오데카'(meodeka)의 원형 '메오드'(meod)는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with all your strength(might)>,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문은 각각으로도 최상급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세 가지 표현을 중복시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태도와 그 정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매우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본문의 이러한 표현을 볼 때, 하느님의 백성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들 가운데 결코 자신의 것이라고 하느님 대전에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그러기에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全心), 전영(全靈), 전력(全力)'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 오로지 하느님을 향한 전인격적인 절대적 사랑이어야 함을 강조하며, 십계명의 첫 부분인 1~3계명의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레위기 19장 18절의 인용으로서 첫째가는 계명인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자연적 결과로서의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말하는데, 이것은 십계명의 4~10계명의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웃 사랑을 하느님 사랑의 연장선상에 두어 율법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이웃'에 해당하는 '플레시온'(plesion; neighbour) 인종이나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살거나 혹은 우연히 만나는 사람까지도 모두 포함한다(루카10,25~37).

 

이제 이 두 가지 계명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 구절에서 '번제물'에 해단하는 '홀로카우토마'(holokautoma; whole burnt offerings) '전부 불태우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홀로카우토오'(holokautoo)에서 유래된 명사이다. 

그리고 '희생 제물'에 해당하는 '튀시온'(thysion; sacrifices)의 기본형 '튀시아'(thysia) '희생 제물' 또는 '제사'를 뜻한다. 여기서 '홀로카우토마'(holokautoma) 번제를, '튀시아'(thysia) 번제 이외의 다른 제사들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사무엘 1권 15장 22절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라고 사울을 책망하는 사무엘의 교훈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진정한 사랑과 순종이 없는 형식적 제사와 제물은 하느님을 결코 기쁘게 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581 0

추천 반대(1)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