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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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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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1-20 ㅣ No.9126

 

1월 21일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마르코 3장 13-19절


“예수께서는 열둘을 뽑아 사도로 삼으시고 당신 곁에 있게 하셨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영문학자 장영희 교수님, 그분의 진지한 삶을 대할 때 마다, 보석 같은 그분의 명칼럼을 접할 때 마다 언제나 진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고통 속에 정제된 투명한 글로 때로 우리의 마음을 따듯하게, 때로 서늘하게 적셔주는 아름다운 작가임이 틀림없습니다.


어린 시절 찾아온 소아마비를 꿋꿋이 잘 극복해온 교수님, 그러나 시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지요. 3년 전 암이란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겠지만, 슬기롭게 병을 극복해나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작년 9월 척추로 암이 전이되어 입원한다는 소식이 매스컴에 보도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한 일간지에 게재된 교수님의 마지막 칼럼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요. 깊어진 병으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음을 이렇게 담담하게 밝혔습니다. 


“신은 인간의 계획을 싫어하시는 모양이다. 올 가을 나는 계획이 참 많았다. 이 계획들이 다 성사된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넘어질 때마다 번번이 죽을힘을 다해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이 넘어져 봤기에 내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입원한 지 3주 째, ‘생명’을 생각하면 끝없이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면 한없이 마음이 착해지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 모든 것을 포용하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벅차다. 그러고 보니 내 병은 더욱 더 선한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 칼럼을 접으려고 한다.”


그렇게 홀연히 교단을 떠났던 교수님은 또 다른 난관을 의연히 극복한 결과, 올 봄 다시금 강단으로 복귀할 예정이랍니다. 정말 반가운 소식입니다.


“힘들어도 인내하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면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병마와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어 행복합니다.”


교수님은 투병 기간을 통해 “결국 고통에는 끝이 있고, 어려움은 어떤 형태로든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들을 선발하시는 광경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인간적으로 바라다보면 참으로 ‘재수 옴 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쩌다 예수님의 눈에 띄어 인생 ‘종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서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세웠던 계획들은 다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깊이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생업을 뒤로 하고 기약도 없는 예수님과의 여행길에 접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라나섬으로 인해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한도 끝도 없는 고통의 가시밭길을 걷게 됩니다. 가장 괴로운 일은 그분을 따라나서기는 나섰지만, 아직 뚜렷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늘 긴가민가하는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늘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감이 그들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던 제자들의 인생 안에 마침내 큰 깨달음 하나가 다가옵니다. 예수님이란 존재에 대한 정확한 개념파악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삶의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이승에서의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요, 축복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서서히 시련 속에서도 더욱 감사할 줄 아는 인간으로 변해갔습니다. 죽음의 칼날 앞에서도 찬미가를 부를 줄 아는 사람으로 변모되어 갔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걸으셨던 그 이상의 혹독한 십자가 길을 걸으며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합니다.


고통이 다가올 때 마다 고통 그 자체에 연연해하지 않고, 고통 그 너머에 자리한 하느님의 손길과 섭리, 계획을 생각할 때, 우리 삶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활짝 꽃피어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고통이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새러 티즈데일의 ‘연금술’(교수님이 좋아하신다는)이란 글은 오늘 우리에게 좋은 묵상주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봄이 노란 데이지 꽃 들어

비속에 건배하듯,

나도 내 마음 들어 올립니다.

고통만을 담고 있어도

내 마음은 예쁜 잔이 될 겁니다.

담겨 있는 방울방울 물들이는 꽃과 잎에서

나는 배울테니까요.

생기 없는 슬픔의 술을

찬란한 금빛으로

바꾸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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