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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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자비를 힘입지 않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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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7-24 ㅣ No.11733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마태오 복음 20장 20-28절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주님 자비를 힘입지 않고서는>


열대야 현상으로 인해 밤에도 잠을 못 이뤄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은 ‘해도 해도 너무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점심때 아이들과 라면을 끓여먹는데, 식당 안은 마치 용광로 같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희 식탁 대표로 나간 아이가 ‘가위바위보’에서 지는 바람에 설거지까지 했더니 온 몸이 땀으로 다 젖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한번, 미사 드리고 나서 한번, 라면 끓여먹고 나서 한번, 등산 다녀와서 한번, 축구시합 끝나고 또 한 번, 계속 많은 땀을 흘리고 샤워를 하면서 은근히 송구스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야 더울 때 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찬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분들도 꽤 많습니다. 아무리 땀이 흘러도 자리를 뜰 수 없기에 하루 온종일 제대로 한번 씻을 시간조차 없는 분들, 찜통 같은 열악한 주거조건 하에서 살아가시는 분들, 우리 장병들, 재소자들,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는 환자들, 독거노인들...정말 고생들이 많으시겠지요.


아무쪼록 더위로 고생 많으신 모든 분들께 시원한 한 줄기 바람처럼 다가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더울수록 ‘덥다 덥다’ ‘짜증난다’ 하지 말고, 오히려 환한 웃음으로 고생 많은 분들에게 다가서는 우리이길 바랍니다.


요즘 같은 때일수록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큰마음’,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살인적인 더위라 할지라도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마음 한번 크게 먹고 ‘여름인데 당연히 더워야지’ 하고 느긋하게 지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봄날의 꽃길도, 가을날의 풍성한 결실도, 겨울의 설경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여름날의 더위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지요.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찬란한 모든 아름다움에는 남모르는 눈물과 고통이 숨겨져 있지요. 이 더위가 가면 서늘한 바람과 함께 눈부신 가을햇살이 머지않아 찾아들겠지요. 그때는 이 더위가 그리워질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마음은 다시 한 번 슬픔으로 가득 찹니다. 아무리 애써 가르쳐도 제자들은 제자리걸음만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그토록 자주, 그토록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차근차근히 핵심적인 진리를 가르치셨지만 제자들은 또 다시 이해하지 못하고 전혀 엉뚱한 상상과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의 어부들이 ‘예수님의 사도’라는 중차대한 부르심을 받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한 일이었습니다. 부족한 자신들, 비천한 자신들을 격에 맞지 않게 사도로 뽑아주신 것만 해도 너무 고마워서 조심조심, 황송해하며 살아갔어야 했을텐데...


점차 기고만장해진 사도들은 부끄럽게도 사도단의 첫째 자리에 앉기 위해 서로 권력투쟁을 일삼게 된 것입니다.


창피스럽게도, 쫀쫀하게도 야고보와 요한 사도는 직접이 아니라 어머니를 통해서 예수님께 인사 청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한심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봤을 때 속 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서면 저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다른 열 제자들은 웃기기도 했겠지만 은근히 위기의식도 느꼈겠지요. 그래서 남은 열 제자들은 합세해서 그 두 형제를 몰아 부칩니다. 두 형제를 향해 우르르 몰려가서 불같이 화를 내고 따집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감을 감지한 예수님께서는 즉각적인 개입을 하십니다. 한심스런 제자들 앞에서 화도 나셨겠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그들을 당신 가까이에 앉게 하십니다. 그리고 힘 있고 권위에 찬 목소리로 조목조목 다시 한 번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십니다.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던 사도들, 정화의 여정이 더 필요했던 사도들 앞에서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으시고 꾸준히 지속적인 제자교육을 되풀이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지니고 있었던 이기심, 명예욕, 질투심, 세속적인 욕망을 겸손의 덕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십니다.


세례를 통해서, 서원을 통해서, 서품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의 사도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서 너무나도 부족한 우리를 고귀한 그리스도인으로, 수도자로, 사제로 불러주심에 행복해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저 부족한 주님의 도구임을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고백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친히 빚어 만드신 질그릇에 불과함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그분 자비를 힘입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연명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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